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제 그건 뭡니까. 안 만진 데 없이 다 만진 것 같은데.” 15년 만에 다시 나타난 도성그룹 황태손이자 도성전자 상무 도지헌. 비서 괴롭히기를 유희 삼아 즐기는 그의 세 번째 비서 한수연. 수연의 남자 친구가 바람을, 그것도 남자와 피우는 장면을 지헌이 목도한 이후 그들의 관계가 묘하게 달라졌다. “……실수요.” 그날 밤의 일은 분명 실수였다. 수연의 머리카락 끝을 지분거리던 지헌의 손가락이 불현듯 멈추었다. “한수연 씨. 외간 남자가 키스하고, 옷 벗기고, 팬티 벗기는데 좋다고 매달려서 더 해 달라고 떼쓴 걸 실수라고 표현하면 쓰나.” 귀를 의심할 정도로 상스러운 말에 기가 막혔다. 문란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읊는 말투는 오히려 더없이 다정했다. “상호 동의하에 해 놓고. 하루 만에 멋대로 실수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나는 뭐가 됩니까.” 지저분한 말을 잘도 늘어놓은 주제에, 지헌은 고상하고 우아하게 시조나 읊은 양 태연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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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20분 늦게 나타났다. 짜여진 판, 예정된 결과. 마치 연극 같은 이 맞선이 시작되지 않길 바랐지만 유주는 애써 속내를 감추고 미소를 꾸며냈다. “난 도승한, 당신이랑 결혼할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뭐, 연애라도 하자고 이러고 있을까.” 건방지게 굴어서 좋을 건 없었다.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추며 반년만 버티면 되는 일. 하지만 그는 사사건건 유주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예요?” “이제부터 취미로 삼아 볼까 하고.” 나쁜 놈. 무례한 놈. 이 뻔뻔한. 멋대로 건드리고, 마음대로 떠보고, 오만하게 만지며 도승한은 단숨에 유주를 혼란에 빠뜨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그래서 그를 헤어나지 못하도록. “얌전히 굴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끔찍한 결혼 사기극이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모른 채.
“그럼 어제 그건 뭡니까. 안 만진 데 없이 다 만진 것 같은데.” 15년 만에 다시 나타난 도성그룹 황태손이자 도성전자 상무 도지헌. 비서 괴롭히기를 유희 삼아 즐기는 그의 세 번째 비서 한수연. 수연의 남자 친구가 바람을, 그것도 남자와 피우는 장면을 지헌이 목도한 이후 그들의 관계가 묘하게 달라졌다. “……실수요.” 그날 밤의 일은 분명 실수였다. 수연의 머리카락 끝을 지분거리던 지헌의 손가락이 불현듯 멈추었다. “한수연 씨. 외간 남자가 키스하고, 옷 벗기고, 팬티 벗기는데 좋다고 매달려서 더 해 달라고 떼쓴 걸 실수라고 표현하면 쓰나.” 귀를 의심할 정도로 상스러운 말에 기가 막혔다. 문란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읊는 말투는 오히려 더없이 다정했다. “상호 동의하에 해 놓고. 하루 만에 멋대로 실수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나는 뭐가 됩니까.” 지저분한 말을 잘도 늘어놓은 주제에, 지헌은 고상하고 우아하게 시조나 읊은 양 태연한 표정이었다.
남자는 20분 늦게 나타났다. 짜여진 판, 예정된 결과. 마치 연극 같은 이 맞선이 시작되지 않길 바랐지만 유주는 애써 속내를 감추고 미소를 꾸며냈다. “난 도승한, 당신이랑 결혼할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뭐, 연애라도 하자고 이러고 있을까.” 건방지게 굴어서 좋을 건 없었다.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추며 반년만 버티면 되는 일. 하지만 그는 사사건건 유주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예요?” “이제부터 취미로 삼아 볼까 하고.” 나쁜 놈. 무례한 놈. 이 뻔뻔한. 멋대로 건드리고, 마음대로 떠보고, 오만하게 만지며 도승한은 단숨에 유주를 혼란에 빠뜨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그래서 그를 헤어나지 못하도록. “얌전히 굴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끔찍한 결혼 사기극이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모른 채.
“순진하게 생긴 내 비서가 이렇게 사내 좆을 밝히는 줄 누가 알겠어.” 서도헌. 그는 냉정하고 거만하며 이기적인 개새끼로 악명 높았다. 본인의 지시를 벗어난 손톱만큼의 변수도 허락지 않는 지독한 통제광. “전무님이 원하시면, 저는 다 좋아요. 그게 뭐든.” 가장 가까운 곁에서 열과 성을 다해 그를 보필하고, 밤에는 몸을 섞는 모든 순간들이 아라에겐 꿈같이 느껴졌다. 결코 그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 적 없었다. 도헌은 그냥 그로서 완벽했다. “전무님은 절 믿으세요?” “널 믿냐고?” 아라는 입술을 꿈지럭대다가 조금 더 분명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제가 전무님 몰래 피임약을 안 먹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라의 말을 잠시 곱씹은 도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물을까? 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아라를 응시했다. “왜. 이제 내 애를 배고 싶어? 하도 박혀서 더 이상 좆질로는 성에 안 차나?” “아뇨, 저는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내 애를 배고 싶었다면, 진작 뱄겠지.” 커다란 손이 다가와 아라의 아랫배를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문질렀다. “내가 널 임신시켜 주길 바라는 거라면 말해. 혹시 알아? 네가 앙앙 울면서 조르면 들어줄지도 모르지.”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지나치게 이기적인 개새끼. 이 기울어진 관계가 끝난다면 아마도 그건 당신의 결혼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전엔 도무지 먼저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찾아왔다. “그냥 하면 임신할 거예요. 저 이제 피임약 안 먹거든요.” 바로 여기였다. 짝사랑이 끝나는 지점은. “그러니까, 안녕히 가세요.”
미친 피지컬에 황홀한 얼굴, 그리고 망한 인성. 하키 선수 권태준을 수식하는 말은 그러했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제가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비켜. 진흙탕에 같이 뒹굴고 싶은 거 아니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내려온 고향, 무영에서 은하가 마주한 건 피투성이가 된 권태준이었다. 사고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던 남자가 여기 있을 줄이야. “몸져누워 있는 환자인 줄 알았는데 힘이 펄펄 넘치셔서 안심이네요.” “왜. 몸져누웠으면 간호라도 해 주려고?” “그 입만 조금 닫아 주시면, 간호 못 할 것도 없죠. 아픈 사람한테.” 푸른 눈이 은하를 또렷이 응시했다. “많이 컸네. 지은혁이 유난스럽게 싸고돌던 꼬맹이가.” “…….” “다 커서 빈정거릴 줄도 알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깊숙한 동굴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음산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더는 이 남자를 상대하지 말라는 본능적인 경고가 울렸다. 홀린 것처럼 빠져드는 복숭아색 로맨스.
부산 최대의 환락가. 어둠을 좀먹고 자라는 차가운 도시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호텔 바텐더로 일하는 하늘의 진짜 임무는 가짜 위스키를 파는 것. 어김없이 손님을 속여야 하는 평범한 어느 날, 숨이 멎도록 아름다운 남자 윤태훤을 만난다. “서하늘 씨는 참…… 재미있어.” 남자에게 본능적인 끌림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가 위험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애써 태훤을 멀리하려 하지만, 결국 계약으로 얽히게 되고 마는데……. “계약을 파기하고 싶습니다.” “돈만 받아먹고 튀겠다는 건가.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처음부터 대표님이 제 그림 따위엔 관심 없었다는 거 알아요. 그냥 재미로 절 가지고 놀 생각이었던 것도.” “지금 내 꼴을 봐요. 누가 누굴 가지고 노는 중인지.” 목덜미에 쏟아지는 남자의 숨이 한결 짙어졌다. “이런 기막힌 장소에서 아다를 뗄 줄은 몰랐는데.” “아, 아다요?” “왜요, 걸레 쪽이 하늘 씨 취향이에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투명하게 빛나는 갈색 눈동자에 짓궂은 장난기가 서려 반짝였다. “아무 데나 쑤시고 다닌 걸레보단 이왕이면 청결한 자지가 낫잖아.” 과연 하늘은 태훤과의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보름 전,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언니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희주를 억지로 물 밖으로 끌어낸 남자, 권국현. 그가 희주를 구한 건 보통의 인간이 갖는 연민이나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언니가 진 빚을 대신 갚으라는 이유에서였다. “너 의사라며.” “의사 아니라 법의학자요.” “째고 꿰매는 거 전문이겠네. 바느질 잘해?” “시체 전문인데요.” “나랑 잘 맞겠어. 나도 시체라면 꽤 좋아하거든.” 배가 뚫려 와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남자의 상처를 마지못해 치료해 주게 되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마음씨도 존나 천사네.” “죽고 싶은 천사 봤어요?” “예쁘게 사는 게 원래 좀 좆같아.” 국현은 희주에게 딱 다섯 달, 자신의 주치의로 일하면 빚을 까주겠다고 제안한다. “사양하겠습니다.” “상냥하게 말해서 오해했나 본데, 제안 아니야.” “그럼 협박이에요?” “그런 셈이지?” 언니가 생전에 물리 치료사로 일했던 권국현의 저택. 뭔가를 숨기고 있는 그의 부하들. 비밀을 알기 위해서 국현의 주치의가 된 희주, 그런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그와 엮이게 되고. “여태 소중하게 아껴 둔 걸 나 같은 놈한테 처음으로 주는 거야? 안됐네.” 쓰레기 같은데 상냥하고 능글맞은 남자에게 점점 끌리고 만다. “아껴 둔 게 아니라 버리는 건데. 그 쪽한테.” “응, 고맙게 받을게?” 쓰레기 소굴에서 희주는 과연 진짜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을까? 쓰레기를 구분하자. 일러스트: doom
첫사랑. 그딴 간단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나윤은 도진한이란 인간을 반병신처럼 만들어 놓았다. “도진한. 제발 나 아는 척하지 마.” 어이없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린 나윤을 떠올리며 혼자 좆을 잡고 흔드는 역겨운 짓거리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샌가 그의 감정은 죄책감, 집착, 강박 따위가 뒤섞여 괴물같이 몸집을 불려 갔다. “…나,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내가 입술 빨고 혀 비벼 댄 여자도 기억 못 하는 등신 새낀 줄 알았어?” 아득해지는 귓가로 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린 계속 발정 난 개처럼 붙어먹을 거니까.” 무례하고 달콤한 협박. 음습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달라붙는다. “잘 봐. 네가 어디까지 도망가든. 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너한테 이렇게 박을 거야.”
어느 날 아연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생판 모르는 남자와 맞선도 모자라, 결혼까지 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실컷 해 볼걸! 스물아홉 평생 이렇다 할 경험이 없던 아연은 억울함과 반발심에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오랫동안 친구의 영역에 있었던 소꿉친구, 권성현에게. “네 거. 커?” “너 지금… 뭐라고?” 서늘하게 잘생긴 눈매가 확연히 일그러졌다. “…크면, 어쩔 건데.” “한 번만 보면 안 돼?” 섣부른 충동은 설익은 도발이 되었고, 딱 한 번의 일탈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데….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들쑤셔. 아무것도 모르는 게.” 그날 아연은 만고불변의 법칙을 깨달았다. 굶주린 짐승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어느날 나연은 예고없이 낭패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사람 몇 명 보냈으니 군말 없이 따라 나오렴.” 강제로 그녀를 맞선 자리에 데리고 가려는 시커먼 정장 차림의 괴한들, 아니 비서진들이 들이닥치고…. 진퇴양난에 빠진 나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돌파구는 윗집에 사는 ‘남자 사람 친구’ 서우겸뿐이었다. 그런데 말이 좋아 ‘남사친’이지, 사실 그는 나연에게 원수나 다름없는 인간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싫어하는 티라도 내지 말걸.’ 당장 급한데 원수고 뭐고, 나연은 무작정 벨부터 눌렀다. “권나연? 네가 무슨 일….” “잠깐 안에 들어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잠시만, 일단 안에서….” 후다닥 안으로 들어온 나연이 뒤늦게 불길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무언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뻘하게 공기를 갈랐다. 어색한 사이의 이웃과 예정에도 없는 환담을 나누기에는 최악의 타이밍이 아니던가. 특히 상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일 때는 더더욱이. ‘세상에…. 저게 왜 하필 저렇게 서 있어…?’ 우겸은 보기 드물게 놀란 표정이었다. 좀처럼 동요하는 법 없는 싸늘하고 냉랭한 무표정에선 쩌저적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러스트: 라니
우연히 들어간 별채.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였다. 이서의 턱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맙소사. 남자의 다리 사이에 자리한 굵다란 기둥은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상태인데도 무슨 사람 팔뚝만 했다. 나른한 음성이 화살처럼 날아와 귓가에 박혔다. “너무 쳐다보네. 내 좆이 그렇게 빨고 싶게 생겼나.”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을 때, 그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길이며 굵기며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흉측하리만치 커다란 성기가. * 작살로 꿰는 듯한 시선과 마주친 순간, 이서는 그대로 태겸에게 집어삼켜졌다. 요란하게 창문을 때리는 거센 태풍처럼, 모든 걸 휩쓸어 가는 키스였다. ―이서는 그에게 뻗었던 손을 둥글게 말아 주먹을 쥐었다. 이 위험하고 매혹적인 남자에게 더 깊이 빠져들 필요는 없었다. 그게 이 남자가 무심코 내보인 감정의 부유물이든, 혹은 침대로 끌어들인 여자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영악한 습관이든. ―태겸은 직감했다. 이 황홀한 맛을 본 이상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게 독이 든 사과든, 그를 파멸로 이끌 선악과든, 이미 제 손에 떨어진 이상 모두 먹어 치워야 마땅할 그의 소유였다.
남자는 20분 늦게 나타났다. 짜여진 판, 예정된 결과. 마치 연극 같은 이 맞선이 시작되지 않길 바랐지만 유주는 애써 속내를 감추고 미소를 꾸며냈다. “난 도승한, 당신이랑 결혼할 거예요.” “그럼 우리가 뭐, 연애라도 하자고 이러고 있을까.” 건방지게 굴어서 좋을 건 없었다.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추며 반년만 버티면 되는 일. 하지만 그는 사사건건 유주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예요?” “이제부터 취미로 삼아 볼까 하고.” 나쁜 놈. 무례한 놈. 이 뻔뻔한. 멋대로 건드리고, 마음대로 떠보고, 오만하게 만지며 도승한은 단숨에 유주를 혼란에 빠뜨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그래서 그를 헤어나지 못하도록. “얌전히 굴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끔찍한 결혼 사기극이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모른 채.
“이런 덜떨어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여자가 내 아내가 된단 말이죠.” 날 때부터 더는 올라갈 데가 없는 높은 자리에 태어나, 당연한 것을 누리고 인생에 티끌만큼의 오점도 없는 강무혁 대표. “소리 내서 읽어 봐요.” 무슨 짓을 해도 인생이 통째로 곤두박질치는 기분 따위 결코 느낄 일 없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딱 일 년짜리 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부부관계는 의무로서 행한다. 갑이 정하는 시간과 장소, 횟수에 따르며 을은 조건 없이 응해야 한다.” “고개 들고.” “혼인 외 관계, 즉 외도할 권리는 갑에게만 있으며 을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비참해할 필요 없다. 붕괴되기 직전의 삶을 꾸역꾸역 일으켜 세우는 일이 우아하고 고상할 리 없으니까. 서래는 기꺼이 무혁과의 계약 결혼을 받아들였다. 기간은 일 년. 성공적으로 이혼하리라고 결심하였지만, “피임은 제가 하고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임신이라도 할 생각인가?” “제가요? 설마요…….” 상냥하면서도 무례한, 부드러우면서도 위압적이고, 너그러운 동시에 오만하고 나쁜 남자. 강무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망한 사랑을 주워 담지 말지어니, 서래는 무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 “왔어?” 서래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남자는 정작 태연하게 물으며 몸을 똑바로 일으켰다. 끝없이 딸려 올라가는 시선을 좇으며 또 한 번 실감한다. “기다렸어.” 정말 강무혁 그 사람이야. “여길…… 어떻게…….” “그 몸으로 잘도 숨어 다녔어.” 무혁은 서래의 모습을 머리끝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렸다. “지금쯤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상상했는데……. 비참하게 가난하거나 구질구질하기나 할 줄 알았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서부터 처연하리만치 마른 어깨, 느린 속도로 내려간 시선은 끝내 동그랗게 부푼 배에 닿았다. 무혁은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고. 지난 4개월간 그가 느껴야 했던 불쾌한 실의와 상실은 모두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고요히 끓어오르는 화산처럼, 사라진 제 것을 찾는 동안 응축되었던 분노와 지독한 희열이 뒤엉켰다.
“순진하게 생긴 내 비서가 이렇게 밝히는 줄 누가 알겠어.” 서도헌. 그는 냉정하고 거만하며 이기적인 개X끼로 악명 높았다. 본인의 지시를 벗어난 손톱만큼의 변수도 허락지 않는 지독한 통제광. “전무님이 원하시면, 저는 다 좋아요. 그게 뭐든.” 가장 가까운 곁에서 열과 성을 다해 그를 보필하고, 밤에는 몸을 섞는 모든 순간들이 아라에겐 꿈같이 느껴졌다. 결코 그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 적 없었다. 도헌은 그냥 그로서 완벽했다. “전무님은 절 믿으세요?” “널 믿냐고?” 아라는 입술을 꿈지럭대다가 조금 더 분명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제가 전무님 몰래 피임약을 안 먹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라의 말을 잠시 곱씹은 도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물을까? 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아라를 응시했다. “왜. 이제 내 애를 배고 싶어?” “아뇨, 저는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내 애를 배고 싶었다면, 진작 뱄겠지.” 커다란 손이 다가와 아라의 아랫배를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문질렀다. “내가 널 임신시켜 주길 바라는 거라면 말해. 혹시 알아? 네가 앙앙 울면서 조르면 들어줄지도 모르지.”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지나치게 이기적인 개X끼. 이 기울어진 관계가 끝난다면 아마도 그건 당신의 결혼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전엔 도무지 먼저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찾아왔다. “그냥 하면 임신할 거예요. 저 이제 피임약 안 먹거든요.” 바로 여기였다. 짝사랑이 끝나는 지점은. “그러니까, 안녕히 가세요.”
첫사랑. 그딴 간단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나윤은 도진한이란 인간을 X신처럼 만들어 놓았다. “도진한. 제발 나 아는 척하지 마.” 어이없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린 나윤을 향한 그의 감정은 어느샌가 죄책감, 집착, 강박 따위가 뒤섞여 괴물같이 몸집을 불려 갔다. “…나,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내가 입술 빨고 혀 비벼 댄 여자도 기억 못 하는 놈인 줄 알았어?” 아득해지는 귓가로 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린 계속 짐승들처럼 붙어먹을 거니까.” 무례하고 달콤한 협박. 음습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달라붙는다. “잘 봐. 네가 어디까지 도망가든. 난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널 이렇게 가질 거야.”
어느 날 아연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생판 모르는 남자와 맞선도 모자라, 결혼까지 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실컷 해 볼걸! 스물아홉 평생 이렇다 할 경험이 없던 아연은 억울함과 반발심에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오랫동안 친구의 영역에 있었던 소꿉친구, 권성현에게. “네 거. 커?” “너 지금… 뭐라고?” 서늘하게 잘생긴 눈매가 확연히 일그러졌다. “…크면, 어쩔 건데.” “한 번만 보면 안 돼?” 섣부른 충동은 설익은 도발이 되었고, 딱 한 번의 일탈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데….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들쑤셔. 아무것도 모르는 게.” 그날 아연은 만고불변의 법칙을 깨달았다. 굶주린 짐승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우연히 들어간 별채.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였다. 이서의 턱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맙소사.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을 때,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나른한 음성이 화살처럼 날아와 귓가에 박혔다. “너무 쳐다보네.” * 작살로 꿰는 듯한 시선과 마주친 순간, 이서는 그대로 태겸에게 집어삼켜졌다. 요란하게 창문을 때리는 거센 태풍처럼, 모든 걸 휩쓸어 가는 키스였다. ―이서는 그에게 뻗었던 손을 둥글게 말아 주먹을 쥐었다. 이 위험하고 매혹적인 남자에게 더 깊이 빠져들 필요는 없었다. 그게 이 남자가 무심코 내보인 감정의 부유물이든, 혹은 침대로 끌어들인 여자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영악한 습관이든. ―태겸은 직감했다. 이 황홀한 맛을 본 이상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게 독이 든 사과든, 그를 파멸로 이끌 선악과든, 이미 제 손에 떨어진 이상 모두 먹어 치워야 마땅할 그의 소유였다.
※본 도서에는 다소 강압적이고 비도덕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서명그룹 서 회장의 생일마다 돌아오는 가족 수렵 행사. 사냥감이 되어 깊은 산속을 헤매던 설아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맞닥뜨린다. “너 혼자야?” 남자는 사냥한 짐승 옆에 나태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민이나 동정심 따위가 결여된 눈동자. 검은색에 회색과 청색을 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동공이 설아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그제야 설아는 자신의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이 많이 가는 애네.” 남자는 설아의 허리에 티셔츠를 묶어 준 뒤 겨드랑이 안으로 손을 넣어서 설아를 불쑥 일으켰다. 그러고는 담백하게 손을 거둬 갔다. 따뜻한 타인의 온기가 떨어져 나가는 감각에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소리쳤다. 저 사람을 잡아. “정신 차리고, 애기야.” *** 지독하게 깊고 묵직한, 어딘지 축축하면서도 묘하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향. 그날, 산에서의 기억을 일깨우는 냄새. 서태신. 그게 남자의 이름이었다. “줄까?” 싸구려 사탕을 손에 쥔 남자가 대단한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거만하게 말했다. “사탕 안 좋아해요.” “왜?” “어린애가 아니니까.” 설아의 대답에 서태신이 눈을 휘며 웃었다. 여차하면 강제로 벌릴 것처럼 남자의 엄지가 설아의 입술 한가운데를 지그시 문질렀다. “좋게 얘기할 때 벌려. 애기야.” 입술 사이로 들어온 엄지 끝이 아슬아슬하게 혀에 닿았다. “빨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