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이었잖아, 우리 관계. 아,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무도한 편지 한 장만을 두고 떠난 이멜린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보란 듯 전한 그녀의 약혼 소식을 듣고서. *** 시작은 가문 간의 견제로 인한 앙숙 사이. 그 남자, 제넌 트랑시움은 매일같이 그녀의 자존심을 긁어 대는 귀족층의 불량아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두 사람이 아직 어리고 미숙했을 때. “키스는 해 봤어? 아, 너무 고귀하신 존재라 누가 닿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켰지?” “나도 해 본 적 있어. 보여 줘?” 일방적인 도발로 시작된 자존심 싸움이 첫사랑으로 자리해 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끝이 남자의 장난이었단 걸 깨닫고, 이멜린은 그를 지웠다. 아니, 그러려 했다. “오랜만이야, 델제어 양.” 이멜린의 약혼 소식을 접한 그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내가 죽을 만큼 싫어? 근데 나는 왜 그게 거짓말 같지.” 그녀를 버린 주제에 먼저 버림받은 눈빛을 하는 남자. 그녀의 첫사랑이 다시금 이멜린의 삶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이전엔 멋대로 사랑을 주더니, 이번엔 멋대로 그녀의 약혼을 훼방 놓는 것으로. “델제어 양, 우린 여전히 가문을 낀 앙숙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 둘게.” 우린 더 이상 그 여름날의 어린애가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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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후원해 주시는 그분은 누구일까? “내 인생에 가장 불필요한 존재는 황후일 겁니다.” 허울뿐인 황후로서, 한평생 남편의 짐짝처럼 여겨진 아리스테나. 그녀는 마지막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마물과의 전쟁에서 영웅이 될 남편을 대신해 목숨을 잃었다. 아득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8년은 어려 보이는 몸으로. 불우하고 비참했으며 그 누구도 영광스레 여겨줄 리 없는 생을 살았던 아리스테나는 이번만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옆에 있어? 나는 또 왜 실오라기도 걸치고 있지 않은 건데?’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 아니, 정확히는 찢어져 나뒹구는 제 옷을 본 그녀는 경악했다. 그리고…… 제 옆에 누운 남자가 장차 황제가 될 자신의 전남편이라는 것에는 기겁해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의 아내일 때도 초야를 치르지 않았었는데. 미혼 여성의 몸으로…… 아니, 그와 엮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나른한 기색의 제비꽃색 눈이 아리스테나를 응시했다. 이윽고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꽉 끌어안았다. “아리스테나. 이번엔, 나를 두고 가려 하지 마.” 결국 그녀는 이번 생도 이 남자와 엮이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지난 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생에서 자신의 쓸모를 알아내고자 하는 여자와, 뒤늦게 그녀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
제국의 상업계를 틀어쥔 거상, 이딜로스 록센 카델라로트 공작. 그가 짐승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하필 새끼 고양이인 나를 주운 것이 공작의 여동생이었고, 또 하필 나를 숨기다가 들켰다.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매일같이 그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가 해맑게 애교를 부렸는데……. “으……!” 으? 이딜로스가 다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당혹스러움에 굳었다. ……방금 날 보고 소리 지르려 한 거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인간은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였단 걸! * * * 깍지를 끼며 내 손을 단단히 옭아맨 그가 말했다. “날 잡아먹고 싶다고 했잖아.”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건 다 장난…….” “장난? 그때 내가 무서워서 잠도 못 이뤘는데……, 장난이라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짙은 눈빛에 희미한 원망이 내비쳤다. 나는 저 불쌍한 척하는 눈에 속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윽고, 내 예상대로 눈빛을 뒤바꾼 그가 감히 눈앞의 맹수를 먹이처럼 두고 유유히 웃었다. “책임져.” “…….” “너라면 잡아먹혀 줄게.” ……그냥 나를 싫어하지 않게 만들려던 것뿐인데. 이 인간, 겁을 완전히 상실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