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서 책 속에 빙의했다. 최종 악역의 시중을 드는 비중 없는 인간 아이로. 인간을 혐오해서 찢어발겨 버리는 잔혹한 성정의 주인님.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보다 다정한 것 같기도 하다. * * * 머리 위로 커다란 무언가가 올려졌다. 그것은 날카로운 손톱도, 차가운 금속 덩어리도 아니었다. 그의 손바닥이었다. 의외의 상황에 눈만 끔벅이고 있자, “악몽이라도 꾼 것이냐.” 이게 무슨 말이지? 그때 입술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비릿한 혈 향도. 입술이 뜯어졌나. 아무래도 입술의 껍질이 뜯어진 것 같다. 껍질이라고 하기엔 좀 안쪽까지 깊숙이 뜯긴 것 같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소매에 입술을 비볐다. 그런데 허리를 숙인 그가 손을 뻗어 소매에 입술을 비벼 피를 닦고 있던 내 팔을 잡아 멈추게 했다. 그러곤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흐르던 핏줄기를 닦아냈다. 금속에 닿은 듯이 차갑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네가 있던 그 마을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죽이지 않고. “활활 불에 타오르던 모습을 너도 보았지 않느냐.” 혹시 지금. 위로하는 건가? 나는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발끝만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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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 책 속에 빙의했다. 최종 악역의 시중을 드는 비중 없는 인간 아이로. 인간을 혐오해서 찢어발겨 버리는 잔혹한 성정의 주인님.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보다 다정한 것 같기도 하다. * * * 머리 위로 커다란 무언가가 올려졌다. 그것은 날카로운 손톱도, 차가운 금속 덩어리도 아니었다. 그의 손바닥이었다. 의외의 상황에 눈만 끔벅이고 있자, “악몽이라도 꾼 것이냐.” 이게 무슨 말이지? 그때 입술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비릿한 혈 향도. 입술이 뜯어졌나. 아무래도 입술의 껍질이 뜯어진 것 같다. 껍질이라고 하기엔 좀 안쪽까지 깊숙이 뜯긴 것 같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소매에 입술을 비볐다. 그런데 허리를 숙인 그가 손을 뻗어 소매에 입술을 비벼 피를 닦고 있던 내 팔을 잡아 멈추게 했다. 그러곤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흐르던 핏줄기를 닦아냈다. 금속에 닿은 듯이 차갑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네가 있던 그 마을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죽이지 않고. “활활 불에 타오르던 모습을 너도 보았지 않느냐.” 혹시 지금. 위로하는 건가? 나는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발끝만을 쳐다보았다. #책빙의 #나이차 #다정남 #무심남 #다정녀 #무심녀 #시한부 #착각계
짝사랑하는 사람의 소꿉친구로 십 년을 넘게 살았다. “유디트, 내게 세상에 너보다 소중한 건 없어.” 웃으며 다정히 속삭이지만 아끼는 친구 그 이상은 아닌, 딱 그 정도의 관계. 아셀 페델리안은 잔인한 사람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유디트는 그렇게 아셀을 평가했다. 잔인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기에 더욱 잔인한 사람.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받는 건 이제 지쳤다. 그래서 유디트는 아셀을 끊어 내기로 했다. *** 아셀을 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남자와 약혼하게 되었다. “내가 너랑 약혼은 하지만, 그게 너를 약혼녀로서 아끼겠다는 건 아니니까.” 사랑 없는 약혼, 저 역시 바라는 바였다. 그런데 분명 그랬으면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체이스는 왜 자꾸 내게 다가오는 걸까? “네 곁에 있고 싶어.” 게다가 아셀은 왜 이제 와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