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누어진 목표물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쏴도 됩니다.” 차가운 총구는 나의 가슴에. 돌차간에 내 숨을 앗아갈 방아쇠는 염이재 손에 쥐어졌다. “나 쫀 거 맞고, 긴장하고 겁먹어서 괜히 이상한 소리 늘어놓은 것도 맞아요.” “이게 돌았나. 뒈지고 싶어?” “그런데 그거 딱 오늘까지예요.” “…….” “안 쫀다고요, 이제.” 그의 눈이 내 얼굴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 남은 내 도박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못 믿으시겠으면 방아쇠 당겨요. 여기 아니면 오갈 데 없는 애거든요.” “…….” “울고불고할 일도 없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속으로는 아직도 떨렸다. 마주치고 있는 눈동자가 언제든지 흔들릴 것 같았고, 총구를 쥔 손을 뿌리치고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랬다가는 겨우 붙들고 있는 기회가 송두리째 뽑힌다는 걸 알았기에 염이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염이재. 인두겁을 쓴 살인자는 나를 말없이 바라만 보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여태껏 무미건조하거나 비웃음을 담고 말했다면, 지금은 약간의 흥미를 묻힌 채 물었다. “여은우요.” “이름이 꼭 여우 같네.” “…….” “남자 꾀어서 간 빼먹는 여우.” 묵직하고 매끈한 총구가 나의 명치 아래를 꾸욱 눌렀다.
🌟 로맨스 소설 중 상위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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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어요.” “…….” “아빠한테서 도망치는 거. 그거 하고 싶다고요.” “그럼 간단하네.” 치이익. 재떨이에 담배가 비벼지며 시뻘건 불이 꺼졌다. “말이 약혼이지, 몸 섞는 사이라 생각해.” ……몸? “그러면 난 대가로 그 뭣 같은 집에서 구해 주지.” 맥락을 다 이해했으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상식은 지랄이.” “맞잖아요.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몸을 섞다니 무슨 짐승도 아니고…….” 혼란에 찬 낯을 하고서 뒷걸음질 쳤다. “저, 그때는 제가 술에 취해서 그랬던 거예요. 평소엔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요.” 우강재는 제게서 멀어지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의자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긴 다리로 빠르게 걸어왔다. 그가 코앞까지 맞붙어 오자 향수와 섞인 담배 냄새가 훅 끼쳤다. “난 아무 여자한테나 올라타는 줄 압니까?” “……읍.” “누굴 쓰레기로 아나.” 순간적으로 내쉬는 숨을 멈추었다. “근데 너와 내가 꽤 잘 맞았거든. 짐승처럼.”
※ 본 작품은 강압적 관계 및 노골적인 표현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가까웠다 싶으면 멀어져 있고, 멀어졌다 싶으면 다시 가까워지는 남자. “……날 왜 구해줬어요?” 나를 구원해준 이유를 묻자 그는 푸석한 웃음을 흘렸다. 입술 사이에선 희뿌연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고, 특유의 낮은 음성이 흩어졌다. “글쎄.” 그는 이런 남자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고 큰 감정 변화도 없었으며 언제나 건조한 낯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게 싫지 않았다. 외려 좋았다. 아니, 나는 그런 그를 원했다. 마치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당연하게 끌렸고 애정을 갈구했다. 치이익. 필터까지 타던 담배가 재떨이에 비벼 꺼졌다. “왜 그랬을까.” 서늘한 손가락이 깡마른 쇄골 뼈를 스치며 아래로 향했다 “말라빠진 네 몸도 시시하고.” “아……!” “나만 보면 달아오르는 것도 시시한데.” 처음 느껴보는 손길에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소름. 거기다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어느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냥 변덕이야. 시시한 널 구해준 건.” “……그래도 좋아요.” “그러면.” “…….” “이대로 널 임신시켜도 좋다는 거겠지.” 강이든. 그는 나의 구원자였고, 나는 그에게 구원받았다. “네…… 임신시켜 주세요.” 거부할 이유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누워. 네 남편 될 사람 밑에.” 천천히 뉘어지는 몸. 기구하고 하잘것없는 운명의 선구였다.
남겨울은 자신의 이름처럼 춥고 차갑고 건조한 겨울이 싫었다. 꼭 싸구려인 제 인생과 닮아 있어서. *** “애인이면 우리가 사귄다는…….” “어. 사귄다고 말하고 다녀.” “하지만 사귀는 건 좀 갑작스러운데요.” “사귀는 척만 하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너랑 사귀어?”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이상했다. 쿵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멈춰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아저씨.” 그리고 문득 나에게 잘 해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스무 살이 되면 튀어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집에 있으란다. 그것도 제 이름을 대며 애인 행세를 시켜서까지.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 우리 만난 지 오래되지도 않았잖아요.” “글쎄.” “…….” “불쌍한 유기견 데려와 키우면서 큰 생각 안 하잖아.” 백휘경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피곤하다는 듯 제 어깨를 주물렀다. 애인이라거나 사귄다는 말에 잠깐이나마 놀랐던 나는 왜인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너한테 시킬 게 있으니 서로 덕 보자고.” 갓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런 나보다 11살이 많은 아저씨는 오늘부터 서로를 애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키워줘, 말아?” 서로의 필요 하에 시작된 가짜 연애였으나 나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연애였고, 그 상대가 백휘경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키워주세요. 아저씨.” 어찌 됐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의 첫 연인.
“올림픽까지 남은 5개월 반 동안 저랑 연애해요.” “뭐?” “저도 선수님이 연애하지 말라고 해서 못 하니까 그냥 우리 둘이 하자고요.”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은 몹시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쏟아졌다. “올림픽만 잘 마무리하면 뒤끝 없이 헤어지기. 어때요?” 아무 대답 없이 날 올려다보는 눈에 긴장된 심장이 쿵쾅거렸고, 손바닥으론 땀이 맺혀 들었다. “뭐, 싫으면 말고요…….” “누가 싫대.” 그때 커다란 손이 내 팔목을 잡아당겼고, 아차 할 새도 없이 나는 수영장 물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연애는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도 붉어진 얼굴을 더욱 진하게 붉혔다. “연애 시작한 첫날에 키스해도 되나?”
※본 작품은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관계 및 노골적인 표현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기적인 애정. 비뚤어진 욕망. 우리 둘은 나락의 끝이었다. ** 새벽.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도망가기 위해 달렸다. 한평생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사람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젖은 흙냄새. 빽빽이 우거진 풀잎들 틈으로 새벽의 파란빛이 새어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평생 그의 손아귀에 갇혀 살아갈 바엔 말이다. “아윽-!” 온전치 않은 다리 탓에 얼마 가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 나는 차디찬 흙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나한테서 도망갈 수 있을 거 같아? 멍청하기는.” 차디찬 겨울의 냉기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어버린 몸뚱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덜덜 떨리는 눈두덩이도 그의 시선을 회피하지 못했다. “어미도 버린 계집 거두어 줬더니 도망을 가?”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리 와.” “싫어요. 절대 싫…….” “후우…… 다홍아.” 죽고 싶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두지 않는 남자, 도건. “그 빌어먹을 다리를 기어코 부숴놔야 도망가지 않으려나.” “……흐윽.” 파르르 떨리는 뺨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나는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네 곁엔 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몸이라도 쓰면서 옆에 붙어 있어.” “…….” “너는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안 그래?” 오늘도 난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 작품은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관계 및 노골적인 표현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기적인 애정. 비뚤어진 욕망. 우리 둘은 나락의 끝이었다. ** 새벽.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도망가기 위해 달렸다. 한평생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사람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젖은 흙냄새. 빽빽이 우거진 풀잎들 틈으로 새벽의 파란빛이 새어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평생 그의 손아귀에 갇혀 살아갈 바엔 말이다. “아윽-!” 온전치 않은 다리 탓에 얼마 가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 나는 차디찬 흙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나한테서 도망갈 수 있을 거 같아? 멍청하기는.” 차디찬 겨울의 냉기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어버린 몸뚱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덜덜 떨리는 눈두덩이도 그의 시선을 회피하지 못했다. “어미도 버린 계집 거두어 줬더니 도망을 가?”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리 와.” “싫어요. 절대 싫…….” “후우…… 다홍아.” 죽고 싶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두지 않는 남자, 도건. “그 빌어먹을 다리를 기어코 부숴놔야 도망가지 않으려나.” “……흐윽.” 파르르 떨리는 뺨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나는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네 곁엔 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몸이라도 쓰면서 옆에 붙어 있어.” “…….” “너는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안 그래?” 오늘도 난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가까웠다 싶으면 멀어져 있고, 멀어졌다 싶으면 다시 가까워지는 남자. “……날 왜 구해줬어요?” 나를 구원해 준 이유를 묻자 그는 푸석한 웃음을 흘렸다. 입술 사이에선 희뿌연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고, 특유의 낮은 음성이 흩어졌다. “글쎄.” 그는 이런 남자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고 큰 감정 변화도 없었으며 언제나 건조한 낯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게 싫지 않았다. 외려 좋았다. 아니, 나는 그런 그를 원했다. 마치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당연하게 끌렸고 애정을 갈구했다. 치이익. 필터까지 타던 담배가 재떨이에 비벼 꺼졌다. “왜 그랬을까.” 서늘한 손가락이 명치를 가로질러, 음모 위에 올랐다. “아……!” “말라빠진 네 몸도 시시하고.” 손가락은 곧 질척한 애액으로 그득한 질구를 훑었다. “나만 보면 젖는 이 씹 구멍도 시시한데.” 미끈거리는 느낌과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소름. 거기다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어느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냥 변덕이야. 시시한 널 구해준 건.” “흣…… 그래도 좋아요.” “그러면.” “…….” “이대로 널 임신시켜도 좋다는 거겠지.” 강이든. 그는 나의 구원자였고, 나는 그에게 구원받았다. “네…… 임신시켜 주세요.” 거부할 이유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다리 벌려. 네 남편 될 사람한테.” 천천히 벌어지는 다리. 기구하고 하잘것없는 운명의 선구였다.
※본 작품은 강압적 스킨십 등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수위 삽화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입 구멍처럼 밑구멍도 좁아서 어떻게 할래.” 뱉어내는 말마다 모질었다. “좁아터졌으면 씹 물이라도 부지런히 뱉어내든가. 자지 잘 박히게.” 모질다는 표현을 넘어 가혹했고, 밑에 깔린 나를 더없이 참담하게 만들었다. “흣…… 물고기.” “…….” “그거 네가 죽인 거지.” 5년 전, 내가 아끼는 물고기 베타가 어항 밖에 떨어져 있던 일. 그때의 나는 베타가 홀로 물 밖으로 나온 줄 알고 엉엉 울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었다. 어항엔 뚜껑이 잘 덮여 있었으니까. “그걸 이제 알았어?” “이…… 이 나쁜…….” “내가 말했잖아.” “…….” “그딴 물고기 처음부터 좆 같았다고.” 꾸욱…… 말을 하면서 들어오는 귀두에 턱이 벌어졌다. 좁은 어항에 홀로 있는 베타가 자신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 죽음이 더없이 슬펐는데, 그의 짓이라니. 찢어질 듯한 아래보다 가슴이 더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양노아 너도 처음 봤을 때부터 개좆같았어.” “아, 파. 조금만 살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처웃기나 하고.” 올라간 입꼬리는 나를 보며 웃는데, 눈은 아니었다. “씹…… 친구는 무슨.” 살벌한 눈빛. 명명백백 혐오가 찬 눈동자였다. “괴로워도 내 옆에서 괴로워해.” “하, 윽-!” “죽더라도 내 옆에서 뒈지고.” 쓰라린 피부에 나는 잇자국과 쏟아지는 혐오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이거 열 뻗치네.” 침대에 팽개쳐진 나는 작은 동물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시커먼 소용돌이와 같은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자 핏기가 사라진 입술이 저절로 뒤떨렸다. “도망가더니 애까지 배고 말이야.” “…….” “너 때문에 눈깔 뒤집힌 새끼는 어쩌라고. 안 그래, 여보?” ‘여보’라는 웃기지도 않는 호칭을 들으며 실소했다. 왜 저따위로 부르는지, 짜증스러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짜증보다 더한 건 단연 서글픔이었다. “……흣.” 아직은 임신 티가 나지 않는 반반한 배를 그러안았다. 바닥엔 산모 수첩이 떨어져 있었고, 손톱보다 작은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이 내보였다. 그걸 본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왜,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를 당신한테 왜 줘야 하는데.” 두려움에 침식된 목소리가 떨렸으나 올려다보는 눈빛만은 날이 선 채였다. 그래야만 벗어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노려보았다. 진창으로 얼룩지고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나와 다르게 차 한 대 값은 족히 나갈 슈트를 빼입은 그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짜증스러운 낯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무미한 얼굴이었다. 제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양,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읊조렸다. “네 배에서 나올 새끼니까.” 불쑥. 크게 한 발자국 걸어 다가오는 몸체에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홍시호 네가 내 거니, 애도 당연히 내 거거든.” 제아무리 당당한 체를 한들, 나는 이 남자가 두려웠다. 날 때부터 이길 수 없는 존재. 어떤 짓을 해도 뛰어넘지 못할 사람이 바로 진도헌이었으니.
※본 작품에는 강압적인 장면, 노골적인 표현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윤아.” 치이익. 담뱃불이 책상 위에 지져 꺼졌다. 천장까지 올라가는 회색의 연기가 피폐했다. 마치 내 빌어먹을 인생과 같이. “너와 나는 뗄 수 없는 사이야.” “…….” “도박과 커피처럼.” 추잡한 곳에서 만난 사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말에 눈썹이 일그러졌다. “법과 범죄처럼.” “……만지지 마세요.” “그리고 또.” 은색의 반지를 두어 개 낀 손가락. 그 손가락이 나의 목선을 타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와 네 몸처럼. 뗄 수가 없다고, 우린.” 나오려는 신음을 참으며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는 궁지에 몰린 개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개장수에게 잡히기 전, 있는 힘껏 물어뜯을 기세로 노려보는 새끼 개처럼. 진심이었다. 여차하면, 날 더듬는 이 손을 물어뜯고 도망가려 했다. 이번엔 정말로 먼 곳으로. 류단우 이 남자가 나를 찾지 못할 아주 멀고 깊은 곳까지 도망가 죽은 듯 살려 했다. “어디 또 한 번 도망가 봐.” 뿌드득. 씹히는 혐오에 이가 갈렸다. “아주 잘 도망가야 할 거야.” “…….” “이번에 잡히면 쉽게 끝나진 않을 테니까.” 끔찍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사람을 죽는 순간까지 옥죄는 야수의 손아귀에 붙잡힌 기분. 류단우는 아주 잔인하고도 가혹한 남자였다.
“나, 나 정말 임신해야 해요……?” 이 남자에게 왜 아이가 필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입으로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하라 했기에 체념해야 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런 이유에 다시 한번 물었다. “오빠 아기…… 진짜, 하. 낳아야 하는…….” 힘겨운 목소릴 흘리는 내게로 허릴 숙여 가까이 왔다. 태성은 나의 입술과 맞붙을 만한 거리에서 작게 속삭였다. “왜.” “…….” “교주한테 갈 각오는 했어도 내 아이를 임신할 각오는 안 됐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선유주.” 이름을 부른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윽고……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야옹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태성이 이렇게 부를 때마다 설렜던 나였다.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였다.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는 것 같아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귀여워해 주는 것 같은 기분에 그리도 설렜었다. 그런데 태성은 설렘을 느끼는 나를 절벽에서 밀쳐버리는 말을 덧붙였다. “허튼소리 집어치우고 잘 받기나 해.” “…….” “돈 받고 싶으면 오빠 말 들어야지.”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고, 눈물 탓에 희뿌옇게 변한 시야가 거칠게 흔들렸다. 비참하고 슬펐다. 사랑하는 남자를 안으면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다니. 죽을 만큼 아픈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아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선택이고 업보였기에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체향과 낮은 음성, 닿기만 해도 종일 설렜던 살결을 느끼며 설움을 꾸역꾸역 삼켰다. ※본 작품은 강압적 스킨십 등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총천연색의 꽃이 만개하는 삶을 꿈꿨으나, 나에게 내려진 건 억압과 괄시에 지배된 삶이었다. *** “그래서. 이름 뜻이 뭐지?” 만들어지는 길목마다 소름이 돋았다. 살갗이 그를 따르기라도 하듯 희열을 느꼈다. 분명 처음인데…… 모든 게 다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구원호의 손길이 좋았다. “흐…… 꾈 유(誘)에 꽃 화(花)예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름의 뜻을 뱉었다. 언제나 놀림 받던 이름이었다. 들었던 사람 중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경멸의 시선을 받는 것도 예사였다. “설마…….” “…….” “남자를 꾀는 꽃이란 뜻인가?” 아마 이 남자도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웃어 버리거나 역겨워하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예상했다. 그런데 구원호는 달랐다. 이름의 뜻을 알고도 웃지 않았고, 혐오를 내보이지도 않았다. 눈꼬리에 걸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쩐지 예쁘더라니.” 덜컥. 심장이 떨어졌다. “유화야.”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나직하면서도 묵직했고, 꼭 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유화.” 그토록 싫었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그것이 몹시 달큼해 차마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부를 땐 싫기만 한 이름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달게 들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느새 발목이 잡히었다. “힘 빼.” “…….” “꽃이든 뭐든 내가 활짝 피게 해줄 테니까.” 나는 알지 못했다. 오늘이 그를 향한 내 덧없는 사랑의 시발점이었음을…… 갈 곳 없는 고백이 정처 없이 떠돌고, 주인 잃은 애정이 바닥에 나뒹굴게 될 줄 모르고 있었다.
“……하고 싶어요.” “…….” “아빠한테서 도망치는 거. 그거 하고 싶다고요.” “그럼 간단하네.” 치이익. 재떨이에 담배가 비벼지며 시뻘건 불이 꺼졌다. “말이 약혼이지, 몸 섞는 사이라 생각해.” ……몸? “그러면 난 대가로 그 뭣 같은 집에서 구해 주지.” 맥락을 다 이해했으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상식은 지랄이.” “맞잖아요.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몸을 섞다니 무슨 짐승도 아니고…….” 혼란에 찬 낯을 하고서 뒷걸음질 쳤다. “저, 그때는 제가 술에 취해서 그랬던 거예요. 평소엔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요.” 우강재는 제게서 멀어지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의자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긴 다리로 빠르게 걸어왔다. 그가 코앞까지 맞붙어 오자 향수와 섞인 담배 냄새가 훅 끼쳤다. “난 아무 여자한테나 올라타는 줄 압니까?” “……읍.” “누굴 쓰레기로 아나.” 순간적으로 내쉬는 숨을 멈추었다. “근데 너와 내가 꽤 잘 맞았거든. 짐승처럼.”
※ 본 작품은 강압적 행위, 노골적인 표현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연인이 되게 해주세요. 밤에만이라도 좋아요.” 가진 게 없는 나의 마지막 패였다. 이 도박의 끝이 독박이든 나가리이든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낙장불입. 한번 내민 패를 물리는 건 용납되지 않았으니까. “……밤에만이라.” “…….” “그렇다면 관계만 하게 될 텐데도?” 끄덕. 무거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요.” 일단은 여자로 보이는 게 먼저라 판단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꿈에서 보았던 행위를 하다 보면 언젠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오야.’ 바로 어젯밤 꿈속에서처럼 말이다. 물론 이 남자와 서로의 몸을 문댄 걸 떠올리면 곧장 구역질이 일 만큼 불결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었고, 그것 중에 최선이 이 선택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벗어 봐.” 그런데 이런 요구가 날아올 줄이야. “직접 보고 정할 테니 벗어보라고.” 여태껏 어떤 말에도 큰 동요를 보이지 않은 나였으나, 이번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벗으라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눈이 크게 뜨일 만큼 놀란 나였다. 그러나 최대한 의연한 체를 하며 되물었다. “여기서요?” “네.” “지금 여기서 옷을 벗으라는 말씀이세요?” 재차 되묻는 나의 물음에 반해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앞으로 연인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전에 확인부터 해봐야죠. 내 마음에 찰지.” “아…….” “그러니까 얼른 벗어요. 오래간만에 재미있는데, 흥 깨지게 하지 말고.” 말은 재미있다고 하면서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게 귀찮다는 표정. 그는 턱을 든 채로 나를 흘겨보았고 목소리 또한 아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듯 무미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쭈뼛거리던 나는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알았어요.” 손가락 끝이 파들거렸다.
※ 본 작품은 강압적 관계 및 노골적인 표현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가까웠다 싶으면 멀어져 있고, 멀어졌다 싶으면 다시 가까워지는 남자. “……날 왜 구해줬어요?” 나를 구원해준 이유를 묻자 그는 푸석한 웃음을 흘렸다. 입술 사이에선 희뿌연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고, 특유의 낮은 음성이 흩어졌다. “글쎄.” 그는 이런 남자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고 큰 감정 변화도 없었으며 언제나 건조한 낯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게 싫지 않았다. 외려 좋았다. 아니, 나는 그런 그를 원했다. 마치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당연하게 끌렸고 애정을 갈구했다. 치이익. 필터까지 타던 담배가 재떨이에 비벼 꺼졌다. “왜 그랬을까.” 서늘한 손가락이 깡마른 쇄골 뼈를 스치며 아래로 향했다 “말라빠진 네 몸도 시시하고.” “아……!” “나만 보면 달아오르는 것도 시시한데.” 처음 느껴보는 손길에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소름. 거기다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까지 어느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냥 변덕이야. 시시한 널 구해준 건.” “……그래도 좋아요.” “그러면.” “…….” “이대로 널 임신시켜도 좋다는 거겠지.” 강이든. 그는 나의 구원자였고, 나는 그에게 구원받았다. “네…… 임신시켜 주세요.” 거부할 이유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누워. 네 남편 될 사람 밑에.” 천천히 뉘어지는 몸. 기구하고 하잘것없는 운명의 선구였다.
“올림픽까지 남은 5개월 반 동안 저랑 연애해요.” “뭐?” “저도 선수님이 연애하지 말라고 해서 못 하니까 그냥 우리 둘이 하자고요.”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은 몹시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쏟아졌다. “올림픽만 잘 마무리하면 뒤끝 없이 헤어지기. 어때요?” 아무 대답 없이 날 올려다보는 눈에 긴장된 심장이 쿵쾅거렸고, 손바닥으론 땀이 맺혀 들었다. “뭐, 싫으면 말고요…….” “누가 싫대.” 그때 커다란 손이 내 팔목을 잡아당겼고, 아차 할 새도 없이 나는 수영장 물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연애는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도 붉어진 얼굴을 더욱 진하게 붉혔다. “연애 시작한 첫날에 키스해도 되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이 남자가 이런 성격이었던가? 아니. 절대로 아니었다. 또라이 사이코패스긴 했으나, 이런 느물거리는 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더랬다. 이렇게 대놓고 개수작을 부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차라리 경위서를 써 올게요! 그럼 되죠?” “경위서를 왜 써요? 야근하다 말고 손장난 좀 한 것 가지고.” “어쨌든요. 회사에서는 하면 안 되는 짓이었으니까요.” “으음.” 뭐야, 통하는 건가? “그죠? 맞죠? 그럼 당장 경위서 써 올 테니까, 이런 짓 그만하는 겁니다?” 뭔가 통하는 것 같은 예감에 얼른 자리를 피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제이헌은 나가려는 내 앞을 막아서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훅 끼치는 향수 냄새. 닿을 듯 말 듯 한 입술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짓. 팀장인 나랑도 해.” 순간 가슴 속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쌤쌤이잖아?”
“남자 먹고 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네? 제, 제가 뭘 먹고 버려요!” “나 따먹고 버리는 거잖아요.” 같은 부서 최찬혁 팀장을 짝사랑하며 파트너라는 관계를 가지는 도중 홧김에 원나잇을 한 설아현. 그 원나잇 상대 연은호가 같은 부서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대놓고 꼬시기 시작한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맞는데.” “아니거든요?!” “이왕 따먹고 버릴 거 몇 번 더 드시든가.” “제발 그 입 좀 닫아요!” *** 가벼운 남자인 줄 알았다. 저를 두고 장난하는 줄 알았고, 호텔에 있는 놈을 보고서 여자를 쉽게 생각하는 남자라 생각했다. “사귀어 달라고 안 할게.” “….” “그냥 최 팀장 만나듯 나도 만나줘요.” 그런데 왜. 행여 떠날까 날 붙잡고서 초조하게 구는 모습이 어째서 나와 겹쳐 보였을까. “파트너라고 생각해도 되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돼.” 최 팀장을 짝사랑하는 나와. “그냥 개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해.” 매끄러이 올라가는 입꼬리 끝에 걸리는 보조개에 가슴께가 일렁였다.
첫 번째. 결혼 기간 중 다른 이성과 관계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반드시 서로의 목적이 이루어진 후에 이혼이 성립된다. 세 번째, 임신과 출산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관계는 지속된다. 설령 서로의 동의가 없다고 해도. 고작 세 가지밖에 없는 계약 조항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렇게 힘들어질 거라고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주산호는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지쳐 정신을 잃었을 때도 계속됐다. 고의로 임신해야 한들 이건 너무 심하다고 하면 주산호는 의연한 낯을 했다. 세 번째 조항. 저는 그것을 아주 잘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귓가에 들리는 음성. 눈이 질끈 감겼다. “……기꺼이 종마가 돼줄게.” 감당치 못할 쾌감과 배덕한 관계의 우리 둘은 눈이 멀 만큼이나 맹목적이었다.
※ 본 작품은 다소 강압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읏! 주산호, 이 미친 새끼……!” 놈이 행위를 계속하며 허릴 구부렸다. 말캉한 혀를 내어 척추를 핥는 감각.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한껏 추켜든 엉덩이가 자꾸만 내려갔다. 그러나 골반을 움켜쥔 손이 그걸 용인하지 않았다. “앗, 아. 아!” “이 짓 그만하고 싶으면 빨리 임신해야죠.”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으으응!” 뒷덜미까지 다가온 입술. 날이 선, 치아가 내 살갗을 깨물었고, 선명한 잇자국을 만들어냈다. 전신을 장악하는 오르가슴에 넋이 증발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자국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의 입에선 이성이 부서진 말들이 샜다. 너무 좋아. 더 해줘, 더 할래. 나한테 싸 줘, 빨리. 응? 놈은 그 말을 듣고서 픽 웃는가 싶더니 내 뒤 목을 잡아 베개로 처박았다. 이어서 귓가에 들리는 음성. 눈이 질끈 감겼다. “……기꺼이 종마가 돼줄 테니, 넌 빠짐없이 삼켜.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시트를 잡은 손아귀에 땀이 찼다. 감당치 못할 쾌감과 배덕한 관계의 우리 둘은 눈이 멀 만큼이나 맹목적이었다.
“제발 내 인생에서 꺼져줘요.” 이렇게 말하면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럼 나는 그대로 옷을 다시 입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오빠에게 흔들리지 않고 무시해 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하, 씨발.” 그러나 오빠는 나와 생각이 다른 듯했다. 호텔 레스토랑에 있던 남자를 보며 이를 갈았던 때보다 더 화가 난 표정을 하고서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윽, 아파-!” “이거 생각보다 더 기분 더럽네.” “아프다고 했…….” “그럼 믿지 마.” “……네?” “그딴 거 필요 없고 그냥 몸이나 섞어.” 철컥, 오빠의 벨트가 풀리는 소리가 나고. “네 말대로 몸이 너무 고파서 식당 찾듯 찾은 거라고 생각해.” 무섭도록 발기한 페니스가 꺼내어졌다. “오빠랑 이제 하기 싫다니까요?!”
같은 부서 최찬혁 팀장을 짝사랑하며 섹스 파트너라는 관계를 가지는 도중 홧김에 원나잇을 한 설아현. 그런데 그 원나잇 상대 연은호가 같은 부서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대놓고 꼬시기 시작한다. *** “그런데 남자 먹고 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네? 제, 제가 뭘 먹고 버려요!” “나 따먹고 버리는 거잖아요.” 이 미친놈이 먹고 버리긴 누가 먹고 버려?! “그런 게 아니잖아요!” “맞는데.” “아니거든요?!” “이왕 따먹고 버릴 거 몇 번 더 드시든가.” “제발 그 입 좀 닫아요!” *** “나 섹스 잘하잖아요.” “기억도 잘 안 나거든요.” 거짓말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연은호와 했던 섹스는 머릿속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속도를 맞춰 주는 다정함이나 계속해서 키스해주던 입술. 그리고 커다란 페니스의 크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응, 너 진짜 잘해!’라고 하기엔 내가 그리 뻔뻔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며 잡힌 손을 놓으려는데 연은호에겐 어림도 없었다. “기억이 안 난다?” “네.” “그럼 기억나게 해줘야겠네.” 응? 그건 또 무슨 불안한 소리니……?
“윤아.” 치이익. 담뱃불이 책상 위에 지져 꺼졌다. 천장까지 올라가는 회색의 연기가 피폐했다. 마치 내 빌어먹을 인생과 같이. “너와 나는 뗄 수 없는 사이야.” “…….” “도박과 커피처럼.” 추잡한 곳에서 만난 사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말에 눈썹이 일그러졌다. “법과 범죄처럼.” “……만지지 마세요.” “그리고 또.” 은색의 반지를 두어 개 낀 손가락. 그 손가락이 나의 아래를 문질렀다. 치마를 입고는 있었으나 기다란 손가락 덕에 찔러지는 느낌이 질구에 생생히 느껴졌다. “네 보지와 내 좆처럼. 뗄 수가 없다고, 우린.” 나오려는 신음을 참으며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는 궁지에 몰린 개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개장수에게 잡히기 전, 있는 힘껏 물어뜯을 기세로 노려보는 개새끼처럼. 진심이었다. 여차하면, 날 더듬는 이 손을 물어뜯고 도망가려 했다. 이번엔 정말로 먼 곳으로. 류단우 이 남자가 나를 찾지 못할 아주 멀고 깊은 곳까지 도망가 죽은 듯 살려 했다. “어디 또 한 번 도망가 봐.” 뿌드득. 씹히는 혐오에 이가 갈렸다. “아주 잘 도망가야 할 거야.” “…….” “이번에 잡히면 네 새끼는 손가락 없이 밥 처먹는 병신이 될 테니까.” 끔찍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사람을 죽는 순간까지 옥죄는 야수의 손아귀에 붙잡힌 기분. 류단우는 아주 잔인하고도 가혹한 남자였다. 꾹 다문 입술을 떼지 않았다. 저가 언급하는 ‘새끼’가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기에, 입술을 다문 채 침묵했다.
“남자 먹고 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네? 제, 제가 뭘 먹고 버려요!” “나 따먹고 버리는 거잖아요.” 같은 부서 최찬혁 팀장을 짝사랑하며 파트너라는 관계를 가지는 도중 홧김에 원나잇을 한 설아현. 그 원나잇 상대 연은호가 같은 부서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대놓고 꼬시기 시작한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맞는데.” “아니거든요?!” “이왕 따먹고 버릴 거 몇 번 더 드시든가.” “제발 그 입 좀 닫아요!” *** 가벼운 남자인 줄 알았다. 저를 두고 장난하는 줄 알았고, 호텔에 있는 놈을 보고서 여자를 쉽게 생각하는 남자라 생각했다. “사귀어 달라고 안 할게.” “….” “그냥 최 팀장 만나듯 나도 만나줘요.” 그런데 왜. 행여 떠날까 날 붙잡고서 초조하게 구는 모습이 어째서 나와 겹쳐 보였을까. “파트너라고 생각해도 되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돼.” 최 팀장을 짝사랑하는 나와. “그냥 개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해.” 매끄러이 올라가는 입꼬리 끝에 걸리는 보조개에 가슴께가 일렁였다.
“내뺄 땐 언제고 자존심도 없이 다시 돌아온 이유. 말해.”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길 전했다. “저 사실은…… 만나는 남자 있어요.” “남자라면 애인?” 천도경의 낯이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그것이 무서웠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아픈데 병원비가 없어요.” 내가 제 아일 낳아 기르고 있단 사실을 알면 천도경 이 남자가 또 어떤 잔인한 소릴 할지 두려웠다. “그래서 되돌아왔어요. 제 주위엔 전무님만큼 돈 많은 사람이 없으니까.” 쿵쾅쿵쾅 뛰는 심장 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를 보았다. 그리고 천도경은…… 웃었다. “하하, 이거 재밌네.”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았다. 웃음소릴 내며 한쪽 입꼬리도 올렸으나 눈빛만은 여전히 매서웠다. “어쩐지 더 흥분되더라고.” “네?” “오랜만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천도경이 짙은 눈썹을 무섭게 일그러트렸다. “남의 거여서 그런 거였네. 연은하 네 싸구려 몸뚱이.” 입을 다물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게 그가 일렀다. “왜 그딴 표정이야. 웃어.” “…….” “기쁠 거 아니야. 돈 필요할 때마다 내주는 호구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 이 남자는 또다시 나를 찍어 누르려 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서 기는 꼴을 기어코 보고 싶은 거였다. 그걸 알면서도 나를 부르는 단어를 부정하지 못했다. 참고 또 참아야 내 아들이 산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 돈도 받을 수 있었다. “맞아요.” “…….” “제 값. 양 과장에게 받는 것보단 여기서 더 많이 받을 걸 알아서…… 그래서 온 거예요.” “그래. 잘 찾아왔네.” 그의 손가락이 나를 불렀다. 제게로 오라고 까딱이는 걸 보고서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욕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돈 얼마나 필요해.” “얼마나 줄 수 있어요?” “네가 하는 거에 달렸지.” 시선을 옮겨 그와 눈을 마주했다. “값은 네가 스스로 정하는 거라고. 내주고 싶어 안달이 난 네 쪽에서.” ……명백한 분노였다.
** “후. 얼굴에 싼다.” 그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갤 가로저었다. “안 돼요.” “그럼 입.” “그건 더 안 돼요.” “씨팔, 더럽게 보수적이네.” 차도범의 눈이 이번엔 내 가슴으로 꽂혔다. “그럼 가슴 꺼내. 이건 양보 못 해.” ** “잠깐만요, 선수님. 전 이럴 생각이…….” 쪼옥 하는 소리를 낸 입술이 드디어 떨어지고, 차도범의 얼굴이 나와 마주쳤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몰아붙이는 키스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달아오른 얼굴은 피가 몰려 발갛게 물들어 있었고,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이 여전히 촉촉했다. 그리고 차도범은 그런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슥 훑어 닦고는 자신의 혀로 타액을 핥아먹었다. “어쩌지. 내 새끼는 이럴 생각인 거 같은데.” 내 새끼……? 불안한 단어에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 눈동자는 곧 아래로 향했다. “먼저 꼴리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제에 이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고래 자지. 어제는 손으로 만졌으나 오늘은 두 눈으로 크기를 직접 확인했다. 허릴 감고 있던 수건이 사라진 하체에 자리한 페니스는 정말이지 범고래라는 별명에 적합할 만큼 크고 굵었다. 야동에서만 보던 서양인 사이즈에 내 얼굴은 하얗게 변했고, 빳빳하게 서서 꺼떡거리는 페니스는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남겨울은 자신의 이름처럼 춥고 차갑고 건조한 겨울이 싫었다. 꼭 싸구려인 제 인생과 닮아 있어서. *** “애인이면 우리가 사귄다는…….” “어. 사귄다고 말하고 다녀.” “하지만 사귀는 건 좀 갑작스러운데요.” “사귀는 척만 하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너랑 사귀어?”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이상했다. 쿵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멈춰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아저씨.” 그리고 문득 나에게 잘 해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스무 살이 되면 튀어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집에 있으란다. 그것도 제 이름을 대며 애인 행세를 시켜서까지.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 우리 만난 지 오래되지도 않았잖아요.” “글쎄.” “…….” “불쌍한 유기견 데려와 키우면서 큰 생각 안 하잖아.” 백휘경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피곤하다는 듯 제 어깨를 주물렀다. 애인이라거나 사귄다는 말에 잠깐이나마 놀랐던 나는 왜인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너한테 시킬 게 있으니 서로 덕 보자고.” 갓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런 나보다 11살이 많은 아저씨는 오늘부터 서로를 애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키워줘, 말아?” 서로의 필요 하에 시작된 가짜 연애였으나 나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연애였고, 그 상대가 백휘경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키워주세요. 아저씨.” 어찌 됐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의 첫 연인.
남겨울은 자신의 이름처럼 춥고 차갑고 건조한 겨울이 싫었다. 꼭 싸구려인 제 인생과 닮아 있어서. *** “애인이면 우리가 사귄다는…….” “어. 사귄다고 말하고 다녀.” “하지만 사귀는 건 좀 갑작스러운데요.” “사귀는 척만 하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너랑 사귀어?”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이상했다. 쿵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멈춰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아저씨.” 그리고 문득 나에게 잘 해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스무 살이 되면 튀어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집에 있으란다. 그것도 제 이름을 대며 애인 행세를 시켜서까지.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 우리 만난 지 오래되지도 않았잖아요.” “글쎄.” “…….” “불쌍한 유기견 데려와 키우면서 큰 생각 안 하잖아.” 백휘경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피곤하다는 듯 제 어깨를 주물렀다. 애인이라거나 사귄다는 말에 잠깐이나마 놀랐던 나는 왜인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너한테 시킬 게 있으니 서로 덕 보자고.” 갓 스무 살이 된 나와 그런 나보다 11살이 많은 아저씨는 오늘부터 서로를 애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키워줘, 말아?” 서로의 필요 하에 시작된 가짜 연애였으나 나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연애였고, 그 상대가 백휘경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키워주세요. 아저씨.” 어찌 됐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의 첫 연인.
“이거 열 뻗치네.” 침대에 팽개쳐진 나는 작은 동물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시커먼 소용돌이와 같은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자 핏기가 사라진 입술이 저절로 뒤떨렸다. “도망가더니 애까지 배고 말이야.” “…….” “너 때문에 눈깔 뒤집힌 새끼는 어쩌라고. 안 그래, 여보?” ‘여보’라는 웃기지도 않는 호칭을 들으며 실소했다. 왜 저따위로 부르는지, 짜증스러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짜증보다 더한 건 단연 서글픔이었다. “……흣.” 아직은 임신 티가 나지 않는 반반한 배를 그러안았다. 바닥엔 산모 수첩이 떨어져 있었고, 손톱보다 작은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이 내보였다. 그걸 본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왜,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를 당신한테 왜 줘야 하는데.” 두려움에 침식된 목소리가 떨렸으나 올려다보는 눈빛만은 날이 선 채였다. 그래야만 벗어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노려보았다. 진창으로 얼룩지고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나와 다르게 차 한 대 값은 족히 나갈 슈트를 빼입은 그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짜증스러운 낯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무미한 얼굴이었다. 제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양,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읊조렸다. “네 배에서 나올 새끼니까.” 불쑥. 크게 한 발자국 걸어 다가오는 몸체에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홍시호 네가 내 거니, 애도 당연히 내 거거든.” 제아무리 당당한 체를 한들, 나는 이 남자가 두려웠다. 날 때부터 이길 수 없는 존재. 어떤 짓을 해도 뛰어넘지 못할 사람이 바로 진도헌이었으니.
짙은 색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광포한 허리 짓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 언니를 죽게 한 남자의 페니스를 받으면 혐오만이 존재할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몸뚱이는 착실하게 쾌감을 느꼈고 발갛게 물든 눈가엔 음험함이 흘렀다. “씹…… 애도 낳은 구멍 주제에 더럽게 좁군.” “응, 흐으응!” 아랫배에서부터 좀먹듯 번지는 후덥지근한 열.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전무했다. “이 좁은 구멍으로 애를 어떻게 낳았지?” 벌어진 소음순 사이로 손가락을 댄 반해강이 콩알처럼 부풀어 오른 음핵을 꼬집듯이 잡았다. 그러자 허리가 벌떡 튀었고,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었다. “좆 대가리 하나도 잘 못 받아먹으면서, 출산은 어떻게 했냐고.” “상, 상무님 거긴……!” “따먹기도 어렵게 좁아터졌는데 말이지.” 손가락으로 음핵을 굴리고 눌러대는 통에 눈앞에 불똥이 튀는 듯했다. 그러면서 추삽질은 쉴 틈 없이 이어졌고, 귀두부터 뿌리까지 한 번에 박아대는 감각에 봇물이 터지듯 애액이 흘러나왔다. 진득한 애액이 구멍에서 흘러 엉덩이 사이로 들어가는 느낌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밤 내내 붙어먹길 작정한 사람처럼, 모조리 먹어 치우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미친놈. 개 같은 자식…… 입 안으로 모래알과 같은 욕지기가 씹혔다. “견지오. 당신 지금 질질 싸고 있는데, 느껴집니까?” 흔들리는 시야로 보이는 반해강은 나와 반대로 꽤 즐거워 보였다. “내가 오늘 다른 것도 싸게 해줄게.” “흐응! 무슨, 뭘, 앙! 아아!” “그러니까 기대하라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다른 걸 싸다니 도대체 뭘 싼단 말인가. 지금도 애액을 질질 싸 대고 있는데…….
총천연색의 꽃이 만개하는 삶을 꿈꿨으나, 나에게 내려진 건 억압과 괄시에 지배된 삶이었다. *** “그래서. 이름 뜻이 뭐지?” 만들어지는 길목마다 소름이 돋았다. 살갗이 그를 따르기라도 하듯 희열을 느꼈다. 분명 처음인데…… 모든 게 다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구원호의 손길이 좋았다. “흐…… 꾈 유(誘)에 꽃 화(花)예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름의 뜻을 뱉었다. 언제나 놀림받던 이름이었다. 들었던 사람 중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경멸의 시선을 받는 것도 예사였다. “설마…….” “…….” “남자를 꾀는 꽃이란 뜻인가?” 아마 이 남자도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웃어 버리거나 역겨워하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예상했다. 그런데 구원호는 달랐다. 이름의 뜻을 알고도 웃지 않았고, 혐오를 내보이지도 않았다. 눈꼬리에 걸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쩐지 예쁘더라니.” 덜컥. 심장이 떨어졌다. “유화야.”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나직하면서도 묵직했고, 꼭 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유화.” 그토록 싫었던 이름을 불러 주는 목소리…… 그것이 몹시 달큼해 차마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부를 땐 싫기만 한 이름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달게 들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느새 발목이 잡히었다. “힘 빼.” “…….” “꽃이든 뭐든 내가 활짝 피게 해 줄 테니까.” 나는 알지 못했다. 오늘이 그를 향한 내 덧없는 사랑의 시발점이었음을…… 갈 곳 없는 고백이 정처 없이 떠돌고, 주인 잃은 애정이 바닥에 나뒹굴게 될 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