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유력가에 팔려 가듯 혼인했다. 열 살 차이 나는 남편과의 생활은 사랑 없이도 그럭저럭 평안했다. 드디어 마음 둘 곳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남편이 역모죄로 죽었다. 그리고 나는, 황제의 편에 선 그에게 상속됐다. 그렇게 죽음을 피했다. “반역자는 죽었습니다. 그대는 제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와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떠나고 싶다는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골방으로 내치고 더 좋은 혼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 어떤 것 하나 먼저 여쭙지 않으시더니. “저는 형수님을 연모했습니다. 형수님께서 안 계시면 저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아, 이제는 나를 연모한다 하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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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유력가에 팔려 가듯 혼인했다. 열 살 차이 나는 남편과의 생활은 사랑 없이도 그럭저럭 평안했다. 드디어 마음 둘 곳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남편이 역모죄로 죽었다. 그리고 나는, 황제의 편에 선 그에게 상속됐다. 그렇게 죽음을 피했다. “반역자는 죽었습니다. 그대는 제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와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떠나고 싶다는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골방으로 내치고 더 좋은 혼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 어떤 것 하나 먼저 여쭙지 않으시더니. “저는 형수님을 연모했습니다. 형수님께서 안 계시면 저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아, 이제는 나를 연모한다 하시는군.
어느 봄날, 친구가 자살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남자, 권민헌.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숫자와 똑같은 번호판의 차량,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 찍힌 것과 같은 차종, 친구의 좋아요가 우수수 달린 SNS. 그 남자는 대체 친구와 무슨 관계였을까? 애써 생각을 떨쳤지만 자꾸만 이상한 곳에서 그와 마주치는데.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는 태이에게 계속 다가오는 민헌. 소중한 친구를 잃었음에도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선다. “나도 다 알면서 넘어가는 거야. 그냥 네가 좋아서.” “…….” “태이야. 진심이라곤 해 줘. 난 가족한테도 이런 말 안 해.” 그가 속삭이는 다디단 말을 들으면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길게 갈 수 없는 관계인데, 인생을 다 열어 달라는 민헌의 손을 잡고 싶다. 그가 제 일상을 끊임없이 뒤엎을 것을 알면서도. *** “우태이, 내가 어디가 좋아?” 태이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자, 눈썹을 치켜올린 채 당당한 민헌의 낯짝이 보였다.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사귄다고 한 거 아니야.”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잠시 동안 고기를 자르고, 파프리카, 양파, 버섯까지 쏟는 소란 속에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마침내 태이가 치익 소리 사이로 중얼거렸다. “귀여워서.” “뭐?” 저렇게 윽박지르는 사람한테 또 얘기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불을 줄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귀여워서 사귀자고 한 거야.” 세속적인 세상에 누구보다 익숙할 텐데도 은근히 겁이 많고, 친절하다가 갑자기 미친 짓을 저지르고, 애교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제 욕심대로 쩨쩨해졌다. 요약하자면 방어적이고, 제멋대로였다. 못된 특징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솔직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귀엽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귀여워?” 바보같이 중얼거리는 게, 귀엽잖아. 일러스트: 서나원
알던 사이는 모르느니만 못하다. 가령, 오랜만에 만난,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된 중학교 동창이라든가. “구지우?” 나는 익숙한 듯 낯선 얼굴에 기절할 듯 놀라 뒷걸음질 쳤다. 고등학교 시절, 이 벤치에 앉아 말간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했던 그때의 차인한과는 달랐다. TV 광고나 스포츠 뉴스, 내가 들고 있는 음료수병의 라벨 속 얼굴이 되레 더 익숙했다. “번호 줘.” “…….” “사 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잖아.” 새삼 우리의 세계가 다르다고 깨닫는 것도 잠시, 그 애는 또 한 번 잔잔하기만 한 내 삶을 흔들었다. *** 차인한은 처음 공을 쥘 때부터 야구를 잘했다. 야구 신인의 역대 최대 계약금, 누구나 선망하는 1차 지명까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구지우는 그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쉼 없이 달리던 모범생은 마침내 그를 두고 떠났다. “연락하지 마.” “뭐?” “네가 왜 키스했는지…… 이유야 뭐가 됐든 하필 지금……. 난 수능이 세 달밖에 안 남았는데…….” 키스 한 번에 사 년이나 연락을 끊을 줄이야. 그러더니 이제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X 까.” *** “우리 사 년 만이야. 네가 이러는 거 그냥 나랑 한 번 해 보려는 핑계처럼 느껴져.” “구지우, 난 너 처음 만날 때부터 좋아했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밤마다 너한테 갔겠냐. 수능 끝나면 고백하려고 했어.” “…….” “나랑 사귀어 주면 평생 스킨십 안 해도 돼.” ……이런 바보 같은 말에 긴장하다니. 아, 진짜. “너 계속 그딴 식으로 농담하면…….” “농담 아니야. 널 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 내 마음이…… 니 말처럼 미련인지 X랄인지, 그딴 게 이만큼 오래 갈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다 알려 주면 되잖아.” 말은 느렸다가 점차 빨라졌다. 바닥에 엎지른 물처럼 모든 곳을 덮었다. “그냥 널 다시 보고 싶었어.”
알던 사이는 모르느니만 못하다. 가령, 오랜만에 만난,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된 중학교 동창이라든가. “구지우?” 나는 익숙한 듯 낯선 얼굴에 기절할 듯 놀라 뒷걸음질 쳤다. 고등학교 시절, 이 벤치에 앉아 말간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했던 그때의 차인한과는 달랐다. TV 광고나 스포츠 뉴스, 내가 들고 있는 음료수병의 라벨 속 얼굴이 되레 더 익숙했다. “번호 줘.” “…….” “사 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잖아.” 새삼 우리의 세계가 다르다고 깨닫는 것도 잠시, 그 애는 또 한 번 잔잔하기만 한 내 삶을 흔들었다. *** 차인한은 처음 공을 쥘 때부터 야구를 잘했다. 야구 신인의 역대 최대 계약금, 누구나 선망하는 1차 지명까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구지우는 그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쉼 없이 달리던 모범생은 마침내 그를 두고 떠났다. “연락하지 마.” “뭐?” “네가 왜 키스했는지…… 이유야 뭐가 됐든 하필 지금……. 난 수능이 세 달밖에 안 남았는데…….” 키스 한 번에 사 년이나 연락을 끊을 줄이야. 그러더니 이제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좆 까.” *** “우리 사 년 만이야. 네가 이러는 거 그냥 나랑 자려는 핑계처럼 느껴져.” “구지우, 난 너 처음 만날 때부터 좋아했어.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밤마다 너한테 갔겠냐. 수능 끝나면 고백하려고 했어.” “…….” “나랑 사귀어 주면 평생 섹스 안 해도 돼.” ……이런 바보 같은 말에 긴장하다니. 아, 진짜. “너 계속 그딴 식으로 농담하면…….” “농담 아니야. 널 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 내 마음이…… 니 말처럼 미련인지 지랄인지, 그딴 게 이만큼 오래 갈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다 알려 주면 되잖아.” 말은 느렸다가 점차 빨라졌다. 바닥에 엎지른 물처럼 모든 곳을 덮었다. “그냥 널 다시 보고 싶었어.”
10살. 유력가에 팔려 가듯 혼인했다. 열 살 차이 나는 남편과의 생활은 사랑 없이도 그럭저럭 평안했다. 드디어 마음 둘 곳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남편이 역모죄로 죽었다. 그리고 나는, 황제의 편에 선 그에게 상속됐다. 그렇게 죽음을 피했다. “반역자는 죽었습니다. 그대는 제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와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떠나고 싶다는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골방으로 내치고 더 좋은 혼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그 어떤 것 하나 먼저 여쭙지 않으시더니. “저는 형수님을 연모했습니다. 형수님께서 안 계시면 저는 세상을 살 수가 없습니다.” 아, 이제는 나를 연모한다 하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