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권력을 지닌 테제 공작가와 세상 모든 부를 그러쥔 오하라 백작가, 둘의 결합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절절한 사랑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에반젤린 오하라는 준비된 공작부인입니다. 이제 와 다른 여자를 찾기도 번거로울뿐더러 그녀만큼 잘해낼 거란 보장도 없지요.” 데카르노에게 있어 그녀 이상의 공작부인은 없다. 그러니 겨우 파산쯤이야,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이제 그만뒀으면 해요.” “……파혼이라도 하자는 건가?” “네.” 지금껏 가져온 모든 것을 내어놓고 맨몸으로 나선 에반젤린.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그 남자도 놓을 수 있었다. 홀로 가져왔던 마음까지도. “저는 각하를 좋아했어요.” “…….” “설마 하니 제가 공작부인 자리만을 탐냈다고 생각하셨던 건 아니겠지요?” 좋아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쉽게 떠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되다 못해 속이 들끓는 데카르노. 갈수록 꼬여가는 일도, 복잡해지는 머리도, 전부 그 여자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수밖에. 필사적인 홀로서기에 나선 에반젤린을 찾아 나선다. “당신 살아남겠다며. 나 같은 인간 정도는 못 참을 것 없잖아.”
어느 날 세넬리아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세상이 소설 속임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폭군 황제 클리프드의 마수에 걸려 소설 속 남주 베네루치아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세넬리아는 1년을 말없이 그의 곁을 맴돌고, 다시 1년을 쫓아다녀 6년을 연애했다. 그가 혹여 원작 여주를 눈에 담더라도, 세넬리아가 계속하여 마음에 걸리도록. 세넬리아는 그러기 위해 8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베네루치아에게 바쳤다. 그 정도의 노력 없이는 원작의 여주에게서 남주를 뺏을 수 없을 테니까. “나와 결혼해야겠어, 셀리.” 그렇게 8년. 드디어 남주가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