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재 자체가 잊힌 것만 같던, 경영대의 구석진 강의실. 혼자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 무감한 얼굴의 남자는 은오와 눈을 맞춘 채 느리게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 길게 빨아들인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 갔다. 어두운 실내에서 붉은빛은 한층 짙고 선명했다. 남자를 보며 은오는 생각했다. 참 맛있게 빨고, 참 시원하게 뱉는다고. 연기가 무척, 달아 보인다고. “줄까?”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빗소리를 갈랐다. 여자를 향한 질문은, 무료한 와중에 든 가벼운 충동이었다. 저런 순진한 얼굴로는 어떤 대답을 하고 어떻게 반응하려나, 약간의 호기심이 곁들여진 가볍디가벼운 충동. “늘 여기서 피워요?” “피우면?” “다시 와 보게요.” 불청객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절박한 순간 은오가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 길어야 겨우 3개월, 겁도 없이, 무언의 합의하에 시작된 관계였다. 쓸데없이 애틋했던 순간이 그 끝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 눈앞에 펼쳐진 4장의 사진, 그중에서 망설임 없이 집어 든 사진 한 장.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적당한 이름을 붙일 수 없고, 문득 떠오를 때면 아직도 씁쓸한 저릿함을 남기지만. 그래 봤자 한때의 유희였던 여자. 여자의 자리는 늘 기억의 한구석이라 치부했는데. 네가 여기서 나오면 안 되는 거지. 내가 딴 맘을 먹고 싶어지잖아. “오랜만이네, 이은오. 우리, 한번 볼까?” “불장난은 어려서 한때로 끝내는 거예요. 이렇게 결혼으로 억지로 끌고 갈 게 아니라. 왜냐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꼭, 탈이 나니까.” “불이 붙긴 붙었었다는 말이네? 이런 건 나랑만 해. 이 결혼 하자, 은오야.”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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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우와 강선우. 두 사람은 30년 가까이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어느 날, 불현듯 사랑에 빠진 강선우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었을 터였다. “현우야.” 낮은 부름에는 널 향한 욕망이 떨리도록 배어 있다는 걸 알까. “그래서, 뭘 어쩌고 싶은 건데.” 촉. 느닷없는 접촉과 함께 놀란 현우가 입술이 닿았던 제 뺨을 급히 감쌌다. 입술은 새털처럼 가볍게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러자는 말이야.” 뜨거운 입술이 비로소 열렸다. “이러고 싶다는 뜻이야.” 촉. 다시 한번 빠르게. 이번엔 좀 더 깊숙이, 목덜미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뺨을 감쌌던 손이 목덜미를 덮었다. 조금 더 커진 눈망울. “이거까지 하자고, 나랑. 이제 그러자고, 우리.”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은 질문에 가까웠다. 30년 동안 한결같았던 빛깔을 하루아침에 다른 색으로 물들이자는 말이었다. 그래서, 넌 어때?
해강에게는 진오가 전부였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으며, 울타리였다.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그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터였다. “5년. 5년만 기다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사랑해, 해강아.” 간절하게 매달리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친부의 부름에 응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돌연 고해진 한마디로 모든 것이 바뀔 줄이야. 재회를 기약한 약속도 몇 달 되지 않아 덧없이 무너지며, 해강은 고향을 떠났다. 그렇게 11년 후, 한 호텔에서 객실 점검원으로 일하던 해강의 앞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 모셔야 할 본사의 부사장이 되어. 그런데…, "부사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갑작스럽게 마주한 현실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굳은 입을 열었을 때, “이해강 씨, 몇 년생입니까?” “네?” “너무 올드하지 않습니까? 요즘 이런 식이 먹힙니까?” 해강은 환한 미소 대신 비소를 맞닥뜨려야 했다.
한 푼 두 푼 아껴 모은 대학 등록금을 못난 오빠가 홀라당 들고 튀었다. 학업을 계속하려면 그 돈이 절실한 가운데, 오빠를 잡기 위해 찾은 클럽 발코니에서 마주친 이상한 남자가 안 그래도 힘든 그녀의 앞에 자꾸만 나타나 일상을 들쑤신다. 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에 빙글빙글 얄미운 웃음을 걸고서, 새초롬하게 굴기만 하는 지원의 태도가 오히려 마뜩하다는 듯이. “더 알게 되면… 나랑 많은 게 하고 싶어질걸.” “어떤….”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되묻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남자는 야살스럽게 속삭였다. “…뭐든.” 은근한 유혹이 담긴 속삭임에 마음이 하느작거리기 시작한다.
※본 작품은 외전 에피소드 추가로 인해, 기존 본편에서 일부 내용이 교체되었습니다. 본편 및 외전 삭제 후 재 다운로드 시 수정된 부분의 감상이 가능합니다. (2021.09) ※본 작품에는 다수에 의한 강제적 관계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 시, 참고 바랍니다. 해강에게는 진오가 전부였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으며, 울타리였다.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그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터였다. “5년. 5년만 기다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사랑해, 해강아.” 간절하게 매달리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친부의 부름에 응하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돌연 고해진 한마디로 모든 것이 바뀔 줄이야. 재회를 기약한 약속도 몇 달 되지 않아 덧없이 무너지며, 해강은 고향을 떠났다. 그렇게 11년 후, 한 호텔에서 객실 점검원으로 일하던 해강의 앞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 모셔야 할 본사의 부사장이 되어. 그런데…, "부사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갑작스럽게 마주한 현실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굳은 입을 열었을 때, “이해강 씨, 몇 년생입니까?” “네?” “너무 올드하지 않습니까? 요즘 이런 식이 먹힙니까?” 해강은 환한 미소 대신 비소를 맞닥뜨려야 했다.
작은 키, 자그마한 체구, 걸치고 있던 롱코트가 유독 커 보였다. 딱 보아도 미성년자. 여자가 맥주 두 캔을 사려 하자 눈치 빠른 알바생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편의점에서 형성된 묘한 대치 상황은, 평소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창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자를 알고 있다. 2025호. 옆집 거주자. 여자는 단호한 알바생의 태도에 결국 맥주를 포기했다. 창수는 얼마 안 가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자를 다시 만났다. “저기요. 그 맥주요…. 하나만 저한테 팔지 않으실래요?” 만만하게 보였을까, 이 아이 눈에 내가. “줄 것처럼 굴었잖아요, 아니에요?” “신분증 가져와요. 집에 있다며. 학생증 말고.” 여자는 그가 건네는 사탕을 받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현관문을 열려는 창수의 주의를 붙든 것은 조용한 복도에 울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였다. “지금은 내가 현금이 없어요. 사탕값은 다음에 갚을게요. 명창수 씨.” 그의 이름만 유독 또박또박 끊어 뱉은 후 여자는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커다란 소음에서 비롯된 진동이 오래도록 복도에 남았다. 창수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맹랑한 여자는 이후에도 그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울림을 선사하는데…. * “나 오늘 졸업했어요.” “알아. 축하해.” 세상 무미건조한 축하 인사였다. 전에도 그러더니, 축하의 사전적인 의미를 모르나. “축하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 줘야죠.” “기뻐. 즐겁고.” 헐. 상갓집 문상 온 줄. 차라리 말을 말아야지. “선물 줘요.” “내가 왜.” “나 좋아하잖아요.”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난 명창수가 갖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번처럼 오늘도 같이 자요.” “그것만 빼고.” “그럼 섹스해요, 우리.” “…….” “자는 것만 빼고 된다면서요?” “…….” 이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부끄러운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꼴로 어딜 나가. 옷 입고 가.” 창수가 낮게 읊조렸다. 이든은 제 팔을 잡은 커다란 손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가지 말라는 소리는 절대 안 하지? 명창수는 제일 쉬운 그 말은 죽어도 안 할 거지? 그래, 알아. 이든은 손을 탁, 쳐서 떨쳐내고 눈을 치떴다. “상관 마.” 창수를 노려보는 발개진 눈동자에 그렁그렁 물기가 차올랐다. “등신. 줘도 못 먹고.” 이든은 홱 돌아서서 문을 벌컥 열었다.
배우 지윤희. 그녀를 따라다니는 스캔들은 제법 많았다. 같이 작품을 한 배우들부터 재벌 3세까지, 남자와 엮였다 하면 대중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매사 진심으로 상대를 대했던 윤희는 자신에게 씌워진 프레임에 상처를 입지만, 언제가 진심을 알아줄 이가 나타나리라 믿으며 묵묵히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투자사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게 되고, 좋지 않게 헤어진 전 남자 친구인 도민우와 마주하게 된다. “오랜만이다, 윤희. 좋아 보인다?” “너 안 보니까 그런가 보지.” “진짜 많이 변했네, 우리 윤희.”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던 윤희는 필사적으로 밀어내지만, 도민우는 행사장에서 그녀를 끌고 나와 구석진 곳으로 몰고 간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그때 눈앞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등장한 사람은, “그만 놓지?” 그녀가 속한 엔터테인먼트사 이사, 강준오였다. * “직진하면 지윤희 씨 아파트가 보일 겁니다.” “…….” “우회전하면 내 빌라가 나올 거고.” “…….” 윤희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다. “직진할까요.” 질문을 갈무리하고 돌아보는 순간에도 여자는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아니요. 우회전이요.” 고민을 마치고, 묵묵히 그의 유혹을 받아 주었다. 그림 같은 모습으로 앉아 무심하게 뱉는 대답이야말로 제대로 된 유혹이었다.
그저 하룻밤의 치기이자 일탈일 뿐이었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진. 학창 시절 동창인 기선태의 오토바이에 충동적으로 올라탔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다친 곳은?” “…많겠죠.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지만.” 남자의 손끝이 내 얼굴을 가린 헬멧 실드를 올리고, 온통 흑백이던 시야가 단숨에 제 빛깔을 드러냈다. “숨은 쉬고.” 남자의 나른한 시선이 숨을 멈춘 내 얼굴 곳곳을 누볐다. 눈에 새기기라도 하려는 듯, 꼼꼼하게, 핥듯이. 그 순간 깨달았다. 앞으로 이 남자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 “이유가 뭐예요. 왜 자꾸 장난쳐요.” 긴장을 숨기고 겨우 입을 뗐다. 솔직해진 이유였다.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남자는 장난일 뿐일 텐데, 짐작하면서도 물색없이 반응하는 내 불수의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자의 입으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이유랄 게 있나.” 말소리가 입술 사이에서 뭉개졌다.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뒤로 물리고 내 눈을 들여다본다. 이 와중에도 입술의 감촉이 감미로웠다. 흐려지는 내 눈동자에 서려 있을 게 분명한 혼란과 욕망. 그걸 못 읽어 낼 남자가 아니었다. 고개를 완전히 틀며 다시금 입술을 물어왔다. 부드럽게 빨아들이며 혀가 밀려들었다. “…으응.” 어깨에 올린 손으로 그의 옷깃을 불끈 쥐었다. 질끈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자 혀가 질척하게 입 안을 쓸었다. 기대 못지않게 두려움도 컸는데, 막상 닿으니 생경한 감촉이 지핀 열기는 이내 두려움을 압도했다. “예쁜 게, 재미까지 있는데.” 반대쪽으로 고개를 틀며 그가 대답을 덧붙였다. 내가 반응이고 뭐고 보일 정신도 없는 반면 남자는 여유가 넘쳤다. 여린 살을 훑고 혀를 감아올리는 느낌이 그저 아득했다. 스르르 힘이 풀려 젖혀지는 내 고개를 그가 한 손으로 받쳐 잡으며 나머지 손으로 허리를 감아 바짝 당겼다. 입술의 맞물림이 한층 깊어졌다. “달리 이유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