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 서단우.” 단우는 굽힌 미간에 힘을 주었다. 그가 비스듬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연기파 배우면서 대표작은 하나 없고, 유망주로 시기 질투 받다가 고꾸라져서 근근하게 조연으로 밀려나. 이런 생활이 좋아?” “말 함부로 하지 마.” “아들 하나만 낳아.” “너 미쳤니?” “합리적인 계산이지.” 계약서의 주된 내용은 정확히, 오롯하게 우태건의 유전자를 이은 ‘남아’를 낳아야 하는 것이었다. “위자료는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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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마리안. 나의 마리안느. 집안끼리 정혼을 약속한 이든과 마리안느. 마리안느가 열아홉 살의 6월,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녀의 가족들이 납치당한다. 모두가 포기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리안느를 찾는 이든. 행방불명된 지 5년이 됐을 무렵, 이든은 마리안느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결국에는 마리안느를 찾게 된다. “Hello.” “…….” “How are you?” 마리안느는 목구멍에서 말이 돌았다. 꿈속에서처럼 아무리 입술을 움직이려 해도, 글루건이 붙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괜찮아요?” “괘…… 괜찮아요.” “혹시 위협을 받고 있습니까? 그러면 눈을 깜박여요.” 재색 눈동자의 남자가 표정 없이 물었다. 마리안느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리안느.” 그의 입에서 마리안느의 이름이 나왔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죠?” 마리안느의 물음에 남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난 기억을 잃었어요.」
※ 본 작품에는 신체를 지칭하는 비속어 및 다소 폭력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 여자 나이가 서른하나면 노처녀도 한참 노처녀다. 시대가 좋아 아직도 남자들이 줄을 선다지만, 어디 네가 얼굴 말고는 내세울 게 있니. 조모에게 있어 여자의 최고 행복 가치는 잘 사는 남자와 결혼이라고만 여기고 있다. [유럽연맹 챔피언스리그, 메릴본에서 가장 핫한 선수, 신이원! 한국 선수로서는 최연소로 최다 골과 타이 기록을 이뤘습니다.] 결혼 따위, 꼭 해야 하는 건지. 윤서는 메시지를 한참 보다가 키보드를 올려 이따 뵙겠습니다, 하고 답장을 전송했다. 그와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휴대폰을 쥔 채 벽에 달린 모니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토요일 오전이었다. 택배가 올 리도 없는 시각이다. “저기요, 아무도 없습니까?” 윤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신이원이야. 윤서 누나. 기억해?”
“남자를 꼬시려고 넌 어떻게 했어?” “……엄마는 뇌병변장애인이었고, 아빤 농인이었어요.” “너 어디서 상상력 풍부하단 소리 많이 듣지?” 수진은 생긋 웃었다. “돌아가세요, 취했어요.” 분명 그랬던 남자였다. 한혜영. 한국 경제를 틀어쥔 최대 기업 KS 전자의 차남이자 망나니.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그런 방탕아이자, 수진을 절망의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줄 유일한 남자. 그러나 결국 수진을 버린 남자. 다른 남자와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 남자와 왜 이렇게 더럽게 엮였는가를. “지긋하게 가난을 싫어했잖아.” “…….” “너를 건져 올릴 테니까 결혼은 나와 해.” 제게는 어째서 이런 날조차도, 다른 여자가 애를 가지고, 눈이 오고, 눈발이 휘날리고, 납치당하고. 어째서. “수진아.” 부르지 말아요, 그 이름. “이수진.” 제발. “사랑해.”
“은서율, 너 여기서 뭐 해.” “아, 서율이를 아세요.” “잘 압니다.” 오로지 이곳에 서율 밖에 없다는 듯한 집요한 눈빛이었다. “그러세요? 저는 서율이네 집안과 잘 알고 있고, 오늘 정식 선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아무리 상도 없는 관계라지만, 한 침대에서 뒹구는 여자가 딴 남자와 선이라니. 심사가 꽤 뒤틀리네.” 이렇게 감정 기복도 없고, 크게 요란 떨지 않는 남자는 도대체 침대에서 어떨까 싶었는데. 엉망이었다. 난잡하고 더러웠다. “햇수로 2년, 정확히 1년 반 만났어. 결혼하자.” “오빠,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요. 우리 만난 거 아니었어요.” “데이트해야만 그게 만남인가.” “질척이지 말고, 여기서 끝내요.”
※ 본 도서는 2023년 7월 19일 기출간된 ‘관능의 민낯’을 대폭 개정한 것이므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내 장손의 아내가 되는 건 어떠냐.” 에디슨 자동차 그룹 회장 정승학의 눈에 띄어 아침에 시간을 정해 그와 단독 대담을 하는 출판사 ‘울림’의 편집자 이아윤. “정우재입니다.” 에디슨 차 그룹의 젊은 차기 경영권자. 어렵다. 이미 젊은 나이에 치열한 경영권 싸움에서 승기를 거머쥔 남자는 존재가 평범하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공기의 흐름을 뒤바꾸었다. “주말에 뭐 합니까?” “쉬어요.” “뭐하고 쉽니까. 사귀는 사람 만납니까?” “그냥, 빨래하고 청소하고, 자고 그래요.” “사귀는 사람 안 만납니까?” “남자친구는 바빠서 주말에 자주 못 만나요.” “그럼, 이번 주말에 나 만나요.” “제가, 대표님을 왜요.” “사귀는 남자는 바쁘고, 프러포즈 받은 남자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은데. 나라면 이아윤 씨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확신해요.” “남자친구 두고 다른 남자 만날 만큼 뻔뻔하지 않아서요.” “나랑 놀면 재밌을 텐데요.” “무슨 자신감이세요?” 여자가 황당하단 투로 물었다. “남자의 자신감은 근거 없는 곳에서 나오지 않죠.”
'남서연.' 나무 그늘에서 늦봄의 볕을 피하는 서연을 태범이 불렀다. 서연은 조금 불쾌했다. 장신에 그저 그런 고등학생답지 않게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조폭 아들이었고 일진에 양아치였다. 그가 살갑게 부르는 제 이름이 역겨웠다. '네가 신기동이랑 대흥동에서 제일 예쁘다며.' '근데?' 정태범이 빙글 웃으며 나뭇가지를 잡고는 서연의 앞에 서서 등줄기를 살짝 굽힌다. '나랑 사귀자.' '싫어. 내가 조폭 새끼랑 왜?' 징그러웠다. 고등학생 주제에 길거리 조폭처럼 몸이 커다랗고 키도 크고 웬만한 어른들조차도 기를 누를 만큼 압도적이다. '너 공부도 잘한다며? 대학에 들어갈 거라고.' 그 웃음이 늦봄 뙤약볕처럼 작열하는 듯하다. '근데?' '내 주변에 예쁜 데다가 대학교까지 가려는 여자는 너밖에 없어서. 너처럼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애랑 사귀고 싶어.' '자랑이다.' '그치, 자랑이지.' '......' '나 그림 잘 그려.' '......' '나랑 사귀면. 내가 학교 착실하게 다닐게. 애들도 안 괴롭히고, 주먹질도 안 하고, 선생한테도 안 덤비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리고 너도 죽이게 그려줄게.' 죽이게는 뭐람. 죽인다는 뜻인가. *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소녀가 간절했다. 인생을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던 소녀가 매일 매일 절박하게 눈에 아른거렸다. 홍콩에서 무뢰배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던 소녀였다. "보고 싶었어. 남서연."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내 그리운 소년 시절의 남서연.
※ 본 도서에는 강압적 관계 및 폭력적인 장면 묘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언니가 죽었다. 우주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처럼 온통 어둠만이 가득한 삶에 오롯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던 별빛이 영영 소멸했다. 아주 못된 꿈에 갇힌 것만 같았다. 소리를 쳐도, 몸부림쳐도 깨지 않는 못된 꿈. ‘어쩔 수 없으나,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만. 벙어리라도 안고 가야지.’ 부친은 결정했다. 형의 아내가 바뀌었다. - 신경이 들뜬 남편의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게 없다. 결혼식 날에는 따귀 몇 대였지. 며칠이 지나자 그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얼굴에 주먹질하고, 머리채를 잡아 얼굴이 터질 때까지 때렸다. 하연의 영혼은 매일같이 여러 갈래로 부서졌다. 난자당하고 억압되고 그의 폭력과 고함에 움츠러들었다. “사모님, 혹시 오한이 들거나 감기 증세 같은 것 있으실까요? 사골곰탕 냄새도 역하셨어요?” 혹시. “임신 증세와 꼭 같은데, 임신이 아닐까…… 짐작해요.” 절망이 서리처럼 차갑게 온몸을 휘감았다. 드디어. 더럽고 난잡한 남자의 씨가 제 배에 들어섰구나. - “형수님이 나를 복수에 이용해요. 이건 그럴듯한 제안입니다. 서로 필요에 의한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연은 시숙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시숙이 입매를 비스듬히 민다. “제가…… 시숙을 어떻게 이용하면 되나요. 남편 대신 시동생이란 말씀은…….” “말 그대로입니다. 나와 부정한 사이가 되는 겁니다.”
강원도 양양의 다 허물어져 가는 시골집에서 자랐다. 그 흔한 LED TV는 사치였다. “친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는 아줌마 친자식이야.” “저기, 누구세요?” 연아는 명치끝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렸다. “넌?” “전…… 전 이연아라고…… 오늘부터 이곳에서 살게 된…….” “넌 뭐냐고.” 연아는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질렀다. “네가 뭔데 여기 있는 거야.” “누가 여기 쓰라고 했는지 묻잖아.” 남자의 눈동자는 분명 갈색인데 빨갛다는 기이한 착각이 들었다. 연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현대물 #동거 #복수 #소유욕/독점욕/질투 #재벌남 #뇌섹남 #집착남 #평범녀 #무심녀 #순진녀
“남자가, 생겼어.” “그런데?” 미아는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혼하잔 말은 너무 유치하고 지지부진해 그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생겼다고 하면 입을 다무는 건 남편일 줄 알았다. “이혼하자고?” “아니.” “그런데.” “이제, 너랑 자고 싶지 않아.” 최이환의 근사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미간 하나 찌푸리자고 별짓을 다 했지. “나랑 자고 싶은 건 너잖아.” 그가 순식간에 미아의 뺨을 잡으며 등허리를 굽혀 입을 맞췄다. 도리질 치는 얼굴을 그가 꽉 붙잡는다. “서미아, 어쩌지. 네 몸은 이율배반적인데?”
―얘, 우건아. “네, 말씀하십시오.” ―결혼해야겠다. 우건은 앞차의 후미등이 붉게 들어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누구도 특별히 간섭하지 않던 삶이었다. 우건은 별안간 결혼하라는 조부의 명령이 당황스럽다. “천애고아 뒷바라지라도 하시란 말씀이에요?” “그래.” “노망나셨습니까?” “이 미친놈이.” “황혼 연애라도 하셨어요?” “그래, 이놈아.” 9살이나 어린 스물두 살의 여자애와 결혼을 밀어붙이는 조부가 노망이 난 듯하다. “하, 할아버지께서 억지로 밀어붙이셔서 나온 거 맞지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어린 나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가 분명하지만, 할아버지를 말리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한번 설득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요. 여기 나오기 전에.” 금세 당황해하는 여자를 외면하며 우건은 식사만 한다. 이런 일의 연장선상 같은 자리 언제나 있었던 일이므로.
“남자가, 생겼어.” “그런데?” 미아는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혼하잔 말은 너무 유치하고 지지부진해 그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생겼다고 하면 입을 다무는 건 남편일 줄 알았다. “이혼하자고?” “아니.” “그런데.” “이제, 너랑 자고 싶지 않아.” 최이환의 근사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미간 하나 찌푸리자고 별짓을 다 했지. “나랑 자고 싶은 건 너잖아.” 그가 순식간에 미아의 뺨을 잡으며 등허리를 굽혀 입을 맞췄다. 도리질 치는 얼굴을 그가 꽉 붙잡는다. “서미아, 어쩌지. 네 몸은 이율배반적인데?”
“은서율, 너 여기서 뭐 해.” “아, 서율이를 아세요.” “잘 압니다.” 오로지 이곳에 서율 밖에 없다는 듯한 집요한 눈빛이었다. “그러세요? 저는 서율이네 집안과 잘 알고 있고, 오늘 정식 선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아무리 상도 없는 관계라지만, 한 침대에서 뒹구는 여자가 딴 남자와 선이라니. 심사가 꽤 뒤틀리네.” 이렇게 감정 기복도 없고, 크게 요란 떨지 않는 남자는 도대체 침대에서 어떨까 싶었는데. 엉망이었다. 난잡하고 더러웠다. “햇수로 2년, 정확히 1년 반 만났어. 결혼하자.” “오빠,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요. 우리 만난 거 아니었어요.” “데이트해야만 그게 만남인가.” “질척이지 말고, 여기서 끝내요.”
―얘, 우건아. “네, 말씀하십시오.” ―결혼해야겠다. 우건은 앞차의 후미등이 붉게 들어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누구도 특별히 간섭하지 않던 삶이었다. 우건은 별안간 결혼하라는 조부의 명령이 당황스럽다. “천애고아 뒷바라지라도 하시란 말씀이에요?” “그래.” “노망나셨습니까?” “이 미친놈이.” “황혼 연애라도 하셨어요?” “그래, 이놈아.” 9살이나 어린 스물두 살의 여자애와 결혼을 밀어붙이는 조부가 노망이 난 듯하다. “하, 할아버지께서 억지로 밀어붙이셔서 나온 거 맞지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어린 나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가 분명하지만, 할아버지를 말리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한번 설득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요. 여기 나오기 전에.” 금세 당황해하는 여자를 외면하며 우건은 식사만 한다. 이런 일의 연장선상 같은 자리 언제나 있었던 일이므로. 본편 표지 : 힝둥 님 외전 표지: 재득 님
막 스무 살이 된 그해. 결혼을 종용받게 된 지우, 아무리 이성에 문외한인 지우라도 알았다. 차승도가 얼마나 방탕한지, 색을 얼마나 밝히는 남자인지, 개차반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차승도입니다.” “혹시 어린 여자에 대한 환상있어요?”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여자보다는 어른 여자가 좋죠. 여러모로 휘둘리는 걸 좋아해서.” KE그룹의 막내 개차반 차승도와의 선.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만남. “저와……결혼해 주세요.” “나랑 결혼해줘요, 차승도 씨.” “내가, 차승도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차승도 씨가 좋아지려고 해요.” 등 떠밀리듯 하는 결혼이 아니라, 구걸해야 하는 결혼. 이 결혼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차승도. “도와줘요……나를.” 갓 스무 살, 성숙하지 못한 지우의 성숙한 결혼.
“남자가, 생겼어.” “그런데?” 미아는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혼하잔 말은 너무 유치하고 지지부진해 그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생겼다고 하면 입을 다무는 건 남편일 줄 알았다. “이혼하자고?” “아니.” “그런데.” “이제, 너랑 자고 싶지 않아.” 최이환의 근사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미간 하나 찌푸리자고 별짓을 다 했지. “나랑 자고 싶은 건 너잖아.” 그가 순식간에 미아의 뺨을 잡으며 등허리를 굽혀 입을 맞췄다. 도리질 치는 얼굴을 그가 꽉 붙잡는다. “서미아, 어쩌지. 네 몸은 이율배반적인데?”
※ 본 도서에는 강압적 관계 및 폭력적인 장면 묘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언니가 죽었다. 우주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처럼 온통 어둠만이 가득한 삶에 오롯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던 별빛이 영영 소멸했다. 아주 못된 꿈에 갇힌 것만 같았다. 소리를 쳐도, 몸부림쳐도 깨지 않는 못된 꿈. ‘어쩔 수 없으나,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만. 벙어리라도 안고 가야지.’ 부친은 결정했다. 형의 아내가 바뀌었다. - 신경이 들뜬 남편의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게 없다. 결혼식 날에는 따귀 몇 대였지. 며칠이 지나자 그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얼굴에 주먹질하고, 머리채를 잡아 얼굴이 터질 때까지 때렸다. 하연의 영혼은 매일같이 여러 갈래로 부서졌다. 난자당하고 억압되고 그의 폭력과 고함에 움츠러들었다. “사모님, 혹시 오한이 들거나 감기 증세 같은 것 있으실까요? 사골곰탕 냄새도 역하셨어요?” 혹시. “임신 증세와 꼭 같은데, 임신이 아닐까…… 짐작해요.” 절망이 서리처럼 차갑게 온몸을 휘감았다. 드디어. 더럽고 난잡한 남자의 씨가 제 배에 들어섰구나. - “형수님이 나를 복수에 이용해요. 이건 그럴듯한 제안입니다. 서로 필요에 의한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연은 시숙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시숙이 입매를 비스듬히 민다. “제가…… 시숙을 어떻게 이용하면 되나요. 남편 대신 시동생이란 말씀은…….” “말 그대로입니다. 나와 부정한 사이가 되는 겁니다.”
“나랑 연애할래?” 아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자가 피식 웃음을 띤다. “주말에 뭐합니까?” “……밀린 집 안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평소에 못 잔 낮잠도 자고. 바빠요.” “나랑 놀면 재밌을 텐데요.” “저 남자친구 있다니까요.” 여자가 곤란하게 미간을 굽힌다. 귀여워서 우재는 웃음이 나는 것을 참는다. 온몸의 혈관이 들끓는다. 손바닥 이쪽에서 저쪽, 온몸을 가파르게. “남자친구가 없다고 가정해요. 외롭고 심심한데 누군가는 만나고 싶고.” “굳이, 모르는 남자를 만나진 않겠죠.” 쫓고, 쫓아가고 싶게 만드는 여자다.
'남서연.' 나무 그늘에서 늦봄의 볕을 피하는 서연을 태범이 불렀다. 서연은 조금 불쾌했다. 장신에 그저 그런 고등학생답지 않게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조폭 아들이었고 일진에 양아치였다. 그가 살갑게 부르는 제 이름이 역겨웠다. '네가 신기동이랑 대흥동에서 제일 예쁘다며.' '근데?' 정태범이 빙글 웃으며 나뭇가지를 잡고는 서연의 앞에 서서 등줄기를 살짝 굽힌다. '나랑 사귀자.' '싫어. 내가 조폭 새끼랑 왜?' 징그러웠다. 고등학생 주제에 길거리 조폭처럼 몸이 커다랗고 키도 크고 웬만한 어른들조차도 기를 누를 만큼 압도적이다. '너 공부도 잘한다며? 대학에 들어갈 거라고.' 그 웃음이 늦봄 뙤약볕처럼 작열하는 듯하다. '근데?' '내 주변에 예쁜 데다가 대학교까지 가려는 여자는 너밖에 없어서. 너처럼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애랑 사귀고 싶어.' '자랑이다.' '그치, 자랑이지.' '......' '나 그림 잘 그려.' '......' '나랑 사귀면. 내가 학교 착실하게 다닐게. 애들도 안 괴롭히고, 주먹질도 안 하고, 선생한테도 안 덤비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리고 너도 죽이게 그려줄게.' 죽이게는 뭐람. 죽인다는 뜻인가. *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소녀가 간절했다. 인생을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던 소녀가 매일 매일 절박하게 눈에 아른거렸다. 홍콩에서 무뢰배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던 소녀였다. "보고 싶었어. 남서연."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내 그리운 소년 시절의 남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