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능화리의 여름에 무채색의 남자가 찾아왔다. “당신, 변태야?” 허, 하고 터진 실소가 나경의 이마 위에서 흩어졌다. 그렇단 건지 아니란 건지. 애매하게 미소를 띤 표정에 도리어 신경이 곤두섰다. “변태냐니…!” “아뇨.” “…….” “아닌데요, 변태.” 코앞에서 울리는 낮은 음성이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게 느껴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세련되고 묵직한 향수 냄새는 또 어떻고. 그러니까 애초에 이건 다 이 남자 탓이었다. 기이할 만큼 매력적인 이 남자가 유죄인 거다. “저 취한 거 맞는 것 같아요.” 순간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충동이 일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검사님이랑.”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아차 싶었으나 주워 담을 수도 없단 생각에, 이대로 그냥 더 뻔뻔해져 버리자고 생각했다. “…해도 돼요?” 매앰, 맴, 맴.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름 한 철. 이 뜨거운 감정에 휩쓸려 무슨 짓을 한대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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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자, 잠깐…!” “왜요. 먼저 몸부터 맞춰 보는 타입이라면서요.” 대리 맞선을 나간 것도 모자라 상대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이건 아무래도 위다인의 인생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어제 일, 기억은 해요?” “아뇨?” “좀 섭섭하네요. 좋았는데, 어제.” 제발, 이대로 모르는 척 사라져 줬으면 좋겠는데. 서도영, 이 이상한 남자는 끈질기게도 사람 마음을 들쑤셔 댄다.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질문이 뭐 이렇게 매정해.” “이봐요!” “남자가 고백까지 한 여자한테 원하는 게 뭐겠어요.” “몰라요. 모르겠으니까 그냥 말하라구요, 빙빙 돌리지 말고.” “더도, 덜도 말고 딱 3개월.” “…….” “나랑 연애 놀이 해 볼 생각 없어요?” “네? 뭘, 하자고요?” 다인은 제 귀를 의심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3개월만, 나랑 놀자고. 위다인 씨.” 순간, 제 이름이 불린 여자의 동공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계약 연애의 정석,
친구. 그 같잖은 이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언제까지 이 마음을 숨길 수 있을지 또한 불명확했다. 위로랍시고 손을 뻗는 순간, 제 연약한 인내가 동요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으니까. “실수?” 차갑게 식은 얼굴에 싸늘한 입매만 조소하듯 모로 비틀렸다. “밤새 다 해 놓고 뭐, 실수?” “응, 실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동자가 빌어먹게도 결연했다. 차라리 싫단 말을 하지. 그냥, 아무래도 내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담백하게 거절이나 해 주지. 실수란 단어 하나에 느끼는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초라함 또한 감당 못 할 정도였고. “경고했었지, 내가. 싫으면 도망가라고.” “…….” “근데도 도망 안 갔어, 너.”
“차라리 나한테 빌지 그래. 그렇게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기도해도 듣는 척도 안 하는 하나님보단 내가 훨씬 더 자비로울 건데.” 강권주는 태연히 조롱하며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윽고 겁먹은 눈과 어울리지 않는 건방진 말이 돌아왔다. “…깡패한텐 안 빌어요.” 픽,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샜다. 거스러미처럼 굴기에 슬쩍 건드려 본 것뿐인데 되레 고개를 쳐드는 반응이 흥미로웠다. 절박하면서도 빌지 않고 무서워 떨면서도 울지 않는 건 깡패인 저를 어지간히 경멸하기 때문이리라. “그래? 깡패한텐 안 비는구나, 예비 수녀님은.” 입술을 꾹 깨무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솜털이 보송한 두 뺨은 파르르 떨리고, 말갛다 못해 투명하던 눈자위엔 여지없이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던 하얀 도화지에 눈곱만큼 작은 오물 하나가 튀어 번지기 시작한 것 같아서. 그 꼴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한동안 숨기고 있던 가학성이 고개를 짓쳐 드는 듯했다. 문득 눈앞의 여자가 목숨처럼 움켜쥔 걸 뺏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빼앗아, 기어코 울리고 싶어졌다. 일러스트: mamba
송지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 잘 날 없는 광수단 생활에 차서완이라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난이 들이닥칠 줄은. “자꾸 이럼 확 쏴 버린다, 진짜?” “그러시든가.” 첫 만남에 직속 상사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미친 짓을 하고, “안 꺼져?”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무력으로 그와 충돌했으며, “밤새 짐승처럼 그 난동을 부리곤, 아침엔 쥐새끼처럼 몰래.” “…….” “볼 장 다 봐놓고 인사도 없이 내빼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개매너야?” 한순간의 객기로 취한 남자를 덮친 문란 변태가 됐다. 재난. 이건 재난이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도, 예방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된 끔찍한 재난. “원래 이렇게 수사를 거칠게 하시는 편이십니까?” “상대에 따라서는?” 차서완이 싫다. 아주 많이. 몹시. 매우. “도대체 왜 이렇게 절 싫어해요?” “사람 싫은 데 이유가 어딨어. 넌 나 싫어하는 이유 댈 수 있어?” “네. 전 댈 수 있거든요?” “아니란 말은 안 하네.” “재수 없어.” “…….” “재수 없어서 싫어요!” 일러스트: 지유비
형형색색, 능화리의 여름에 무채색의 남자가 찾아왔다. “당신, 변태야?” 허, 하고 터진 실소가 나경의 이마 위에서 흩어졌다. 그렇단 건지 아니란 건지. 애매하게 미소를 띤 표정에 도리어 신경이 곤두섰다. “변태냐니…!” “아뇨.” “…….” “아닌데요, 변태.” 코앞에서 울리는 낮은 음성이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게 느껴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세련되고 묵직한 향수 냄새는 또 어떻고. 그러니까 애초에 이건 다 이 남자 탓이었다. 기이할 만큼 매력적인 이 남자가 유죄인 거다. “저 취한 거 맞는 것 같아요.” 순간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충동이 일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검사님이랑.”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아차 싶었으나 주워 담을 수도 없단 생각에, 이대로 그냥 더 뻔뻔해져 버리자고 생각했다. “…해도 돼요?” 매앰, 맴, 맴.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름 한 철. 이 뜨거운 감정에 휩쓸려 무슨 짓을 한대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악마인지도 몰랐다. 원하는 모든 걸 줄 테니 영혼을 팔라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마. “적당히 튕기죠? 어차피 사인할 거면서 피차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이쯤 하시고. 마음에도 없는 남자랑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돈 필요하잖아, 당신.” 혼자선 결코 헤어날 수 없을 진창을 벗어나려 악마 같은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게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내 옆에 붙어서 계속 이렇게 살려달라고 울고 애원해 봐. 혹시 알아? 어쩌면 나한테도 조금의 아량 같은 게 남아있을지도.” 지옥 불인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부나방이 된 것 같았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번 내달린 마음은 점점 더 끝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지옥도 지옥 나름인 거니까요.” 당신은 누구일까. 천사일까, 악마일까. 내게 내민 그 손은 구원인가, 저주인가. “내 기분이 좆 같으면 거래 안 해요, 난.” 그리고 이 지독한 관계의 이름은 인연일까, 악연일까. 일러스트: 오후
최연소 국가 대표, 아시아 신기록 보유, 올림픽 금메달 3관왕. 집안과 얼굴마저 특출난 천재 수영 선수 천윤제. 평온한 은채의 일상에 천윤제라는 해일이 밀어닥친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마음은 알겠는데, 작작 밝히지? 신고당할래?” “아…. 재수 없어.” 오래도록 그를 선수로서 동경해왔지만 매니저로서 만난 물 밖의 천윤제는 그저 난잡한 철부지일 뿐이었는데…. “난 처음이야.” “거짓말할래요?” “영광인 줄 알아. 내 23년 순결을 너한테 바치고 있어.” “웃겨, 진짜.” 밀려오는 물살과 차오르는 감정은 막을 길이 없었다.
친구. 그 같잖은 이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언제까지 이 마음을 숨길 수 있을지 또한 불명확했다. 위로랍시고 손을 뻗는 순간, 제 연약한 인내가 동요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으니까. “실수?” 차갑게 식은 얼굴에 싸늘한 입매만 조소하듯 모로 비틀렸다. “밤새 물고 빨고 싸고, 다 해 놓고 뭐, 실수?” “응, 실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동자가 빌어먹게도 결연했다. 차라리 싫단 말을 하지. 그냥, 아무래도 내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담백하게 거절이나 해 주지. 실수란 단어 하나에 느끼는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초라함 또한 감당 못 할 정도였고. “경고했었지, 내가. 싫으면 도망가라고.” “…….” “근데도 도망 안 갔어, 너.” 술김도, 실수도 아니었단 확연한 증거에 그녀는 다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너도 좋다고 다리 벌리고 질질 싸 놓곤, 실수란 말이 나와?” “쉽게 내린 결론 아니야. 말 함부로 하지 마.” “10년 넘은 친구한테 좆질 하는 건 쉬웠을까, 그럼.”
죽기로 결심했던 그 순간.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결혼을 깰 생각은 없고. 나랑은 그냥 놀고 싶고.” “그래서 싫어요? 나랑 자는 거.” “참 웃겨, 당신. 바람피우잔 소릴 이렇게 간절하게 하고.” 그가 비겁한 나를 싸늘히 힐난한다. “파혼부터 하고 와요. 그럼 한 번은 다시 생각해 볼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확실히 낯설게 미쳐 있었다. 백강우에게. “혹시 내가 귀찮아요?” “아니라면 거짓말이고. 그래도 정숙한 아가씨랑 더럽게 붙어먹는 재미는 있으니 이 리스크 떠안은 거라고 말해야 솔직한 거고.”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솔직하지 못했다. “결혼할 도련님 따로. 아련하게 추억 따먹기 하는 오빠 따로. 떡 치고 재미 볼 양아치 따로. 솔직해집시다, 신하경 씨. 너도 나한테만 헤프게 구는 거 아니잖아.” 그냥 잠시 잠깐 트일 숨통이 되었던 걸로 충분했나. 그저 단 한 번의 무람하고 뜨거웠던 일탈이라 여겼다면 족했을까. “나 헤프게 구는 거, 백강우 씨뿐이에요.” 줄곧 가속만 해 왔던 사랑이다. 그러므로 정지는 불가했다. 애초에 이 무례한 마음엔 한 줌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었으니. 애처롭고 무례한 내 사랑에게. 디어 루드 (Dear. Rude)
*본 소설은 22. 3. 24. 연재된 오블리비아테(Obliviate)의 개정증보판입니다.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여자와 두 번이나 사랑에 빠지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혹시 내가 먼저가 아니라 남지아 씨가 먼접니까?” “뭐가요?” “나한테 사심 품었던 거.” 덜컥 말문이 막혔다. 일순 당황한 기색으로 물든 여자의 두 뺨이 붉었다. “맞구나.” 확신에 찬 재한의 눈매가 번득였다. 마법 같은 두 번째 사랑 이야기. 오블리비아테(Obliviate)
형형색색, 능화리의 여름에 무채색의 남자가 찾아왔다. “당신, 변태야?” 허, 하고 터진 실소가 나경의 이마 위에서 흩어졌다. 그렇단 건지 아니란 건지. 애매하게 미소를 띤 표정에 도리어 신경이 곤두섰다. “변태냐니…!” “아뇨.” “…….” “아닌데요, 변태.” 코앞에서 울리는 낮은 음성이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게 느껴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세련되고 묵직한 향수 냄새는 또 어떻고. 그러니까 애초에 이건 다 이 남자 탓이었다. 기이할 만큼 매력적인 이 남자가 유죄인 거다. “저 취한 거 맞는 것 같아요.” 순간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충동이 일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검사님이랑.”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아차 싶었으나 주워 담을 수도 없단 생각에, 이대로 그냥 더 뻔뻔해져 버리자고 생각했다. “…해도 돼요?” 매앰, 맴, 맴.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여름 한 철. 이 뜨거운 감정에 휩쓸려 무슨 짓을 한대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좋아해.” 분명 공현승의 네 번째 고백을 거절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한데, 왜.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나한테 너 그냥 8살 어린 동생이지, 남자 아니야.” “나 거절하는 이유가 고작 나이, 그거 하나야?” 코앞에서 제 입술을 집어삼키고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과 길고 풍성한 속눈썹. 지그시 감긴 눈동자. 비스듬히 각도를 기울인 콧날. 분명 공현승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공현승. 그걸 자각하자 돌연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가슴이 불온하게 뛰어댔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세차게. 돌연 침잠하는 듯한 음험한 성음이 입술 위에서 낮게 울렸다. “가족? 친구?” 가쁜 숨을 내뱉으며 눈을 들어 올렸다. 코앞에서 시선이 맞물렸다. “좆까, 난 그딴 거 안 하니까.”
모든 게 우연이 아닌 계략이었다. 맞선 상대와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뒤, 수습 못 할 상황에 휘말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다 거짓말이었죠? 처음부터 나 이용하려고 계획했어요?” “중요합니까? 김가을 씨도 이제부터 날 충분히 이용하게 될 건데.” 계산이 빠른 재벌 3세 윤재원이 제안해 온 전략적 파트너십에 의한 계약 결혼. “나 이용해요. 나한테 이용당하고. 서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쿨하게.” 거부할 이유가 없을 만큼 솔깃하고 뜨거운 제안이었다. “모자란 개연성 채우는데 감정만큼 적절한 변명 거리도 없으니까요. ‘서로 죽고 못 살아 그랬다, 사랑해서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랬다.’ 뭐, 이런?” “미쳤나 봐, 진짜.” 서로가 원하는 조건은 하나였다. 누구라도 깜빡 속아 넘어갈 쇼윈도 부부를 연기하는 것. *** “그러니까 키스부터 해 봐요.” 고개를 깊이 숙인 그가 낮고 뜨거운 목소리로 명령해 왔다. “그날 밤처럼.” 가을은 보란 듯이 까치 발을 들고 매달려 입술을 맞췄다. 피식, 낮은 남자의 웃음소리가 이마 위에서 울렸다. “어려운 일이라더니.” “…….” “김가을 씨 몸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 전략적 쇼윈도 부부의 치밀한 계획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