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고 한 이유, 뭡니까?” 키가 크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남자. 재계 서열 3위 안에 드는 대재벌의 후계자, 김재영. “뭐든지 하겠습니다.” 한때는 우아한 생활을 하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온 여자. 지금은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힘없어 보이는 여자, 나연희. “부탁이에요.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일주일만, 일주일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 주세요. 내 소원, 우리 부모님의 억울함, 김재영 씨만 풀어 주실 수 있어요. 제발요.” “확인해 봅시다. 어느 정도인지.” “예?” “내가 판단해야 한다면서요. 무엇이든 하겠다 했던 말, 내 방식대로 확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벗으라고.” 간절했던 것은 그의 작은 도움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박힌 연희의 동아줄은 이대로 끊어지고 마는 걸까? 상처를 간직한 냉철한 남자와 상처 때문에 다시 딛고 일어서려는 여자의 농밀한 사랑 이야기.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32.96%
평균 이용자 수 265 명
* 100명이 선택하면 '명작' 칭호가 활성화 됩니다.
'명작'의 태양을 라이징 해보세요.
이서가 한남동 본가로 온 건 준모가 6학년이 되던 해 봄이었다. 미선나무에 꽃이 지고 설유화가 눈처럼 하얗게 피어난 시기였고, 꽃샘추위가 유별난 해여서 꽃나무가 심하게 몸살을 앓던 때였다. 에―취! 날아든 꽃가루에 별안간 재채기가 터졌다. 준모의 재채기 소리에 방심하고 있다가 머리채라도 잡힌 것처럼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아이의 커다란 눈망울과 마주치는 순간, 준모는 모든 사물이 정지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마당의 풍경이 훌쩍 사라진 듯 볼품없는 그 아이만 도드라져 보였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 아래로 상처받은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드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앙다문 턱이 덜덜 떨리면서 그렁그렁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별안간 가슴이 뜨끔했다. 한편으론 기분이 확, 상하면서 성질이 돋아 올랐다. 내가 뭘 어쨌다고?
“결혼하자.” 그의 낮은 목소리 탓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수고만큼의 고려도 없어 보였다. “미쳤어요?”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의식 없이 누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남자의 애까지 낳은 사람은…… 내가 아니거든.” 태희는 서 있기도 버거워 뒤로 주춤주춤 걸어 벽에 몸을 기댔다. 급히 나온 숨이 거칠게 토해졌다. “미친 짓을 결국은 하고야 말았더라고. 내 어머니란 사람과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작당이란 걸해서 말이야.” “난…… 나는…….” “설명할 필요 없어. 이틀 동안 생각이란 걸 해 봤지.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단호하고 위압적인 말에 기가 질리는 것 같았다. “어설픈 신사도는 인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기회가 왔을 때, 널 가졌어야 했어. 늦었지만 이제 내가, 널 가져 보려 해.” “선배!” “내가 가진 게 참 많은 놈이거든. 지금부터 난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거야.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 너도 좋아하는 거잖아. 누려.”
[엄마도 허락하셨어. 유민오빠 부모님도 당장 날을 잡재.] 하는구나, 결국. 동생이 내 전남친과 결혼한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집안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돌아온 건 지독한 배신감과 자괴감. 그때 자신의 삶으로 급작스레 끼어든 한 남자. 처음 시작은 소개팅이었다.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면서요. 호감을 갖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은서 언니를 볼 때마다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면서요.” “내가?” “네, 그쪽이요.” “조금 당혹스럽기는 한데… 그랬다고 치고. 그래서?” 당혹스럽다고 말하는 남자의 눈은 오히려 흥미롭게 빛났다. 그때 눈치챘어야만 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사랑 말고 딱, 그것만 해요. 우리.” 가볍게 시작한 관계였기에 두 번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일보사 문화부 기자 김치양. 문화부이면서도 원래 몸담았던 사회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사회부를 기웃거리던 그녀가 드디어 떡밥을 물었다! “검사들, 구린 기업에서 뇌물 받고 뒤 봐주는 건 어제오늘 일 아닌 거 알죠? 뒤통수 맞은 스폰서가 검사들 시원하게 엿 먹여 보겠다고, 비리 검사 명단과 구체적인 향응 제공 내용을 우리한테 투고했어. 그런데 제보자가 워낙 구린 놈이라 괜히 들쑤셨다가 망신당할까 봐 편집장이 그걸 검찰에 넘겼고. 그 명단에 정문호 검사도 있어.” 어쩌면 다시없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떡밥에 아드레날린이 폭주했다.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도 남을 만한, 기자라면 한 번쯤 덤벼 볼 만한 인생 떡밥이다. 거기다 정문호라니!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 검사 정문호. 그리고 감찰부도 아닌 평검 정문호에게 지검장이 던져 준 검찰 비리 명단. “조사 착수해.” “파헤치는 용도입니까? 덮는 용도입니까?” 지검장은 문호와 다른 이유로 미간을 구겼다. 조무래기 주제에 너무 거침이 없다. “내가 자네한테 이 일을 맡기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야?”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자네도 명단에 있어.” “봤습니다.” 태연하게 대꾸하는 문호의 표정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비리 검사로 명단에 오른 정문호, 그를 파헤치려는 김치양. 그들이 마주한 순간― “너 뭐 하자는 거야?” “……뭐 하긴? 검사 비리 현장 취재 왔지. 정문호 검사.” 오해와 상처로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결혼하자.” 그의 낮은 목소리 탓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수고만큼의 고려도 없어 보였다. “미쳤어요?”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의식 없이 누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남자의 애까지 낳은 사람은…… 내가 아니거든.” 태희는 서 있기도 버거워 뒤로 주춤주춤 걸어 벽에 몸을 기댔다. 급히 나온 숨이 거칠게 토해졌다. “미친 짓을 결국은 하고야 말았더라고. 내 어머니란 사람과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작당이란 걸해서 말이야.” “난…… 나는…….” “설명할 필요 없어. 이틀 동안 생각이란 걸 해 봤지.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단호하고 위압적인 말에 기가 질리는 것 같았다. “어설픈 신사도는 인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기회가 왔을 때, 널 가졌어야 했어. 늦었지만 이제 내가, 널 가져 보려 해.” “선배!” “내가 가진 게 참 많은 놈이거든. 지금부터 난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거야.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 너도 좋아하는 거잖아. 누려.”
-본문 발췌- 남자는 비교적 얇은 두께의 영문 잡지를 읽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생각을 하기 전에 말이 먼저 나왔다. 머리만 짧았지 옆에 앉은 남자는…… 머리카락을 모두 쓸어 올려 넘기고 이마를 드러내 보이게 되면 어쩌면…….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은재가 잠시 책을 내려놓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의 온화함이 묻은 말투로 묻는다. “아뇨.” 그런데 왜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건지 묻는 눈빛이다. “누구를 많이 닮았어요. 제가 아는 누군가와…….” 말을 하고 보니 더 닮은 것 같다. 어쩌면 며칠 전 황 교수 연구실에서 봤던 얼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에 자동 기억되었다가 꿈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꿈에 나타난 김춘추와 똑같이 생겼어요.’ 이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분명히 미친 사람 취급을 받든가 못 돼도 4차원 소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외전 단독선공개] 여희의 악랄한 계략에 강제로 하룻밤 동침한 사내, 그가 황제라니! 약초꾼 할머니와의 평화롭던 설연의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혔다. *** 황제의 모습이란, 사찰 탱화 속 악신을 물리친다는 신장(神將)의 위엄쯤으로 부지불식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릅뜬 두 눈, 호랑이 눈썹, 코가 주먹만 한 얼굴, 철갑옷을 입고 무시무시한 투구를 쓰고 칼을 든 붉은빛이 선연한 장정. 꼭 같진 않을지라도 비슷하기라도 해야 아귀가 맞을 것인데…. 헌데 계집처럼 예쁘장한 이목구비에 뽀얀 살갗의 사내를 황제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존귀한 풍신, 범상치 않은 빛을 뿜어내는 눈초리엔 기겁한 것이다. “지금껏은... 하늘이 하늘인 것처럼, 황제폐하도 황제폐하일 뿐이었습니다. 실재하긴 하되... 가까이 대면할 일은 평생 없을 거라 믿었던...” “그런데?” “이렇듯 하찮은 저에게 왜 이러시는지... 저를 괴롭게 하신다 하여 황제폐하께 무슨 득(得)이 있고, 어떤 실(失)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질게 대한 것의 항변이었다. “그러니 내버려 두라?” 성큼 다가오는 황제 때문에 설연은 저도 모르게 흠칫 뒤로 몸을 물린다. “할 말 다하는 것 치고는 간이 작지 않느냐.” 웃어라! 명하면 웃어 주려나. 이런 마음 또한 해괴하였다. 어쩌면 목을 내어 놓고 죽이라, 내려놓았을 때 부터였을까. “네 말처럼 하늘이 하늘이기만 하더냐. 하늘에서 비를 내리면 땅은 젖어 드는 것이고...” 가는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한 손에 잡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듯 연약하였다. 손가락 끝에서 여린 맥이 팔딱팔딱 튀어 오른다. 비 맞은 새처럼 애처롭게. “또한 하늘에서 눈을 내리면 땅은 어는 것이 순리이지. 그렇듯 나도 네게 그런 황제가 될 것이다.”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작품입니다.]
결혼을 한다고만 생각했지 미처 이런 것까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다. 여기서, 지금 당장.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거절의 기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33층을 눌렀을 때, 내려서 복도를 걸을 때, 카드 키를 꽂을 때. 그는 강요하지 않았다. 들어올 건지 나갈 건지 결정을 기다려 주었다. 승아는 선택을 했고, 룸에 들어 온 이상…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왜 지금이죠?” “앞당겨 보고 싶었습니다. 결혼생활의 한 부분을.” 미칠 듯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의 남성성이 버겁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제어되지 않는 자신이 낯설고, 허물어지는 게 두려웠을 뿐이다. “이런 결혼… 제대로 될 리가 없어요.” “속단은 금물입니다.” 앞으로의 결혼생활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현대물 #선결혼후연애 #몸정〉맘정 #애잔물 #재벌남 #츤데레남 #내유외강녀 #상처녀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에 맞게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아빠! 막내딸 뉴욕으로 간다구요. 한 달이나 있다가 올 건데?” 아빠! 나 좀 봐 줘요. 제발. “한 달이 뭔 대수라고? 네 언니 오빠는 일 년씩 어학연수도 다녀왔구만.” 아버지의 무심이 익숙해진 스물다섯 살 은채경. 행선지는 뉴욕, 목표는 탈출. 그 다음은 독립이다! 그.러.나! 어쩐지 처음부터 꼬여도 너무 꼬이는 거 아니야? 이제 막 뉴욕에 도착했을 뿐인데 가방을 몽땅 도둑맞질 않나, 마중 나온다던 친구는 나오지도 않고…….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누구야!” 짙은 눈썹에 예리하고 지적인 눈빛, 고집스럽게 생긴 반듯한 코와 선명한 인중, 또렷한 입술선, 차갑고 냉정한 인상의 남자, 에단 피터슨. “헬렌이 또, 거리의 여자를 데리고 오셨네.” “난 거리의 여자 아녜요.” “알고 있어. 마치 자신이 곤경에 빠진 공주나 되는 것처럼 포장해서 말해 놓고는 스스로 한 말을 다시 믿어 버리는 거지.” 이 남자 뭐야. 왜 이렇게 꼬인 거야? 내가 어디를 봐서? 첫 만남부터 최악. 뉴욕에 있는 동안 지독하게 시니컬한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채경의 운명은 과연……?
그를 만난 건 뉴욕 맨해튼 106번가와 파크 애비뉴가 만나는 할렘 지역의 외벽 근처였다. 남자는 ‘잘생겼다’ 소리는 좀 듣고 살겠다 싶었지만, 어느 한구석 부드러워 보이는 곳이 없었다. “너, 제정신 아니지? 그게 아니라면 순진하거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굳이 답을 들어야겠다면… 제정신 아닌 거?” “맘에 드네. 나도 제정신은 아니거든.” 그는 희주를 곧장 침대로 이끌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희주의 시선을 붙잡으며 남자가 자신의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군살 없는 탄탄한 상체가 서서히 드러나며 근육들이 힘차게 꿈틀거렸다. “너도 벗어.” *** 맑고 환한 세상 한가운데서 저만 컴컴한 모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때였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다 닥치는 대로 잡았던 손이 그의 손이었을 뿐.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값진 부분을 잘라 들고 튄 여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래?” 나도 모르는 세상에서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내게는 위태롭던 그 시간이 ‘가장 뜨겁고, 값진 부분’이었을 거라고는. 이름도 모르던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8년 만에.
“아빠! 막내딸 뉴욕으로 간다구요. 한 달이나 있다가 올 건데?” 아빠! 나 좀 봐 줘요. 제발. “한 달이 뭔 대수라고? 네 언니 오빠는 일 년씩 어학연수도 다녀왔구만.” 아버지의 무심이 익숙해진 스물다섯 살 은채경. 행선지는 뉴욕, 목표는 탈출. 그 다음은 독립이다! 그.러.나! 어쩐지 처음부터 꼬여도 너무 꼬이는 거 아니야? 이제 막 뉴욕에 도착했을 뿐인데 가방을 몽땅 도둑맞질 않나, 마중 나온다던 친구는 나오지도 않고…….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누구야!” 짙은 눈썹에 예리하고 지적인 눈빛, 고집스럽게 생긴 반듯한 코와 선명한 인중, 또렷한 입술선, 차갑고 냉정한 인상의 남자, 에단 피터슨. “헬렌이 또, 거리의 여자를 데리고 오셨네.” “난 거리의 여자 아녜요.” “알고 있어. 마치 자신이 곤경에 빠진 공주나 되는 것처럼 포장해서 말해 놓고는 스스로 한 말을 다시 믿어 버리는 거지.” 이 남자 뭐야. 왜 이렇게 꼬인 거야? 내가 어디를 봐서? 첫 만남부터 최악. 뉴욕에 있는 동안 지독하게 시니컬한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채경의 운명은 과연……?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다가 콱, 꼬꾸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소리 소릴 질렀다. “으아! 으아아아.......” 골이 터지도록 소릴 내질렀다. “그러고도 선생이냐!” 훌쩍. "그러고도 선생이냐고. 선생이면.... 최소한 인간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분이 풀리지도 수치심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치게 억울하고 분한데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솔은 힘없이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나무 기둥에 머리를 쿡 박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방도 멘 채였고 방문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벌써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꼼짝 않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눈물만 흘렀다 그쳤다 했다. 그렁그렁해진 시야로 키가 큰 남자가 걸어왔다. 어둑어둑한 대기 속에서도 얼굴에 빛이 도는 걸로 봐서 귀신이지 싶었다. 귀신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더 무서울까 싶어 눈만 끔뻑끔뻑했다. "왜 이러고 있어?" 낮았지만 정확한 발음, 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성이었다. 솔은 기댔던 몸을 세웠다. "누구...신데요?" 솔이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남자. 표정이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무감한 얼굴, 큰 키, 겨울하늘처럼 차가운 눈동자. 세상으로부터 숨어사는 작가 최이안과 폐가에 숨어 든 바람난 고3 은솔이 만났다.
“만나자고 한 이유, 뭡니까?” 키가 크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남자. 재계 서열 3위 안에 드는 대재벌의 후계자, 김재영. “뭐든지 하겠습니다.” 한때는 우아한 생활을 하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온 여자. 지금은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힘없어 보이는 여자, 나연희. “부탁이에요.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일주일만, 일주일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 주세요. 내 소원, 우리 부모님의 억울함, 김재영 씨만 풀어 주실 수 있어요. 제발요.” “확인해 봅시다. 어느 정도인지.” “예?” “내가 판단해야 한다면서요. 무엇이든 하겠다 했던 말, 내 방식대로 확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벗으라고.” 간절했던 것은 그의 작은 도움뿐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박힌 연희의 동아줄은 이대로 끊어지고 마는 걸까? 상처를 간직한 냉철한 남자와 상처 때문에 다시 딛고 일어서려는 여자의 농밀한 사랑 이야기.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에 맞게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20년 지기, 하선우와 송백리. 서로에게 남자 여자가 아닌 그저 사람친구인 그들은 함께 미술을 배우며 성인이 되어서도 우정만 쌓는다. 여배우 어머니를 둔 미술 천재, 얼굴 천재, 시니컬 도도의 대명사. 하선우 그런 선우의 옆에서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지만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송백리. 그러던 어느 날 선우의 어머니이자 여배우인 하희원으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네가 우리 선우 감시 좀 해 줘라.” 고마워하며 사양하는 게 서로 낯이 서는 길이었지만……. 그는 20년 지기 친구, 시쳇말로 남자 사람 친구. 같이 산다고 뭔 일 있겠어? ……그런데 뭔 일이 있더라! 한 침대에 뒹굴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던 남자 사람이 왜 이제 와서 ‘남자’로 보일까.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정말 불편하고 괴로워 한 고백, “네가 남자로 보여.” 선우의 입에서 미소가 싹 걷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프다. “친구로 남아야 평생 갈 수 있어. 여자로 내 앞에 서면 길어야 일 년이야. 그러고 싶어?” 왜 이런 남자한테만 끌리는 거야? 짜증은 나면서도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자신을 밀어내려는 선우의 곁에서 악착같이 달라붙는 백리와 어느새 그녀에게 점점 함락당하고 있는 하선우. 그러던 중 하선우의 친아버지가 나타나 선우의 인생을 멋대로 쥐고 흔들고, 대학 때 ‘대나무 숲’ 게시 글의 찬란한(?) 주인공이었었던 백리의 인생도 대나무 숲 건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흔들리게 된다. 제 삶과 백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괴로워하던 선우는 제 삶과도 같았던 그림을 손에서 놓으며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백리를 떠한 하선우. 그리고 그가 없이도 꿋꿋하게 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송백리. 몇 번의 만남과 몇 번의 충격과 또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며 선우와 백리는 서로의 마음이 더욱 단단해진다. 이윽고 완전히 돌아온 하선우와 그런 그를 따뜻하게 안아 주는 송백리. 그들은 해피엔딩을
그를 만난 건 뉴욕 맨해튼 106번가와 파크 애비뉴가 만나는 할렘 지역의 외벽 근처였다. *** “맘에 드네. 나도 제정신은 아니거든.” 희주의 시선을 붙잡으며 남자가 자신의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군살 없는 탄탄한 상체가 서서히 드러나며 근육들이 힘차게 꿈틀거렸다. “너도 벗어.” 와인과 촛불, 분위기를 돋울 잔잔한 음악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구는 그를 보면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빤히 지켜보는 남자 앞에서, 브래지어만 남기고 티셔츠와 블라우스를 차례로 벗었다. 어떻게든 몸을 가려보려 애쓰는 사이, 남자가 침대 밑에서 상자를 끄집어냈다.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꽤 무거운지 끌어내는 팔뚝 근육 위로 힘줄이 꿈틀거렸다. 상자는 사람 하나는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였다. 다 들어가려면 반쯤은 접혀야겠지만. “침대에 엎드려.” 갑자기? 지레 겁이 났다. 희주는 남자와 침대에 가려 반만 보이는 상자를 번갈아 가며 살폈다. “시, 싫어! 난 가학적인 거… 모, 몹시 경멸해. 할 거면 최소한 마주 보면서 하고 싶어.” 뱉어 놓고도 민망한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자에 든 물건이 뭔지만 알았어도…. “난 얼굴 보면서 하고 싶진 않은데? 빤히 쳐다보면서 무슨 재미로?” 남자가 씩 웃는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다가 콱, 꼬꾸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소리 소릴 질렀다. “으아! 으아아아.......” 골이 터지도록 소릴 내질렀다. “그러고도 선생이냐!” 훌쩍. "그러고도 선생이냐고. 선생이면.... 최소한 인간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분이 풀리지도 수치심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치게 억울하고 분한데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솔은 힘없이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나무 기둥에 머리를 쿡 박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방도 멘 채였고 방문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벌써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꼼짝 않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눈물만 흘렀다 그쳤다 했다. 그렁그렁해진 시야로 키가 큰 남자가 걸어왔다. 어둑어둑한 대기 속에서도 얼굴에 빛이 도는 걸로 봐서 귀신이지 싶었다. 귀신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더 무서울까 싶어 눈만 끔뻑끔뻑했다. "왜 이러고 있어?" 낮았지만 정확한 발음, 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성이었다. 솔은 기댔던 몸을 세웠다. "누구...신데요?" 솔이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남자. 표정이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무감한 얼굴, 큰 키, 겨울하늘처럼 차가운 눈동자. 세상으로부터 숨어사는 작가 최이안과 폐가에 숨어 든 바람난 고3 은솔이 만났다.
그를 만난 건 뉴욕 맨해튼 106번가와 파크 애비뉴가 만나는 할렘 지역의 외벽 근처였다. 남자는 ‘잘생겼다’ 소리는 좀 듣고 살겠다 싶었지만, 어느 한구석 부드러워 보이는 곳이 없었다. “너, 제정신 아니지? 그게 아니라면 순진하거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굳이 답을 들어야겠다면… 제정신 아닌 거?” “맘에 드네. 나도 제정신은 아니거든.” 그는 희주를 곧장 침대로 이끌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희주의 시선을 붙잡으며 남자가 자신의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군살 없는 탄탄한 상체가 서서히 드러나며 근육들이 힘차게 꿈틀거렸다. “너도 벗어.” *** 맑고 환한 세상 한가운데서 저만 컴컴한 모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때였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다 닥치는 대로 잡았던 손이 그의 손이었을 뿐.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값진 부분을 잘라 들고 튄 여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래?” 나도 모르는 세상에서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내게는 위태롭던 그 시간이 ‘가장 뜨겁고, 값진 부분’이었을 거라고는. 이름도 모르던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8년 만에.
[엄마도 허락하셨어. 유민오빠 부모님도 당장 날을 잡재.] 하는구나, 결국. 동생이 내 전남친과 결혼한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집안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돌아온 건 지독한 배신감과 자괴감. 그때 자신의 삶으로 급작스레 끼어든 한 남자. 처음 시작은 소개팅이었다.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면서요. 호감을 갖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은서 언니를 볼 때마다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면서요.” “내가?” “네, 그쪽이요.” “조금 당혹스럽기는 한데… 그랬다고 치고. 그래서?” 당혹스럽다고 말하는 남자의 눈은 오히려 흥미롭게 빛났다. 그때 눈치챘어야만 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사랑 말고 딱, 그것만 해요. 우리.” 가볍게 시작한 관계였기에 두 번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작품입니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다가 콱, 꼬꾸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소리 소릴 질렀다. “으아! 으아아아.......” 골이 터지도록 소릴 내질렀다. “그러고도 선생이냐!” 훌쩍. "그러고도 선생이냐고. 선생이면.... 최소한 인간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분이 풀리지도 수치심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치게 억울하고 분한데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솔은 힘없이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나무 기둥에 머리를 쿡 박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방도 멘 채였고 방문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벌써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꼼짝 않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눈물만 흘렀다 그쳤다 했다. 그렁그렁해진 시야로 키가 큰 남자가 걸어왔다. 어둑어둑한 대기 속에서도 얼굴에 빛이 도는 걸로 봐서 귀신이지 싶었다. 귀신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더 무서울까 싶어 눈만 끔뻑끔뻑했다. "왜 이러고 있어?" 낮았지만 정확한 발음, 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성이었다. 솔은 기댔던 몸을 세웠다. "누구...신데요?" 솔이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남자. 표정이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무감한 얼굴, 큰 키, 겨울하늘처럼 차가운 눈동자. 세상으로부터 숨어사는 작가 최이안과 폐가에 숨어 든 바람난 고3 은솔이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