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진 않아도 괜찮아
작가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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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는, 남자들의 호의는 사절.’ 베이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오솔길의 철학이자 좌우명이다. 콩쥐 팥쥐, 신데렐라의 사촌뻘 신세인 외로운 캔디, 바른 심성의 소유자 오솔길 앞에 동, 서양의 적절한 조화가 아름다운 남자, 이든 챔프먼이 나타난다. 과연 그는 오솔길을 가둔 틀에서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이 될 수 있을까? 일단은 미대의 교수이자 미술관 관장의 신분을 이용해 오솔길에게 미술 수업을 제의 하는데... -본문 중에서- “아, 좋네요. 꽃향기도 물씬 풍기고.”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을 한 두 사람은 꽃향기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산책을 즐겼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숨을 깊이 들이쉰 솔길이 산책로에서 풍겨오는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네요. 좋은 사람과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고.” “좋은 사람?” “내게 솔길 씨는 좋은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알아주려나? 이든이 깊어진 눈빛으로 솔길을 바라보았다. 슬며시 손을 들어 컵을 들고 있지 않은 솔길의 한 손을 잡았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옆으로 다가갔다. “그렇구나. 내가 이든 씨에게 좋은 사람이구나.” 그의 손이 부드럽게 솔길의 손을 감싸 주었다. 마치 그의 품에 안겨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는 솔길에게 온기를 나눠 주고 있었다. “호접란의 꽃말 혹시 알아요?” 솔길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행복이 날아온다. 또 하나는 당신을 사랑…….” 차마 뒷말은 내뱉지 못했다.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빠져든다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무서운 속도감으로 그녀의 마음속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가 바람둥이처럼 보이거나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속절없이 빠져들 것만 같았다. 솔길이 애써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녀의 몫으로 주어진 사람이 아니라고 가슴에 달린 문에다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못을 박기 시작했다. 솔길의 손이 슬며시 이든의 손을 빠져나왔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까지 말하고 입을 닫아 버린 솔길을 대신해 꽃말을 완성했다.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솔길을 바로 앞에 보이는 벤치에 올라서게 했다. 이제야 얼추 키가 맞았다. 이든이 솔길을 올려다보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양 뺨을 잡았다. 서서히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이든이 입술을 벌려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떼기를 반복하자 치열이 맞닿았다.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이까지가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둘의 거리도 딱 이쯤이니까. 이든이 아쉽게 입술을 한 뼘 정도 떨어뜨렸다. 이든이 그녀의 눈빛을 살폈을 때,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다면서요?” 솔길의 뺨 위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불륜이라도 저지른 여자처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이었다. “그녀와 아직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둔한 여자는 아직도 그 사람이 자신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제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그녀를 달래며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의 흔적을 그의 손으로 지워 갔다. 그녀가 살짝 그의 손길을 피했다.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해요. 우리.” 좋아한다는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 그녀가 그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이용한 셈이었다. 무엇을 못 견뎠는지 그의 무자비한 공격이 솔길에게는 배려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감정.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버릴 일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자신을 걱정했다.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아무 일도. 미안해요. 솔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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