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나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사랑은 없었던, 기업 간의 정략결혼. 그때의 기억은 수정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기억을 이겨내며 살아오길 5년. 어느 날 나타난 민혁은 수정이 궁지에 몰려 있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너랑 나랑 엮이는 건 고작 6개월이라고.” 그의 젖은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수정에게 한 방울 떨어졌다. 아무도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 민혁을 제외하고는. * “너는 날 볼 때 무슨 생각 해.” “무, 무슨 생각이라니.” “난 널 보며 야한 생각을 했어.” 고해성사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진솔하게 자신의 죄라고 고백하는 듯 그 모습이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이용해 수정의 볼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그런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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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사고 이후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박서하 앞에. “네 앞에 있던 빚들도 정리해 줄게. 어머니 병원비도 걱정 말고.” “그걸 왜 나에게…… 해 줘요?”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백강현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서하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풋사랑이자, “……내게 뭘 원해요?” “우리 집에서 3개월만 일해.” 두려움으로 떠난 그날의 상처이기도 했다. 그날로부터 10년. 긴 세월이 지났듯이 서하는 더 이상 순진하기만 한 소녀가 아니었다. “오빠가 말하는 거,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서하야, 감당 가능한 말만 해.” 삐딱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역시도, 전과 같이 곱게 자란 소년은 아니었고. “이렇게 덜덜 떠는 여자 잡아먹는 악취미는 나에게 없는걸.” 각인된 상처들로 인해 밀어내면서도 밀어내지 못하는 애증의 이야기. <낙인(烙印)>
“다 죽을 것처럼 말라가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혈혈단신 홀로 남은 아진에게 유일한 갈망은 태윤이었다. 몸은 취할 수 있으나, 마음은 취할 수 없던 그. 그의 옆에서 말라 죽어가던 아진은 그에게 이별을 원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그는 아진을 붙잡았다. 지친 듯한, 그의 음성이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날…… 사랑해 줄 수 있나요?” “사랑이라.” “제가 겪은 감정, 상무님도 겪으면 좋겠어요.” 아진이 그의 옆에서 외로운 사랑을 할 때, 되려 마주했던 것은 행복감이 아닌 깊은 외로움이었다. 텅 빈 공동 같은 관계에, 그가 주는 한 줌의 애정을 받아먹으며, 저를 값싸게 팔아버렸다. 아팠으면, 그도 싸늘한 외사랑에 잠 못 이뤘으면. 당신이 날 보지 않은 만큼 굶주리며, 내 시선 한 조각에 들떠 봤으면. “앞으로 두 달. 그 짝사랑이란 걸, 한번 해 보지.” 지금껏 자신이 알던 그가 아님을 눈으로, 귀로도 확인했을 때.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구차하게.”
도피를 위한 결혼이었다. 평생을 억눌려 왔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그러나, 아버지는 결혼 후에도 어머니의 치료를 들먹이며 채린을 조종하려 들었다. “자네 지금 이게 무슨 예의없는 짓인가…!” “장인어른이 참으세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곧장 친정으로 향했고. 친정에서 발견된 다른 헐벗은 여자를 보고도 그는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들 뿐이었다. “제가 양아치도 아니고. 설마 아무 데서나 이러겠습니까?” 그리곤 조소 섞인 말투로 조롱했다.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 담배를 찾는.” 실내에서 꺼내 든 담배 연기가 뿌옇게 피어올랐고. 아버지는 수치심과 분노에 얼굴을 붉혔다. “못 배워 먹은 버릇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이 결혼, 잘한 것 같다.
“1년. 쉽게 말해서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하세요. 내조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계약이 끝나면 바로 이혼입니다.” “……네?” 인생에서 청혼따위 바란 적 없다. 고아년이라고 맞아가며 커온 세월. “조건에 협의는 없습니다.” 그런 지옥같은 삶에 그가 나타났다. 결혼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혼 고지하는 남자. 그는 하린이 짝사랑하는 상대이자,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과 약혼이 오고가던 사람이었다. *** “정말로, 진짜 제가 다른 놈 만나서 사는 거 보길 원해요?” “상관없어.” 숨김없는 알맹이가 툭 튀어나와 둘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침없이 흔들었다. 낯선 감정이, 곧 터질 듯 팽창하고 있음을 느꼈다. “한 번이라도 여자로 봐주면 안 돼요? 저 뭐든지 잘 배우고, 잘 할 자신 있어요.” “뭐를.” 토끼처럼 붉은 눈이 커다랗게 뜨여 그를 애타게 바라봤다. 붉게 물든 얼굴이 깊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한번 꺼내면 영영 돌이킬 수 없어, 티도 못 내던 그 감정을 말이다. “내가 널 여자로 봐주면, 어떤 일이 생길 줄 알고.” 성대를 긁으며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어릴 적 사고 이후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박서하 앞에. “네 앞에 있던 빚들도 정리해 줄게. 어머니 병원비도 걱정 말고.” “그걸 왜 나에게…… 해 줘요?”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백강현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서하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풋사랑이자, “……내게 뭘 원해요?” “우리 집에서 3개월만 일해.” 두려움으로 떠난 그날의 상처이기도 했다. 그날로부터 10년. 긴 세월이 지났듯이 서하는 더 이상 순진하기만 한 소녀가 아니었다. “오빠가 말하는 거,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서하야, 감당 가능한 말만 해.” 삐딱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역시도, 전과 같이 곱게 자란 소년은 아니었고. “이렇게 덜덜 떠는 여자 잡아먹는 악취미는 나에게 없는걸.” 각인된 상처들로 인해 밀어내면서도 밀어내지 못하는 애증의 이야기. <낙인(烙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