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2017년 출간되었던 동명의 작품의 개정판으로, 1권의 일부 장면 수정 및 2권의 전면적인 수정과 여주 시점의 외전이 추가 되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준영과 친해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준영이 알고 싶고 궁금했던 건, 그 애 하나였다. 그 애를 보면 속에서 알 수 없는 욕망이 들끓었다. 선이 옅고 말갛기만 한 얼굴.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검은 머리. 조금 큰 교복 아래 길쭉하게 늘어진 팔.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박연수……. 그 애는 머릿속에서 점점 더 구체화 됐고, 우습게도 그 애를 떠올리지 않으면 사정할 수 없게 됐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추잡하고 더러운 게 사랑일 리 없지. 뜨뜻미지근하게 끝나버린 십 대를 지나 스물하나에 다시 그 애를 만났다. 그것도 여자친구와 함께 찾은 모텔 프론트에서. “쉬고 가실 거예요? 주무시고 가실 거예요?” 그렇게 묻는 박연수는 여전히 준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지 같은 재회 끝에 준영은 연수와 연애했다.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연애가 연수와는 달랐다. 내가 개같이 굴어도 박연수 너만은 날 사랑해줘야지. 집착하고, 치졸해지고, 끝없이 상대를 시험하게 됐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을 함께했지만, 끝내 준영은 연수 없는 여름을 맞게 된다. 이후 8년 동안, 준영의 삶은 황폐해져만 갔다. 구질구질한 후회와 너절한 미련을 끝내려 찾아간 곳에서 준영은 한 방울의 달콤한 오아시스를 맛보았다. “최준영.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뭐든. 뭐라도 하고 싶다. 살고 싶어, 연수야.” 열아홉, 스물하나, 서른. 끊길 듯 끝나지 않은 연애.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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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은 15금 개정판입니다.※ 웹툰사업부의 5년차 슈퍼 대리 서주영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과장 진급을 코앞에 두고 최대 난관에 부딪친다. 바로 낙하산 인턴 홍목하! 꽃 같은 얼굴에 눈부신 웃음, 해맑은 성격의 홍목하는 건물주 아버지 덕에 한량처럼 살아온 금수저다. 취직 생각이라곤 없던 그가 입사를 결심한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웹툰을 누구보다 빨리 볼 수 있기 때문!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사수인 서주영에게 사사건건 혼이 난다. 군인 같은 말투를 쓰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떤 업무도 척척 처리하는 그녀는 홍목하가 저지른 일을 모두 수습해준다. 일 못 하는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남의 팀 일을 대신 해주고도 욕만 왕창 먹는 홍목하를 감싸주기도 하고, 기가 잔뜩 죽은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오전 근무시간을 통째로 날리며 낮술까지 사주는데. “인턴님. 사람은 혼날 때가 꽃이란 말 압니까?” “……혼날 때가 꽃이라고요?” “꽃 필 때가 가장 예쁜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열매를 맺을 때거든요. 혼날 때는 꽃이고, 혼 안 날 때쯤엔 성숙해져서 열매를 맺는 거죠. 그러니까 인턴님도 열매 맺을 때까진 힘내 봐요. 내 생각엔 꽤 단단하고 좋은 열매가 열릴 것 같거든요.” 홍목하는 이 멋있는 여자가 점점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그리고 그녀와의 연애는 어떨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출장을 간 그 날 밤, 그녀에게 먼저 키스한 것은. 상큼 인턴과 철벽 대리의 힐링 사내 연애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도지운은 원인 불명의 손 떨림과 불안 증세로 인해 약에 빠져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를 하루 앞둔 날, 여느 때처럼 약을 구하기 위해 '검은 골목'으로 향한 그는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때마침 은밀한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박경주가 그를 발견하고 제 집으로 데리고 간다.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같은 순간, 두 남녀에게 폭설처럼 찾아든 사랑 극야 -본문 중- "그래서 날 여기에 데리고 왔나 보네. 약을 더 사게 하려고." 예민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운이 어린 말투가 그와 제법 어울린다고, 경주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순순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와준 게 고마워 지금껏 애써 갖추고 있던 예의를 전부 내던진 모습이 훨씬 그다워 보였다. "집에 약은 많은데, 애석하게도 네가 원하는 미르는 없어." "나와 거래해." "자꾸 거래, 거래하는데 되게 거슬리거든? 그리고 너 나이도 어린데, 약 끊을 생각은 안 해?" "자꾸 너, 너 하는데 나도 좀 거슬리거든. 그렇게 막 불릴 정도로 어린 나이 아니고, 약 끊을 생각도 없어. 당신은 의사잖아. 환자를 충실히 돌볼 의무가 있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을 골랐거든, 내 주치의로. 의사는 환자를 못 골라도 환자는 의사를 고를 수 있으니까." 경주는 지운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을 그저 내버려 두었다. 억지를 받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두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른인 체하는 딱딱한 말투가 흥미롭기도 했고, 낮은 목소리가 제법 듣기 좋기도 했다. "그래서 내 차트에 올려달라고?" 지운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괜찮겠어, 나 돌팔인데도?" 그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과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서늘해 보이는 눈매를 보니 처음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사내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같았다. 뚫어져라 집요하게 저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던 경주가 생각을 털어냈다. 그래봐야 부잣집 도련님의 같잖은 비즈니스다. "좋아. 차트 인. 약은 내 마음대로 처방해. 돈은 선불로."
―1999년. 부산. 그 여름의 광안리에서. 세상에서 유일한 제 편이었던 언니가 죽었다. 광안리 해변에 언니를 보내 주었다. 영도 언니를 따라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영을 멋대로 건져낸 남자. “한 번 죽었다 살아났다 아이가. 인쟈부터 남은 인생은 덤이라꼬 생각해라.” 남자의 말은 막무가내였지만 영은 묘하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죽은 최미진이 안 있습니까. 아무래도 현상금만 받고 끝날 일은 아니지 싶어가….” 언니의 사건을 자살로 종결시킨 경찰의 통화. 그 통화에서 영은 ‘문광파’라는 조직을 알게 된다. 언니는 자살하지 않았다. 죽이고 싶다. 언니를 죽게 만든 놈을 잡아서 복수해 주고 싶다. 결국 영은 신분을 바꾸고 문광파에 접근한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있어? “김은하?” 다시 만나면 꼭 전하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배신하는 게 어디 있어. “내는, 정국현입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이 또한 기회가 아닐까 하고. “앞으로도 제가 치료해 드려도 될까요?” 속삭이는 목소리로 영은 말했다. 은밀한 거래라도 되는 듯이.
[단독선공개] 돈과 주먹이 최고인 줄 아는 집안에서 성장한 조폭 3세 그녀, 또 다른 조폭 집안 남자와 계약 결혼을 해야 한다니?! 평온한 일상을 위해 대학 입학 후 집안과 연을 끊은 조폭 3세, 양혜진. 손부터 먼저 나가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를 똑 닮은 무식한 오빠를 떠난 지도 9년째, 엄마를 살리고 싶으면 선을 보라며 다짜고짜 머리채를 잡혔다. 상대는 다른 조폭 집안의 아들놈 김무강, 다시 말해 깡패 새끼. “주로 상대한테 맞춰 주는 타입?” “아니. 안 맞으면 가족도 버리는 타입.” “칼 같은 여자 섹시하던데.”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는 남잔 안 섹시하던데.” 조직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정략 결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음뿐인 이 결혼에서 과연 혜진과 무강은 평생을 맹세할 수 있을까?
화려한 영화제의 밤, 신인남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서강우와 아카이뷰 대표 이지원의 스캔들이 터진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벗은 몸을 맞댄 둘의 사진을 놓고 사람들은 떠들어댔다. 이지원이 서강우의 스폰이라고. 원래 그런 여자라고.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에게도, 결혼을 앞둔 재벌 3세에게도 치명적인 스캔들이었다. “난 솔직히 이참에 서강우 씨를 좀 이용하고 싶어요.” “날 어떻게 이용할 건데요.” “내 결혼 깨는 일에 좀 쓰려구요. 보상할게요. 서강우 씨가 피해 입은 만큼 섭섭하지 않게.” 두 사람은 사랑했었고, 헤어졌었다. 이지원의 대단한 정략결혼 때문이었다. “당분간 사귀는 척해요.” “그럽시다. 배우수업 한다고 치죠.” 이지원이 제안한 건 계약이었지만, 그녀는 서강우에게 여전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배우수업이라는 말 뒤에 제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그녀의 곁에 있고 싶으니까. #계약연애 #갑을관계 #연예인(배우)남 #연하남 #직진남 #집착남 #순정남 #절륜남 #재벌녀 #능력녀 #상처녀 #무심녀.
* 본 작품은 소재상의 이유로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기하여 출간되었으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나는 한겨울 쓰레기더미에서 태어났다. 뒤엉킨 남녀로 득실대는 쪽방촌이 우리 집이었다. “열까지 세고 나가서 전력 질주. 다시 보지 말자. 시집.” 시집. 깡패 새끼들이 날 부르는 말이었다. 맨발로 달려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갔다. 지옥으로의 도망임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춘희 씨, 왜 또 왔어.” “너 깡패 새끼야, 형사야?” 남자는 내 이름을 알았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몰랐다. “깡패들이 널 뭐라고 부르는데?” 칼판. 그림자 형사. 미아파 두목의 오른팔 칼잡이. 나는 이름 없이 자라, 닥치는 대로 살았다. 바다에 버려져 파도에 휩쓸리다 헤엄을 배우듯. “왜 날 잡아 왔어.” “잡혀 온 이유 알면은. 네가 어쩌게.” 귀신같은 계집애. 지치지도 않고 물어 온다. 묻고 싶었다. 뭐가 너를 그렇게까지 살게 하냐고. 궁금했다. 넌 어디로 도망하려고 하는지.
열일곱이던 5년 전, 자퇴서만 던지고 돌연 집을 나갔던 것처럼 갑자기 고향 임백산으로 돌아왔다. 죽어도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나는 산 좋고 물 좋은 임백산 탄광촌의 유일무이 꼴통 문제아였으니까. 임백산은 물론 태백산맥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단한 사고를 쳤었다. 그때 도망쳤다 돌아온 나를 제일 반기는 건, 사고의 피해자 고한결이다. “꼴좋다. 왜 다시 왔어? 도망칠 땐 언제고.” 이 지긋지긋한 촌에서 제일 꼴 보기 싫었던 고한결. “공주병 새끼! 누가 지 보러 온 줄 아나! 야! 너 앞으로도 나한테 신경 꺼라!”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한 유일한 남자.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남자.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을, 내 고한결. 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열일곱의 고한결은 어느덧 스물둘이지만 아직도 나오지 못했다. 그곳에 갇힌 너를 구하는 것은 내가 매일 꾸는 꿈이었다. 너와 나의 처음인 이곳에 우리는 다시 왔다. 여기는 우리의 모험 장소, 비밀 임무 기지, 까만 놀이터.
*[도서 안내] 본 도서는 2018년 9월 14일자로 도서 오탈자가 수정되었으며 종이책(18.09.19 출간)과 동일합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낯선 시골 마을, 나양. 도슨트로 일하는 수연은 그곳에 도착한 첫날 밤, 폭우에 길을 잃고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이 군이라고 불리는 청년, 종하와 마주친다. “너, 왜 자꾸 나한테 너라고 해?” “설마하니 나한테 아줌마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지?” “아줌마 소리 들어도 별로 이상할 나이는 아냐.” “웃기고 있네. 너라고 부를 때 고마워해라.” 계속되는 폭우로 전시 일정이 지연되면서 수연은 종하가 지내는 여관에서 묵게 된다. 이렇다 할 교류 없이 며칠을 보내다 미술관에서 마련해 준 숙소로 옮긴 것이 끝이었다. 그런데, 그 애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녹음이 무슨 뜻인데.” “저 그림이 녹음이야. 푸르고 울창한 나무.” “죄다 까만데 푸르긴 개뿔.” 그날,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고, 수연은 충동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춘다. “처음인 건 맞는데, 그때고 지금이고 네가 걱정할 건 없어. 책임지라고 안 해. 근데 너 유부녀야?” “뭐?” “결혼했냐고.” 여름이었다. 연녹색 풀들이 짙어져 눈길 닿는 곳 모두 맑았다. 아주 잠시 머무를 집. 여름이 끝나면 떠날 집. 여름은 시간을 타고 착실히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 본 작품은 소재상의 이유로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기하여 출간되었으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나는 한겨울 쓰레기더미에서 태어났다. 뒤엉킨 남녀로 득실대는 쪽방촌이 우리 집이었다. “열까지 세고 나가서 전력 질주. 다시 보지 말자. 시집.” 시집. 깡패 새끼들이 날 부르는 말이었다. 맨발로 달려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갔다. 지옥으로의 도망임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춘희 씨, 왜 또 왔어.” “너 깡패 새끼야, 형사야?” 남자는 내 이름을 알았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몰랐다. “깡패들이 널 뭐라고 부르는데?” 칼판. 그림자 형사. 미아파 두목의 오른팔 칼잡이. 나는 이름 없이 자라, 닥치는 대로 살았다. 바다에 버려져 파도에 휩쓸리다 헤엄을 배우듯. “왜 날 잡아 왔어.” “잡혀 온 이유 알면은. 네가 어쩌게.” 귀신같은 계집애. 지치지도 않고 물어 온다. 묻고 싶었다. 뭐가 너를 그렇게까지 살게 하냐고. 궁금했다. 넌 어디로 도망하려고 하는지.
[※본 작품은 2017년 출간되었던 동명의 작품의 개정판으로, 1권의 일부 장면 수정 및 2권의 전면적인 수정과 여주 시점의 외전이 추가 되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준영과 친해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준영이 알고 싶고 궁금했던 건, 그 애 하나였다. 그 애를 보면 속에서 알 수 없는 욕망이 들끓었다. 선이 옅고 말갛기만 한 얼굴.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검은 머리. 조금 큰 교복 아래 길쭉하게 늘어진 팔.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박연수……. 그 애는 머릿속에서 점점 더 구체화 됐고, 우습게도 그 애를 떠올리지 않으면 사정할 수 없게 됐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추잡하고 더러운 게 사랑일 리 없지. 뜨뜻미지근하게 끝나버린 십 대를 지나 스물하나에 다시 그 애를 만났다. 그것도 여자친구와 함께 찾은 모텔 프론트에서. “쉬고 가실 거예요? 주무시고 가실 거예요?” 그렇게 묻는 박연수는 여전히 준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지 같은 재회 끝에 준영은 연수와 연애했다.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연애가 연수와는 달랐다. 내가 개같이 굴어도 박연수 너만은 날 사랑해줘야지. 집착하고, 치졸해지고, 끝없이 상대를 시험하게 됐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을 함께했지만, 끝내 준영은 연수 없는 여름을 맞게 된다. 이후 8년 동안, 준영의 삶은 황폐해져만 갔다. 구질구질한 후회와 너절한 미련을 끝내려 찾아간 곳에서 준영은 한 방울의 달콤한 오아시스를 맛보았다. “최준영.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뭐든. 뭐라도 하고 싶다. 살고 싶어, 연수야.” 열아홉, 스물하나, 서른. 끊길 듯 끝나지 않은 연애.
문송여고, 신재경. 우진은 재경을 알았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싸가지 없는 애. 소문은 무성했고, 대체로 얼굴값 한다는 평이었다. 예뻐서 눈길이 갔던 것은 사실이다. 딱 그만큼의 관심이었다. 수능이 끝난 어느 날. 우진은 시퍼런 새벽 속에 검은 상복을 입은 재경과 마주쳤다. 6년을 뇌사 상태였던 재경의 엄마가 죽었다. “잘 죽었어. 조금 더 살아있었음 내가 못 버텼을 거야. 왜.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나 싶니? 위로해 준 거 취소하고 싶어?” “수고했어.” 우진의 한 마디에 재경은 엄마 얼굴에 흰 천이 덮일 때조차 악착같이 버텼던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 보는 남자의 어깨에 눈물 콧물을 쏟아 냈다. 시간은 흘렀다. 제대 날, 우진은 재경과 같은 동네에서 다시 만났다. “너 맞네. 그때 걔. 군인이야?” “군인이었어. 어제까지는.” “이름이 이우진이야? 그땐 고마웠어.” 재경은 그날 군복에 새겨진 우진의 이름을 알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다. 언제까지고 함께할 거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우리는 절대로 헤어질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 “우진아 나는, 더는 아등바등 살기 싫어. 기회 왔을 때 잡을 거야.” 4년 전, 매몰차게 떠나갔던 재경이 돌아왔다. 약혼도 한 주제에 뻔뻔하게 우진에게 청혼을 해왔다. “결혼하자. 나 좀 살려줘, 우진아.”
열일곱이던 5년 전, 자퇴서만 던지고 돌연 집을 나갔던 것처럼 갑자기 고향 임백산으로 돌아왔다. 죽어도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나는 산 좋고 물 좋은 임백산 탄광촌의 유일무이 꼴통 문제아였으니까. 임백산은 물론 태백산맥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단한 사고를 쳤었다. 그때 도망쳤다 돌아온 나를 제일 반기는 건, 사고의 피해자 고한결이다. “꼴좋다. 왜 다시 왔어? 도망칠 땐 언제고.” 이 지긋지긋한 촌에서 제일 꼴 보기 싫었던 고한결. “공주병 새끼! 누가 지 보러 온 줄 아나! 야! 너 앞으로도 나한테 신경 꺼라!”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한 유일한 남자.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남자.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을, 내 고한결. 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열일곱의 고한결은 어느덧 스물둘이지만 아직도 나오지 못했다. 그곳에 갇힌 너를 구하는 것은 내가 매일 꾸는 꿈이었다. 너와 나의 처음인 이곳에 우리는 다시 왔다. 여기는 우리의 모험 장소, 비밀 임무 기지, 까만 놀이터.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도지운은 원인 불명의 손 떨림과 불안 증세로 인해 약에 빠져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를 하루 앞둔 날, 여느 때처럼 약을 구하기 위해 '검은 골목'으로 향한 그는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때마침 은밀한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박경주가 그를 발견하고 제 집으로 데리고 간다.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같은 순간, 두 남녀에게 폭설처럼 찾아든 사랑 극야 -본문 중- "그래서 날 여기에 데리고 왔나 보네. 약을 더 사게 하려고." 예민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운이 어린 말투가 그와 제법 어울린다고, 경주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순순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와준 게 고마워 지금껏 애써 갖추고 있던 예의를 전부 내던진 모습이 훨씬 그다워 보였다. "집에 약은 많은데, 애석하게도 네가 원하는 미르는 없어." "나와 거래해." "자꾸 거래, 거래하는데 되게 거슬리거든? 그리고 너 나이도 어린데, 약 끊을 생각은 안 해?" "자꾸 너, 너 하는데 나도 좀 거슬리거든. 그렇게 막 불릴 정도로 어린 나이 아니고, 약 끊을 생각도 없어. 당신은 의사잖아. 환자를 충실히 돌볼 의무가 있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을 골랐거든, 내 주치의로. 의사는 환자를 못 골라도 환자는 의사를 고를 수 있으니까." 경주는 지운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을 그저 내버려 두었다. 억지를 받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두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른인 체하는 딱딱한 말투가 흥미롭기도 했고, 낮은 목소리가 제법 듣기 좋기도 했다. "그래서 내 차트에 올려달라고?" 지운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괜찮겠어, 나 돌팔인데도?" 그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과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서늘해 보이는 눈매를 보니 처음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사내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같았다. 뚫어져라 집요하게 저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던 경주가 생각을 털어냈다. 그래봐야 부잣집 도련님의 같잖은 비즈니스다. "좋아. 차트 인. 약은 내 마음대로 처방해. 돈은 선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