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
작가윤유주
0(0 명 참여)

“아!” 느닷없이 승검이 탄성을 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심코 통증을 감싸려 뻗어 나간 승검의 손이 향한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뺨이 아닌 제 왼쪽 가슴이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어 오는 솔의 얼굴이 남의 속도 모르고 말갰다. 쿵쿵. 소란스레 뛰어 대는 심장을 행여 들키기라도 할까 승검은 죄 없는 티셔츠 가슴께를 마구잡이로 구겼다. “서승검. 어디 아픈 거냐고.” “어.” “어, 어디가?” 휘파람 소리를 닮은 미풍이 이팝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수만 개의 꽃잎이 승검의 눈을 어지럽혀 놓았다. 그중에서도 송솔만은 시야 한가운데 뚜렷하게 서서 심장을 연신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사랑니래.” 꽃잎으로 온통 하얗게 물든 5월의 크리스마스 하늘을 올려다보며 승검은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렇게나 좋은 날이라고.

완결 여부완결
에피소드2 권
연령 등급성인

세부 정보

팬덤 지표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40.79%

👥

평균 이용자 수 146

📝

전체 플랫폼 평점

8.8

📊 플랫폼 별 순위

18.54%
N003

🏆명작의 제단

✔️이 작품은 명작👑입니까?

* 100명이 선택하면 '명작' 칭호가 활성화 됩니다.

'명작'의 태양을 라이징 해보세요.

윤유주작가의 다른 작품10

thumnail

추담집: 달이 지는 가을 夜에

작가윤유주
작가김필샤
작가서재인

※ 본 도서는 가상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작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1. 기두와 은순이 윤유주 저 #직진남, #동정남, #동정녀, #순진녀, #로맨틱코미디 “이거 이름이 귀두다. 음순아.” “기, 귀두?” “아니. 기두 아니고 귀-두.” “귀, 귀두? 왕기두 네 이름 여기서 따온 거니?” 기 기(旗)에 머리 두(頭)를 써, 기세의 꼭대기라는 뜻을 가진 제 이름의 출처가 졸지에 양물이 되고 말았다. 기두의 귓불이 떨어질 것처럼 붉어졌다. 그래도 뭐든 좋았다. 은순이 기두를 귀두라 부르든, 귀두를 기두라 부르든. 어차피 이건 소은순의 것이니까. “그러니 우리가 천생연분 아니겠니, 음순아. 나는 왕귀두이고 너는 소음순이고. 우린 태어난 그날부터 하나였다.” 2. 달 아래 언쟁 김필샤 저 #금단의 관계, #라이벌앙숙, #철벽남, #동정녀, #로맨틱코미디 심건은 잔에 술을 따르려는 아이에게서 병을 낚아챘다. “어린것이 어디 술을, 그것도 환한 대낮에.” “술 마실 나이는 됩니다.” 아이가 콧대를 세우며 새초롬히 굴었다. “하면 어른 되시는 분은 올해 몇이나 되셨습니까?” “스물하나이니라.” 목을 큼큼, 다듬으며 진중히 답하는 심건을 보더니 아이가 픽, 웃었다. “뭐야, 나이에 비해 얼굴이 늙었네.” 내내 존댓말을 하던 아이는 허락도 없이 말을 편히 놓았다. 충격에 휩싸인 심건은 입술을 멈칫대며 미간을 좁혔다. 친구? 이 아이가, 나와 나이가 같다고? “스물하나나 되었는데, 어찌 이리 덜 자란 얼굴이고 몸이란 말이냐.” “얼굴은 아이처럼 귀엽지만, 몸은…….” 여인이 저고리를 살짝 들고는 고개 숙여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스스럼없는 행동에 놀란 심건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인을 다그쳤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내 젖가슴을 보고 있습니다.” “지, 지금 누구 앞에서 어딜, 그런, 그런 말을…….” 여인은 긴 속눈썹을 나풀대며 무구한 눈망울로 대꾸했다. “눈을 눈이라 하고 다리를 다리라 하고 젖가슴을 젖가슴이라 하지. 그럼, 복수박이라고 하오?” 그녀와 말을 섞을수록 심건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3. 보름, 달 서재인 저. #군대물 #다정남, #직진남 #직진녀 #질투 #남장여자 그분의 손을 이끌어 쿵쿵, 맥이 들끓는 가슴께로 가져갔다. 멋대로 날뛰는 맥박의 근원이 사내의 온기로 데워졌다. 이런 무엄한 짓은 예상치 못했는지 그분의 눈이 찰나 흔들렸다. 본래의 고고한 존안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여인임을 이리 증명하려는 것이냐. 발칙하여 어여쁘기 그지없구나.” 깊게 고인 짙은 웃음과 함께 돌아온 말은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하기에 차고 넘쳤다. “내가 혼몽하여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순순해야지. 희야, 꿈속의 너는 나를 가애하여 늘 받아주었다.” 4. 문란의 정 달다은 저 #나이차 #기억상실 #다정녀 #문란남 #연하남 #연상녀 “분명 제 것은 새 건데. 아직 헌 것이 아닌데.” 일단 진정하고 상태를 보자고 하려던 정이 두툼한 몸에 짓눌렸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스승님을 두고 누구를 안겠어요.” 자신은 저잣거리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도 믿을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스승님, 스승님.” 비키라고 해야 하는데 애달픈 부름에 차마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저 커다란 몸을 제 작은 품에 밀어 넣겠다고 구는 걸 품어줄 수밖에. “저는 숫총각입니다.” 뜬금없는 말에 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는 새것이라고 하더니.” “……새것도 맞고, 숫총각도 맞아요.” 그렇다고 하기엔 이미 닳고 닳은 것인데. 그러나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낮게 웃었다.

thumnail

망가진 너를

“왜 아이 가진 거 말 안 했냐니까.” 아이를 낳으면 그의 마음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랑을 구걸하는 꼴밖에 되지 않아서 새아는 침묵했었다. 정략결혼 상대지만, 그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라도 되기를. 그런 애틋한 바람은 두 번의 유산으로 끊어졌다. 그리고 사랑이라 믿었던 남편이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말한 이혼. “……우리 이혼하자.” 그런 그가, 1년 만에 다시 나타나 새아를 뒤흔든다. *** “이혼하자고 해서 해줬잖아요.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 새아는 소리를 지른 뒤, 깨달았다는 듯 단추를 풀어나갔다. “……너 뭐 하는 거야.” “당신이 원하는 게 이거 아니었어요?” 수렁의 한가운데 서서 우혁은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야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고 한들. 새아에게 자신은 여전히 과거에 고여 있다. 그딴 자신은 새아한테 나쁜 놈 취급 당해야 하는 게 맞다. “어차피 쓰레기 된 거, 그래. 가보자, 끝까지.” 어쩌겠어, 내가 너 없이는 안 되겠는데.

thumnail

을의 권태

“나 약혼했어. 그래도 내 옆에 있을래?” “훤아.” 너는 그날 나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 “뭐든 할게. 내가 네 옆에서 뭐든 할 테니까, 그러니까, 흡.” 무너져 내린 너에게 상처밖에 줄 수 없는 나에게, 너는 그날 매달리지 말았어야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어야 했다. 외려 날 놓아줘서 고맙다고 넙죽 인사하고 멀리 도망갔어야 했다. 내가 다시는 널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키스는 전희를 알리듯 노골적이었다. 숨을 고르며 어둑해지는 차창 너머를 응시하는 수현과 달리 훤은 뭔가에 정신이 홀린 사춘기 소년처럼 무작스럽게 그녀를 탐했다. 절제를 잊고 욕구를 분출하며. 아직도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 “아, 훤아.” 끙끙 앓는 소리를 삼키던 수현이 손을 뻗었다. 곧장 깍지를 맞추며 손가락을 얽힌 훤이 입술을 오므려 살점을 빨았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답시고 혀를 피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클리토리스는 결국 그에게 포박되어 맑은 물을 담뿍 토하는 고문을 겪어야 했다. 손등을 콱 깨문 수현의 발버둥이 한층 더 고조됐다. 베개에 뺨을 이리저리 비비는 움직임을 눈동자에 욕심껏 집어넣으며 훤은 뺨을 옴쭉 오므렸다. 콧등부터 턱까지. 뜨끈한 애액으로 푹 절어졌다. 물씬물씬 물을 싸지를 때마다 수현은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댔다. 얄궂은 마음이 발동해 그녀가 날카로운 신음이라도 터뜨려줬으면 해 훤은 더 한계까지 몰고 갔다. “하지, 흡, 그만, 훤아. 나, 나…….” 어쩌면 지금보다 더. 단순히 쾌락으로 그녀를 흐트러뜨리는 게 아닌 앞으로 함께할 일상이 수현을 더 위험에 빠뜨리게 될 터였다. 얼마 버티지 못할 걸 안다.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란 수현이 금방 지쳐 떨어져 나갈 걸 알았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다. 우수현이 저에게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길 바란다. 저 없인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일상이 엉망이 되길 바란다.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환영처럼 환청처럼 나를 떠올리길 바란다. 사랑에 취해 사리 분별 못 하는 천치가 되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내 곁에 남아 영원히 내 어둠을 밝혀주길 바란다. 그러니 수현아. 내게 더 정신없이 빨려 들어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말라 비틀어줘. 그렇게만 머물러 준다면 언제든 너를 이렇게 안아주러 갈 테니.

thumnail

빨강

※본 작품은 신체적 폭력 및 강압적 관계 등 호불호가 나뉘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맞는지도 모르고 말도 못 알아먹겠다, 라…….” “…….” “그럼 그냥 모른 채로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 그렇지, 빨강아?” 빨강은 잠깐 막연하게 멈춰 있었다. 비죽 웃으며 내뱉어진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표정은 한없이 다정하게만 보여,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까지 수초가 걸렸기에. 한가득 걱정을 담아 엄마에게 보낸 메시지에 얄궂은 숫자 ‘1’이 사라지지 않기 시작한 날부터 빨강은 고립되었다. 그녀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은 사랑해 마지않은 그녀의 애인. 그와 함께한 1년 동안 눈이 멀고 귀가 닫혀 구렁텅이에 빠진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 안에 윤치호라는 남자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줄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 전부 설명해 봐.” “이빨…… 빨강입니다. 스물, 한 살. 흐읍!”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빨강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처럼 한없이 투명했다. 히끅, 잔기침을 토하며 바르작거리는 빨강이 제 턱을 움켜쥔 치호의 손을 붙들었다. “아무것도 안 했, 는데. 왜. 흐윽……. 결백, 한데……. 흐으, 흐, 흑.” “이거, 순 여우 새끼인 줄 알았더니…….” 남자의 중얼거림을 듣던 빨강의 목이 툭, 꺾였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힘을 줘 꺾어 버린 꽃줄기처럼 가차 없이.

thumnail

왼손잡이

“제법 대단하고 제법 무례한 내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러니 협조합시다, 이보영 아나운서.” 약혼자의 외도 현장을 잡기 위해 보랏빛 새벽을 지새우던 보영. 우연히 이를 같이 목격하게 된 시열에게 덜미를 잡힌 이후로 그의 무례함과 오만불손함이 묻은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게 된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송시열 씨 요구,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그 말, 후회하지 않겠어요?” “네, 원하신다면 뺨이라도 맞아 드릴 테니깐.” 시열의 잘빠진 턱선이, 공기를 짓누르는 낮은 시선이, 기어이 보영의 경계를 넘어왔다. “바람피우죠, 우리.” 맞바람, 제안하는 겁니다. 지금. * * * 전부 무용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도 안다. 더 나아가면 발목이 꺾이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도. 하나 보영은 멈추는 법을 알지 못했다. 이미 죽어 버린 엄마를 놓아주는 법도, 그녀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복수를 해 보겠답시고 사랑하지도 않는 약혼자를 붙들고 있는 것도. 휭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았다. 의지할 거라곤 붙잡고 있는 시열의 옷깃뿐, 보영에겐 그게 전부였다. “떨어질 것 같으면, 날 잡아.” 시열의 목소리에 보영은 애써 붙들고 있던 위험한 균형을 놓았다. 더 세게. 더 깊게. 더 짙게. 날 흔들어 줘. 방향을 잃어버린 내가 당신이 흔드는 대로 휩쓸려 갈 수 있도록. 거센 파고로 다가와 나를 덮쳐 줘. 벚꽃 잎이 시리게 휘날리던 어느 봄날. 부드러운 왼손 위로 맞바람이 불었다.

thumnail

망가진 너를

“왜 아이 가진 거 말 안 했냐니까.” 아이를 낳으면 그의 마음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랑을 구걸하는 꼴밖에 되지 않아서 새아는 침묵했었다. 정략결혼 상대지만, 그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라도 되기를. 그런 애틋한 바람은 두 번의 유산으로 끊어졌다. 그리고 사랑이라 믿었던 남편이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말한 이혼. “……우리 이혼하자.” 그런 그가, 1년 만에 다시 나타나 새아를 뒤흔든다. *** “이혼하자고 해서 해줬잖아요.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 새아는 소리를 지른 뒤, 깨달았다는 듯 단추를 풀어나갔다. “……너 뭐 하는 거야.” “당신이 원하는 게 이거 아니었어요?” 수렁의 한가운데 서서 우혁은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야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고 한들. 새아에게 자신은 여전히 과거에 고여 있다. 그딴 자신은 새아한테 나쁜 놈 취급 당해야 하는 게 맞다. “어차피 쓰레기 된 거, 그래. 가보자, 끝까지.” 어쩌겠어, 내가 너 없이는 안 되겠는데.

thumnail

열락의 끝

불행이 끌어다 놓은 사이. 그들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을 풀기 위해선 윤해서가 필요했다. 여자의 화상 자국 뒤에 숨겨진 비밀.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 문서후는 윤해서를 자신의 궤로 들였다. “일부러 저를 집에 들이신 거죠.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시간 낭비 안 하고 좋았을 텐데요.” 서후의 시선이 해서의 맨몸을 느릿하게 훑으며 올라왔다. “윤해서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윤해서랑 잠을 자고 싶었으면 진작에 해치우고도 남았다는 거야.” 열락에 뒤틀린 눈과는 달리 해서의 어깨를 감싸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다 벗어 던진 옷을 다시 태연하게 입혀 주는 서후의 손을 가로막으며, 해서가 물었다. “상무님이 이러려고 절 데려오신 게 아니면 도대체 이유가 뭔데요?” “말했지 않나? 당신이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소리 내며 가슴을 치고 울었으면 한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음을 쏟아 내며, 네게 얽힌 모든 것을 털어내 주길 바란다. “무너져요. 있는 힘껏.” 그래야 윤해서 네가, 네 속에 있는 비밀을 토해 내지. 그 비밀을 토해서, 부디 나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모든 걸 게워 낸 그 끝에서, 너도 나처럼 지겹게 내 생각만 해 보기를. 비밀보다 더 컸던 열락. 그 열락이 끌고 온 잔인하고도 뜨거운 인연들의 이야기, 열락의 끝

thumnail

무뢰한

코트 위에서 도산하는 그 누구보다 찬란했다. 배구계 유망주라는 소문답게 한껏 날아올라 시원하게 공을 때리는 모습은 재경의 마음에도 세게 부딪혀 오래도록 자국을 남겼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 역시 배구임을 알았을 때, 재경의 속에서 비틀린 욕심이 피어났다. 미숙한 풋사랑이 불러온 철모르는 선택은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던 마음을 단숨에 뒤틀어 버렸다. “선배를 도박 경기에 넣겠다면서, 사모님들까지 데리고 온다고 했어요.” “아깝네. 배구하면서 빚도 갚고, 사모님들 가랑이도 빨 수 있었는데.” 산하가 낮게 읊조리며 재경의 입술 바로 앞에서 말을 이었다. “그 좋은 기회를 또 심재경 양께서 도려 가셨어. 맞죠?” 재경은 더 깊이 파고들려는 산하를 확 밀쳤다. “이거 말고는 없어요. 선배 이제 갈 곳도 없잖아요.” “심재경.” “선배 그러니까 이제 배구 못 해요.” 이런 말로밖에는 남자를 잡을 구실이 생각나지 않았다 증오를 이용해서라도 그를 묶어 놔야만 했다. “그러니까 내 옆에서 날 죽을 만큼 미워해 봐요.” 산하의 눈동자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아 너무나 깨끗하고 섬뜩했다. 그 안에 부디 원망이 타오르길 바라며, 재경은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말했다. “도 기사님, 오늘부터 밤에 문 잠그지 마세요.” 여자의 욕심과 남자의 배신감이 맞닿은 순간, 서로의 첫사랑은 이내 무뢰한이 된다.

thumnail

선배, 약속된 봄이 왔어요

“선배.” 도한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자 주황빛 가로등 불빛을 따라 떨어진 두 그림자가 하나로 겹쳤다. 숨을 크게 들이켜는 수아의 호흡에 맞춰 그림자가 심장 박동하듯 쿵쿵 크게 일렁였다. “약속된 봄이 왔어요.” ……도한아, 너는 알까. 1년 전부터 내가 이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날씨를 확인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너와 함께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는 걸. 아마 너보다 내가 더, 이때만을, 이 순간만을. 봄밤의 시간 위로 권도한이 스며들고 있었다. 책속에서 “내가 몇 시간 전까지……. 아니,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만하려고 했거든요?” 눈물이 아스라이 맺혀 있는 턱을 수아가 무겁게 들어 올렸다. 무엇을. 수아는 눈으로 물었다. “선배 좋아하는 거.” 수아는 숨을 참았다. 캄캄한 도한의 눈동자가 세상을 휘감기라도 한 것처럼 어지러웠다. “근데 그거. 쉽게 접어질 마음이 아니더라고요.” 말미에는 가벼운 웃음까지 달려 있었다. 수아가 눈을 깜빡이자 속눈썹에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그래서 이젠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할래요.” “……뭐?” “어차피 남자친구도 없잖아요.” 안 그래? 턱짓으로 집안을 가리키는 도한의 입가로 묘한 웃음기가 번졌다.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성큼 다가온 손이 수아의 눈물을 서슴없이 가로채 갔다. “1년을 했는데 그 짓을 더 못 할까 봐.” 눈물을 속절없이 뺏기고도 수아는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thumnail

여름 별, 하진

딸을 방치한 아버지가 걱정 삼아 자신을 한 번이라도 돌아봐 주기를 원했던, 어설픈 죄책감을 가진 윤숙이 자신을 더 깊숙이 안아주길 바랐던, 푸른 바다 냄새가 나는 상현이 오래 곁에 머물러 주길 소망하던 마음들. 그 외로움들이 켜켜이 쌓여 하진을 바보로 만들었다. 모든 걸 다 알되, 모든 걸 다 몰라야만 하는 바보로. 고작 열 살의 아이, 하진은 눈칫밥을 이용해 스스로 멍청이가 되길 자처했다. “서하진을 기억하고 있는 천상현이라 싫은 건가.” 싸늘하게 일별하는 하진의 태도에 상현은 괜한 오기가 솟았다. “내가 싫다는 이유가 단지 네 과거를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거라면 나는 용납 못 해. 좀 더 그럴 싸한 이유를 가지고 와봐.” 속속들이 파헤치는 눈빛으로 그는 하진을 읽어냈다. “그리고 이하진 경고하는데.” 싱긋 웃는 상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눈을 질끈 감자, 뜨거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더 이상 널 던지듯이 굴지 마. 다른 응석은 받아줘도 그거 하나만큼은 용서 못 해.”

이 작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작품

펄 (Perle)

펄 (Perle)

계략의 정석

계략의 정석

메리 배드 엔딩을 위한 공략집

메리 배드 엔딩을 위한 공략집

너의 아이를 내게 줘

너의 아이를 내게 줘

만지게 해 주세요, 공자님

만지게 해 주세요, 공자님

꽃이 내리다

꽃이 내리다

김 대리의 아찔한 제안

김 대리의 아찔한 제안

악역에게 청혼받았습니다

악역에게 청혼받았습니다

집어삼키는 맛

집어삼키는 맛

가짜 성녀는 퇴장을 기다린다

가짜 성녀는 퇴장을 기다린다

전체 리뷰0 개
스포일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