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 “스승님이라고 부르셔야지요. 자가.” 잔설마저 녹고 녹음이 우거진 계절, 봄. 봄의 초입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봄의 끝자락에 헤어졌다. 그리고, 해를 넘어 다시 돌아온 그 계절. 소심했던 공주는 눈에 띄게 성숙해졌으며, 도성 최고의 군자는 한바탕 연병(戀病)을 앓았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만은 그리 부르지 마십시오.” 소중한 것은 떠난 후에야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줄곧 그를 사모했던 공주는 이제 진짜 ‘이별’을 말했고, 줄곧 그녀를 밀어냈던 스승은 이제 겨우…… ‘사랑’을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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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이자 동방해각의 동문인 두 사람은, 공사를 막론하고 단 한 군데도 들어맞지 않았다. 청이 따뜻한 차를 좋아하면 류한은 차가운 과일을. 청이 붉은색을 좋아하면 류한은 푸른색을. 4년 전, 청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 폐허가 된 것은 동방해각만이 아니었다. “이런. 아직도 그대가 귀한 신분인 줄 알았습니까?” “죽을 만큼 싫다 하여도, 버티세요.” “나 또한, 버젓이 살아 숨 쉬는 그대를 버텨 내 볼 작정이니.” 류한은 돌아온 청을 경멸했으나,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다. “……좋을 대로 하세요.” 즐거이 당신의 형벌을 받아들이지요. 설사 그곳이 참혹한 지옥일지라도. 뼈가 녹고 살이 찢기는 피의 강일지라도. *** 대양을 따라 자유로이 흘렀던 여인, 이청. 그런 그녀의 붉은 닻을 자처한 사내, 동방류한. 붉은 강에 흐르는 것은 나의 눈물인가, 붉은 연정인가.
“네가 기억하는 2황자는 이미 죽었다.” 적통이나, 황태자가 되지 못한 사국(獅國)의 2황자 능휘. 모후의 처소에 불이 났던 그날 밤 이후. 그는 자신의 인생을 버렸다. 좋아했던 그림도, 평화로운 생활도, 살갗을 물들이는 첫사랑도. 그의 목표는 오롯이 혼자가 되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피바람 부는 황궁에서 살아남기. 철저한 계획하에 세워온 모든 것을 흔드는, 그 여인을 다시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소인은 전하께서 빛을 보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 문장은 빈틈없던 능휘의 빙하를 녹이고 말았다. 너는 대체, 무엇을 믿고 그리 교만한 것일까. 아니면 네가, 기어이 내 세상을 구하러 온 빛일까. *** “그럼 혼인 안 하고 어머니 아버지랑 평생 살지요, 뭐.” 화란은 들꽃처럼 온유한 소녀였다.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된 후, 성씨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뿐.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죄악감. 그것은 온전히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언젠가 선친의 결백을 밝혀내리,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동생을 공부시켰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꽃은 빛을 받는 자리에서 길러져야 가장 반짝이는 법이니.” 십 년 전엔 삶의 신조를 내주었던 소년. 지금은 이 나라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정한 황자. 그와 거래하고, 화란이 직접 황궁에 들어가게 될 줄. 그것을 넘어, 그를 마음에 담게 될 줄.
동갑내기이자 동방해각의 동문인 두 사람은, 공사를 막론하고 단 한 군데도 들어맞지 않았다. 청이 따뜻한 차를 좋아하면 류한은 차가운 과일을. 청이 붉은색을 좋아하면 류한은 푸른색을. 4년 전, 청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 폐허가 된 것은 동방해각만이 아니었다. “이런. 아직도 그대가 귀한 신분인 줄 알았습니까?” “죽을 만큼 싫다 하여도, 버티세요.” “나 또한, 버젓이 살아 숨 쉬는 그대를 버텨 내 볼 작정이니.” 류한은 돌아온 청을 경멸했으나,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다. “……좋을 대로 하세요.” 즐거이 당신의 형벌을 받아들이지요. 설사 그곳이 참혹한 지옥일지라도. 뼈가 녹고 살이 찢기는 피의 강일지라도. *** 대양을 따라 자유로이 흘렀던 여인, 이청. 그런 그녀의 붉은 닻을 자처한 사내, 동방류한. 붉은 강에 흐르는 것은 나의 눈물인가, 붉은 연정인가.
동갑내기이자 동방해각의 동문인 두 사람은, 공사를 막론하고 단 한 군데도 들어맞지 않았다. 청이 따뜻한 차를 좋아하면 류한은 차가운 과일을. 청이 붉은색을 좋아하면 류한은 푸른색을. 4년 전, 청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 폐허가 된 것은 동방해각만이 아니었다. “이런. 아직도 그대가 귀한 신분인 줄 알았습니까?” “죽을 만큼 싫다 하여도, 버티세요.” “나 또한, 버젓이 살아 숨 쉬는 그대를 버텨 내 볼 작정이니.” 류한은 돌아온 청을 경멸했으나,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다. “……좋을 대로 하세요.” 즐거이 당신의 형벌을 받아들이지요. 설사 그곳이 참혹한 지옥일지라도. 뼈가 녹고 살이 찢기는 피의 강일지라도. *** 대양을 따라 자유로이 흘렀던 여인, 이청. 그런 그녀의 붉은 닻을 자처한 사내, 동방류한. 붉은 강에 흐르는 것은 나의 눈물인가, 붉은 연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