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편히 누울 수 있는 작은 공간, 엄마의 애정. 오채원이 바라는 건 고작 그런 것뿐! 그러나 정작 돌아온 건 돈을 빌려 달라는 연락과 잘려버린 과외, 불타는 고시원까지. 이거 소원이 잘못 처리된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교내 유명 인사, 정은호와 그의 친구들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 “너는 친구가 청소해 준다고 50만 원이나 줄 수 있어?” “왜 사람 말을 엿듣고 그래, 채원아. 네가 해 주게?” “응. 나 하러 가고 싶어.” “가고 싶다고? …잘됐다. 심심했는데.” 한 푼이 급한 상황, 50만 원을 준다는 말에 홀려 덜컥 따라갔는데, 인심 좋은 고용주라 믿었던 은호는 알고 보니 그냥 변태 새끼였다. “돈으로 사람 갖고 장난이나 치고.” “의도적으로 그런 적은 없어.” “나한테 의도적으로 그랬잖아.” “돈이 아니라 몸으로 갖고 놀려고 했지.” 돈이 급했지 남자가 급한 게 아니었던 채원은 그를 뿌리쳤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은호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결국 채원은 그 손을 잡아버린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애, 은호만이 채원이 그토록 필요로 하는 아주 작은 소망을 들어준다. 눈에 보이는 최소한의 애정을. “채원아, 네가 멈춰주지 않으면 못 멈춰.” 이 세상에서 채원을 원하는 단 한 사람. 은호가 인내하는 듯 작게 숨을 몰아쉬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아무것도 소중하지 않은 은호와 아무것도 없어서 손에 쥔 모든 게 소중한 채원의 유일한 공통점, 미니멀 어펙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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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경력 단절 7년째. 지수의 외로운 밤은 자위 기구 친구들이 책임지고 있었다. 다섯 번째 친구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어쩐지 유독 시비를 걸며 신경을 긁는 듯한 사내 후임, 세현과 벌이던 기싸움은 결국 회식 자리에서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술 대작으로까지 이어지게 되고. “어제 너무 취해서 주소도 말 못 하시길래 저희 집으로 데려왔어요.” “…네.” 결국 지수는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린 세현을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는데. “깨셨으면 이제 가세요.” “지수 씨, 이거. 지수 씨 거예요?” 세현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지수의 소중한 첫 번째 친구, 에그형 바이브레이터. 저게 왜 저 사람 손에 있는 걸까. *** 지이잉 “…….” 한없이 가벼운 진동 소리가 무거운 적막을 가른다. 버튼을 눌러 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진동 패턴을 감상하듯이 바라보던 세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별안간 재킷을 벗더니 넥타이를 끄르고는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려갔다. “뭐하세요?” “써 보게요.” “그걸 세현 씨…. 거기에요?” “그게 무슨…. 당연히 지수 씨한테죠.” “세현 씨, 아무래도 그건….” 안 될 일…, 인가 싶기도 하고. 나의 머뭇거림을 눈치챘는지 세현이 피식 웃으며 먼저 상황을 정리한다. “씻고 올게요.” “…….” “절대로 먼저 쓰지 말고 기다려요.” 어떡해. 나 사람이랑 자나 봐.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열린 동창회. 도영은 첫사랑이자 첫 남자친구였던 원현과 재회한다. 그때 그 시절보다 더 번듯한 남자가 된 원현을 보며 도영은 금세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또 연락해도 돼?” “……왜?” “또 만나고 싶어서.” 만나자마자 들이대는 원현에게 첫사랑의 설렘을 느끼게 되는 도영. 그런데 서로 만나지 못한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애가 좀 이상하다. “나 지금 너랑 다시 잘해보려고 수작 부리고 있잖아.” “…….” “그러니까 이럴 때 실컷 벗겨 먹어.” 그동안 여자들을 얼마나 만났는지 훅 치고 들어오는 원현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싫지 않다. 바쁜 회사 생활에,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 사람에 앞가림하기 힘든 도영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도 원현과 다시 만나기로 결심한다. 원현이 무슨 작심을 하고 있는지는 생각도 못 하고. 《복수의 정의》
연기력은 부족하지만 예쁜 외모로 금세 주연 배우를 꿰차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 진주희. 진주희의 연기와 인기는 반비례 관계라는 불명예를 벗고자, 그동안 해 왔던 연기와는 결이 다른 무조건의 조건의 여주인공 역할에 도전하기로 한다. 늘 그래 왔듯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진주희, 무조건의 조건 하차하나? 이유는…] 갑작스러운 캐스팅 취소, 이유는 대본 리딩을 지켜보던 드라마 원작자가 주희의 연기에 아연실색했기 때문이란다. 배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주희는 눈물을 머금고 드라마의 원작자, 재희를 찾아가고. “저 좀 도와주세요, 작가님.” “…….” “만약 작가님한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요, 그때는.” 촉촉하게 젖은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제발, 제발. “그때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게 무슨 일이든지요.” “…….” “제 목숨 하나 바쳐서, 네?” “……촬영 때까지 연기 연습이나 하세요.” 주희의 눈물겨운 호소에 기회를 줘 보기로 한 재희. 두 사람은 드라마 촬영 전까지 연기 연습에 돌입하기로 하고, 그렇게 재희의 집에서 정체불명의 연기 연습이 시작되는데……. *** 키스 씬. 그저 입술만 맞대는 것이 고작이었던 그녀의 키스 씬 역사상 처음으로 남의 혀가 제 입 속으로 들어왔다. 깊숙이 입 안을 파고들었던 몰캉한 혀가……. 내 입 안으로 혓바닥이……. 주희가 누운 채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혀를 넣으시면 어떡해요…….” “저도 모르게…….” 덩달아 재희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거친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불쾌했으면 미안합니다.” 전혀 불쾌하지 않아서 문제라면 문제였다. “불쾌하지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또 하고 싶은데.” 자신이 질러 놓고는 그의 반응을 보고 듣는 게 무서워 주희는 여전히 눈을 가린 채였다. 아예 소파에서 일어났다. 너무 민망해서 더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는 가 볼게요. 늦었으니까. 오늘은 여러모로 수고 많으셨어요.” 주희가 외투를 가지러 그를 지나쳐 가려는 찰나 재희가 주희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그……. 키스 씬 한 번 더 있잖아요.” “…….” “마저 하고 가세요.”
대학에 들어와 많은 남자들이 번호를 물어 올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정작 번호를 주고 나면 차이기만 하는 보라. 하도 많이 반복되어 온 터라 딱히 위로가 필요할 정도의 데미지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옆집에 살았던 소꿉친구 승우는 그녀가 차이고 돌아오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려 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약속 장소에서 바람맞기까지 한 보라는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는 방증 같아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승우가 우울한 생각을 잊게 해 준다며 키스해 온 그날 밤 이후, 친구로만 생각해 왔던 승우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있잖아…….” “응. 뭐?” “왜 키스까지만 해?” “왜, 더 하고 싶어?” 승우는 팔짱을 끼고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얘기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섹스는 여자 친구랑 할 거야.” 승우의 입에서 나온 노골적인 단어에 경악하기도 잠시, 하마터면 손가락 때문에 달을 놓칠 뻔했다. 결국 보라와는 키스 이상의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럼 나는? 확인 사살에 가까운 대답을 듣자 마음속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다. 싫다. 승우가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게 싫었다. 너무너무 싫어서 당장이라도 엉엉 울고 싶을 만큼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라는 비로소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연보라는 백승우를 좋아한다.
대학에 들어와 많은 남자들이 번호를 물어 올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정작 번호를 주고 나면 차이기만 하는 보라. 하도 많이 반복되어 온 터라 딱히 위로가 필요할 정도의 데미지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옆집에 살았던 소꿉친구 승우는 그녀가 차이고 돌아오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려 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약속 장소에서 바람맞기까지 한 보라는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는 방증 같아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승우가 우울한 생각을 잊게 해 준다며 키스해 온 그날 밤 이후, 친구로만 생각해 왔던 승우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있잖아…….” “응. 뭐?” “왜 키스까지만 해?” “왜, 더 하고 싶어?” 승우는 팔짱을 끼고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얘기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섹X는 여자 친구랑 할 거야.” 승우의 입에서 나온 노골적인 단어에 경악하기도 잠시, 하마터면 손가락 때문에 달을 놓칠 뻔했다. 결국 보라와는 키스 이상의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럼 나는? 확인 사살에 가까운 대답을 듣자 마음속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다. 싫다. 승우가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게 싫었다. 너무너무 싫어서 당장이라도 엉엉 울고 싶을 만큼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라는 비로소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연보라는 백승우를 좋아한다.
스물, 첫사랑이었던 민혁에게 대차게 차인 후 대학을 중퇴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그리고 서른둘, 화려한 남성 편력과 함께 돌아온 한국에서 민혁을 재회했다. “채문영, 사귀자.” “싫어.” 지금이 좋다며 거절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자신이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관계보단 당장의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 버렸는데. “이거 먹었으니까 이제 나랑 사귀면 되겠네.” “그만 좀 해! 지겨워 진짜. 왜 이렇게 사귀는 거에 집착하는 거야? 민혁아 네가 옳았다니까? 우리가 지금 사귀어 봤자 헤어지기밖에 더 하겠냐고.” 문영은 민혁의 따스함을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한, 무언가를 잃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처음부터 갖지 않는 것. 사귀자는 사람과 거절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