야음
작가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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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어도 보아서는 안 되고, 귀가 있어도 들어서는 안 되며, 입이 있어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내의 씨를 받는 첫날 밤, 시부는 그렇게 엄히 당부했다. 새까만 밤의 어둠을 뚫고 이 방으로 들어서는 사내는 진홍의 몸에 씨를 뿌릴 것이다. 진홍은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온 사내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하윽! 아! 아!” 사내가 사정없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진홍의 몸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입지 않아 허전한 하체가 뜨거워졌다. 모르는 사내와 처음으로 밤을 보낸 진홍은 열 명의 각기 다른 사내의 씨물을 받아야 한다는 시부의 말을 떠올렸다. 심한 병에 걸려 있다는 얼굴도 모르는 남편은 죽었을 것이고, 진홍은 돈에 팔려 이 집의 대를 잇기 위해 들어왔다. 이 절망스러운 곳에서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도망치게 도와줄 수 있소.” 오늘 밤은 다른 사내가 올 줄 알았는데, 어제와 같은 사내였다.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사내는 더욱 놀라운 말을 꺼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나를 모르시겠소?” 진홍은 기억이 떠올랐다. 돌림병에 죽어가던 사내를 구해줬던 기억이. 귀한 신분으로 보였던 그가 왜 이런 일을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집 안에 쓰지 않는 우물이 있을 것이오. 그것을 좀 알아봐 주시오.” 도망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며 사내가 진홍에게 던진 말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진홍은 이 사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곳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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