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여원. 그때부터였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이후 할머니와 둘이 살아가지만 순탄하지 않은 관계로 인해 여원은 성인이 되자마자 인월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 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고, 약수를 떠다 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작고한 할아버지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던 인월산을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묘한 사람, 아니 존재를 만난다. *** 남자의 입술이 다시 눈에 닿았다 떨어졌다.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아득한 통증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갔다. “업보란다. 매구(埋鬼)의 구슬을 훔친 네 조상의 업보.”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원에 비해 남자는 평온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자, 도와줄 테니 입을 벌려 보렴.” 뭐든 좋았다. 이 아픔을 해결해 준다면 영혼도 내어 줄 수 있었다. 남자는 숨어 있는 여원의 혀를 휘감아 올리더니 질척하게 빨아들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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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중 펜싱과 관련한 내용은 픽션이며 현실과 차이가 있음 명시합니다. 펜싱 선수 지서연의 경기복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기업 인장만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황금색 왕관의 양옆으로 비상한 날개가 뻗어져 있는 마크. 국내 굴지 기업인 로테이블의 마크였다. * * * “복수하고 싶지 않아?” 그가 부어오른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에 차가운 입술이 닿아 따끔거렸다. “네게 왕관을 씌워줄게. 누구도 탐내지 못할, 너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줄게. 나라면 가능해, 서연아.” 모든 것이 끝난 와중에 그가 달콤한 시작을 속삭였다. 동아줄이 내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지만, 욕망으로 검게 썩어버린 동아줄이 눈앞에 있었다. “…조건이 뭐예요? 선배가 나한테 그냥 해줄 리가 없잖아.” 냉소적인 물음에 재화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재화가 서연의 손에 뺨을 얹으며 황홀하게 눈을 접었다. “지서연. 그 자체를 내게 줘.”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갚고자 재연은 민간군사기업 가디온의 대원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임무 파트너로서 코드네임 ‘매드독’, 미친 개 매던을 만난다. “애기야. 엄마 아빠가 밥도 안 줘?”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하는 그와의 악연은 질기게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삐뚤어진 관심은 점차 애정으로 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임무에 나갔던 매던은 유해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5년. 돌연 그가 눈앞에 나타난다. 엄마 아빠를 죽인 군수기업 렉시온의 총수로. “오랜만이야. 내 사랑.” 잿빛의 눈과 마주한 순간, 체내에 있는 모든 피가 차갑게 식어 증발했다. 재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매던.” 낙엽이 바스라지는 듯한 중얼거림에 그가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아, 그리운 목소리야.” *** “나를 원망해?” “아니, 사랑해.” 재연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금조차도 사랑하고 있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게도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에는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랬는데. “하지만 너는 아니야.” 온기 없이 가라앉은 얼굴에 차가운 경멸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한 매던은 5년 전에 죽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현조는 오 년 전과 겹쳐 보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배우처럼 감정을 숨기는 모습이 의연해 보이는 것과 마냥 도망치는 유은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어지는 현조의 으름장에 유은은 더는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두 번 다시 그 같잖은 동생 소리 못 할 줄 알아.” * 「아. 연애요.」 현조가 단조롭게 되뇌어 말했다. 단조로운 표정을 짓던 그가 허스키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인터뷰하던 여자가 말을 멈췄다. 끝없이 올라오던 채팅창이 일순 조용해졌고 유은마저 감성에 젖어있던 생각이 그의 목소리에 저지당한 듯싶었다. 유은이 아는 차현조의 모습이었다. 화면 너머로 시선이 엉킨 것 같아 나른하게 있던 유은의 몸이 긴장감으로 굳었다. 「연애한다면 지금이 좋겠네요.」 「……아. …지금요?」 붉어진 얼굴을 한 여자가 멍청한 질문을 내뱉었다. 마치 현조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오만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제가 열렬히 짝사랑 중이라.」 그가 화려하게도 슈가보이의 이미지를 내던졌다. 《불순한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