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국의 사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 조직을 근절하겠다. 1965년 FBI 연방 수사국이 내세운 목표 아래, 데머시의 마피아 5대 패밀리가 집중 타깃이 되었다. 그렇게 베네데티 패밀리에 잠입한 FBI 수사관 웨인 보이드와 그의 곁에서 비밀리에 수사를 보조해 온 아내 릴리아나 보이드. 하지만 정체가 발각된 1970년, 두 사람에게 돌아온 건 죽음이었고 릴리아나는 9년의 시간을 되돌아 1961년의 데머시에서 눈을 떴다.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 심지어는 웨인을 만났던 때보다 한참 전인 먼 과거에서. * * * “재즈 바라고 들었는데, 보컬리스트 자리가 있나 해서요.” 살아 돌아온 이번 생에서 헛된 죽음은 없을지니, 그녀는 희디흰 발을 떼 암흑가에 들어서길 자처했다. “노래라도 한 곡 부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목숨을 앗아갔던 남자, 테오도로 베네데티는 진창 속에 걸어 들어온 그녀를 거듭 밀어내고, 또 막아섰다. 밝고 환하기만 한 세계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처럼. 참 우습지도 않은 선의였다. “살면서 무엇보다 지키기 어려운 게 고귀함이고 순수함이야. 난 돌아갈 기회를 수차례 줬어.” “…제가 부탁드렸나요? 제 고귀함과 순수함을 당신더러 지켜 달라고?” 탄식과 같은 헛웃음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테오도로는 씁쓸하고도 비소 어린 낯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권총을 꺼내 잡았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다분히 의도적인 빗맞힘. 죽지 못해 발악하는 남자. 허벅다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은 사내가 처절하게 바닥을 기었다. 그 앞으로 릴리아나의 등을 떠밀며, 테오도로가 명했다. “그럼 죽여.” 어둠을 택한 건, 빛을 되찾기 위해서였던 것을…. 한없이 눈부셨던 지난날이 어둠 저편으로 저물어 간다.
🌟 로판 소설 중 상위 16.12%
평균 이용자 수 4,071 명
* 100명이 선택하면 '명작' 칭호가 활성화 됩니다.
'명작'의 태양을 라이징 해보세요.
1943년 초봄. 휴전 이후 사그라들었던 열전이 다시 전 대륙에 번진 지 2년째. 아인클의 스파이 그레이스가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이안 터너, 그는 그녀의 조국과 가족을 앗아간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는 적국의 스파이였고, 그녀에게 처음으로 참패를 안겨준 남자였고, 그녀의 육체를 탐하기 위해,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남자였다. “그레이스, 언제까지 날 그렇게 밀어낼 겁니까.” “...뭘 물어. 네 머리통이 터져 나가든 내 머리통이 터져 나가든, 누구 하나 죽는 날까지 밀어내겠지.”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그래,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둘은 흐르는 음악에 맞춰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맞닿은 몸에서 서로의 온기가 번졌다. 따뜻했다. 폐허와 같던 생을 감싸 안는, 그런 따뜻함이었다. 내일 총을 겨눠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품속에서 냉혹한 현실을 잊고 싶었다. 아니, 영영 이 시간 속에 갇혀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그런 무한함은 허락되지 않겠지. 3분 남짓한 음악은 끝날 것이고, 그들의 밤도 결국 생명을 다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내일의 태양이 밝을 것이다. “우리가 달리 만났다면…. 결말은 좀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그레이스는 답하지 않았지만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첩보 작전 중 적국의 스파이와 마주쳤다. 철저한 훈련 끝에 완성된 스파이, 그레이스. 임무 도중 적국의 스파이와 마주친 건 변수였다. 복면을 두른 남자가 눈가를 야릇하게 접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우리가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하하, 적에게 인사를 건네지 말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정신 나간 놈에게 잘못 걸렸음을 그때 알았어야 했다. 우연한 만남은 끈질긴 악연의 시작이었으니. “며칠 전 레스토랑에서 마주쳤을 때, 난 당장이라도 테이블 위에 당신을 눕히고 싶었는데.” 커다란 손이 그레이스의 턱을 잡아챘다. 숨결이 가까워지고, 맹목적인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써서 참았는지.” 그레이스가 피식 실소하며 그에게 침을 뱉었다. “이제 보니 짐승이었네?” 그가 미소 지었다.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는 듯. 느른하게 휘어진 눈꼬리 끝으로 색정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짐승을 잘못 건드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