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내 과외 선생님이셔.” 저녁 식사 시간, 신우가 남자에게 연을 소개했다. 남자의 시선이 연에게 닿았다. 그때까지 남자에게 감정 없는 사물에 불과했던 연은 그제야 사람이 된다. “아, 선생님.” 무심히 말하며 남자는 물 잔을 들었다. 물을 마시고 그 안에 곱게 갈린 얼음들을 아작아작 깨물어 씹었다. 남자의 검은 눈이 다시 연의 얼굴을 움켜쥔다. 찰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공간의 무게가 선명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사과를 할 거라 생각했다. 아까 가정부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네 할 일이 아닌 것들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남자가 탁, 물 잔을 놓았다. “반반하네.” 연이 뒤집어쓴 건 무례한 말일진대 연은 별안간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다. 온몸이 서늘하고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기분.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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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쳤어. 그만하고 싶어, 이제.” 비스듬 도욱이 고개를 비틀었다. 미묘히 짙은 눈썹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너랑 나 십오 년을 함께했고 사귄 지는 팔 년이잖아.” “겨우 팔 년.” “그래, 팔 년씩이나.” 도욱의 눈이 무섭도록 가라앉는다. 그 눈을 하고 “준희야.” 다정히 준희를 불렀다. “내가 오늘 술 취해서 삐졌구나. 술에 절은 채로 밤늦게 불러내서 화났어? 안 그럴게. 존나 말 잘 들을게. 좀 봐줘. 네가 연락을 안 하잖아. 기다리면 한다 해 놓고 존나 안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속이 상하겠어, 안 상하겠어.” “네 옆에 있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 설레지 않고.” “…….” 그가 준희를 직시하며 피우던 담배를 창틀에 지져 껐다. 신경질스러운 손짓이었다. 이어 목덜미를 채운 셔츠의 단추가 갑갑하다는 듯 사납게 네크라인의 옷깃을 끌어 내렸다. 다시 준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준희 역시 맞서듯 그 눈을 올려보았다. 도욱이 피식, 입매를 비틀었다. “이럴 거면 카섹스나 할 걸 그랬어.” 낮고 깊은 웃음이 목덜미를 스쳤다.
문득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함부로 그리움이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일들.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홍은동에 집을 산 건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만큼 남자는 무료했고, 때마침 마주한 서은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 ‘오랜만이네.’ ‘…….’ ‘기억 안 나는 건가?’ 오만하고 도도했던 여자는 눈빛마저 침착하고 단정하였는데, 주혁은 여전히 그 모습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특유의 청명하고 시원한 남자의 웃음이 떠오른다. 이어 서은의 번호를 묻고 갖고 하는 말들도 떠올린다. ‘나랑 사귈래?’ 서은은 픽 웃었다. 그날, 홍은동에서 남자와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삶이 화려하여 인생이 심심한 것처럼 굴던 남자. 서은의 사소한 무언가가 남자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어 남자의 흥미가 동했을 뿐. 그러니 남자는 곧 서은도 잊을 것이다.
남자가 또 웃었다. “자신하지 말지.” 하지만 이번의 웃음은 건조했다. “그러면 꼭 한번 그 취향 꺾어 보고 싶어지는데.” “왜, 제 애인이라도 되시게요?” 그 웃음이 은조는 불쾌했다.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남자의 오만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웃는 남자의 태도가 자꾸만 은조를 불쾌하게 했다. “애인은 됐고.” 남자의 눈이 느리게 은조를 훑었다. 고작 그뿐인데 왜인지 은조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주먹을 쥐고 꿋꿋이 견뎠다. “잠깐 놀아 줄 수는 있는데.” “…….” “어떻게, 한번 놀래?” 한없이 가벼운 투. 목구멍 아래 깊은 곳이 들끓는다. 수치심인가. 모멸감인가.
“나 지쳤어. 그만하고 싶어, 이제.” 비스듬 도욱이 고개를 비틀었다. 미묘히 짙은 눈썹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너랑 나 십오 년을 함께했고 사귄 지는 팔 년이잖아.” “겨우 팔 년.” “그래, 팔 년씩이나.” 도욱의 눈이 무섭도록 가라앉는다. 그 눈을 하고 “준희야.” 다정히 준희를 불렀다. “내가 오늘 술 취해서 삐졌구나. 술에 절은 채로 밤늦게 불러내서 화났어? 안 그럴게. 존나 말 잘 들을게. 좀 봐줘. 네가 연락을 안 하잖아. 기다리면 한다 해 놓고 존나 안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속이 상하겠어, 안 상하겠어.” “네 옆에 있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 설레지 않고.” “…….” 그가 준희를 직시하며 피우던 담배를 창틀에 지져 껐다. 신경질스러운 손짓이었다. 이어 목덜미를 채운 셔츠의 단추가 갑갑하다는 듯 사납게 네크라인의 옷깃을 끌어 내렸다. 다시 준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준희 역시 맞서듯 그 눈을 올려보았다. 도욱이 피식, 입매를 비틀었다. “이럴 거면 카섹스나 할 걸 그랬어.” 낮고 깊은 웃음이 목덜미를 스쳤다.
문득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함부로 그리움이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일들. 함부로 마음이 마음에게 전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홍은동에 집을 산 건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만큼 남자는 무료했고, 때마침 마주한 서은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다. ‘오랜만이네.’ ‘…….’ ‘기억 안 나는 건가?’ 오만하고 도도했던 여자는 눈빛마저 침착하고 단정하였는데, 주혁은 여전히 그 모습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특유의 청명하고 시원한 남자의 웃음이 떠오른다. 이어 서은의 번호를 묻고 갖고 하는 말들도 떠올린다. ‘나랑 사귈래?’ 서은은 픽 웃었다. 그날, 홍은동에서 남자와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삶이 화려하여 인생이 심심한 것처럼 굴던 남자. 서은의 사소한 무언가가 남자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어 남자의 흥미가 동했을 뿐. 그러니 남자는 곧 서은도 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