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개정판] 크리스마스이브에 첫사랑과 떠난 여행. 은비는 들뜬 마음으로 사랑하는 현우와 첫날밤을 보내지만, 다음 날 흔적도 없이 그가 사라진다. 수만 가지 오해와 상상으로 지옥에 빠진 은비. 7년 후, 그녀는 남자와 크리스마스에 학을 떼는 워커홀릭 열혈기자로 거듭난다. 그러던 중, 또다시 크리스마스 악몽으로 이브 날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크리스 현을 만나러 가는데. 과연, 미도에 빠져버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미도 迷途,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섞갈리기 쉬워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 *** 얼마나 잔 것일까?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던 은비가 창가로 스민 따사로운 햇살에 코끝을 찡그렸다. 마치 몸살이 난 사람처럼 그녀의 온몸이 노곤하게 아파진다. 어젯밤의 일들이 떠올라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스르르 눈을 뜬 순간,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없다.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지? 이불을 끌고 창가로 다가간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없다. 어제 분명 주차해놓았던 그의 차가 보이지 않는다. 뭐지? 단순하게 생각했던 그녀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완전히 엉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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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우, 잘 들어. 내가 지금껏 널 아꼈던 것은, 어차피 넌 내 것이라는 전제 조건 때문이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죽을힘을 다해 널 지켜줬던 거야. 하지만 이젠,” 우현의 눈가가 설핏 접힘과 동시에 두 눈이 정염으로 무서우리만큼 뜨겁게 물들었다. “안 기다려. 이서우의 모든 것은 내 거니까. 이서우는 남우현의 것이니까.” 그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가 소름이 끼칠 만큼 서늘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힘 있는 손길로 그녀의 몸에 걸려있는 웨딩드레스를 벗겨낸다. 등에 달린 지퍼가 거칠게 내려가도 드레스가 쉽게 벗겨지지 않자, 그가 마지막 자락을 찢어버린다. “사랑해, 서우야…….”
[15세 개정판] “나 사귀는 사람 있는데.” “선배가요?” 응? 강신혁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모르고 생쇼를 벌였으니. 멀리서 듣고 있던 채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거짓말 말아요, 선배. 선배가 사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맑고 청아했던 목소리가 어느새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이야.” “그게 누군데요?” 의심스럽게 말꼬리를 올리는 후배의 말에 신혁이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 채은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던 채은이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며 푹 숙였던 고개를 살며시 들어 두 사람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허공에서 세 사람의 시선이 어색하게 부딪혔다. “안……녕?” 당황한 채은이 손을 사정없이 흔들며 어색한 인사를 했다. 연인(戀人),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15세 개정판] *본 도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현실의 인물이나 단체, 상황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앉아요!” 자그마한 캐리어를 현관 앞에 놓은 채로, 주하가 말없이 세준이 있는 다이닝 테이블로 향했다. 1년을 한집에서 지내면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마주 앉아 함께 식사한 적조차 없었다. 회사 일이 바쁜 것도 있었지만, 주하는 알고 있었다. 세준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꾹 다물어버린 주하의 입술을 열리게 하려는지, 세준이 평소답지 않게 엷은 미소를 보였다.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투명해졌던 동공이 먹물 빛으로 가득 메워지고, 주하가 서서히 입술을 열었다. “그동안 저는 참 좋았어요.” 좋았다고? 생각지도 못한 주하의 말에 세준의 두 눈이 커졌다. “가족이 생겨서요. 처음이었거든요. 가족이 생겼던 건…….” 세준의 입술이 의아하게 벌어졌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가족은 심했다. 가짜 손주며느리인지 모르고 마지막까지 주하를 옆에 두고 힘들게 만들었던 그의 할아버지도, 가짜 며느리인지 뻔히 알면서도 매 순간 주하를 괴롭혔던 그의 어머니도. 그런데도 가족이 생겨 좋았었다고 말하는 이 여자가 세준은 어이가 없었다. “할아버지도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셨거든요. 진짜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울고도 눈물이 남은 걸까? 주하의 두 눈 가득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적어도 장례식에서 보였던 주하의 눈물은 가식은 아니었나 보다. 그 모습에 세준이 식탁 위에 놓인 보드라운 티슈를 꺼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 건넨다. 그가 건넨 티슈를 받기도 전에 주하의 뺨을 타고 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왜?” “없다…….” “뭐?” 매번 약국에 들러 구입하기 창피하고 번거로워 유연이 인터넷으로 대량 구매해 놓은 것이었다. 그 많은 것을 도대체 언제 다……. “선배,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다!” 유연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내 건장한 석진의 몸에 의해 다시 침대로 눕혀진다. 그의 눈망울은 세상을 잃어버린 절망감이 깃든 서글픔이 배어 있었다. “오늘 배란일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위험해. 여자는 1년 365일이 임신 가능일인 거 몰라?” “조심할게! 맹세!” 무슨 맹세 씩이나. 처절한 석진의 목소리에 유연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금 멈추라는 것은 나보고 죽으라고 하는 소리랑 같아.” 석진의 표정을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펠로우 마칠 때까지는 아이 안 갖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것이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석진도 합의를 했었고. “걱정 마. 안에 안 한다고! 지금껏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잖아?” *** “이혼해, 우리.” “……진심이야?” 유연은 진심이 아닌 것을 들킬세라, 부러 목소리를 꾹꾹 눌러 대답했었다. “진심이야!” 그날, 모멸감 가득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석진을 유연은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오랜 시간, 그를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그 모든 기억은 그 눈빛과 함께 쓰레기통에 처참하게 버려지고 말았다.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고 지정된 기일에 함께 참석하기 위해 법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혼하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하기엔,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알게 된 그의 실종.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기억(記憶), 과거의 경험을 인간의 정신 속에 간직하고 되살리는 것.
“조건은 간단합니다. 6개월 동안 일주일에 2번. 이곳으로 와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면 됩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작게 흔들렸다. 10억이라는 금액에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다. 사랑 없이도 육체적 관계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어리지 않았고, 돈이 절실했다. “단, 염두에 두어야 할 특별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격앙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은 나누되,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에 빠진 순간, 이 계약은 파기됩니다. 당연히 지급되었던 돈까지 모두 회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돈으로 여자를 살 만큼 욕망을 절제 못 하는 남자를, 그녀는 사랑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적막한 공기를 갈랐다. 밀계, 비밀스레 맺는 계약.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래, 마지막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하는 제가 가진 가장 예쁜 원피스를 입고, 코랄 빛 립스틱으로 입술선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생기 있게 보이려나. 스무 살, 그때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떠오를까. 뭔가 결심한 듯 이를 악문 서하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걸음을 터벅터벅 욕실 쪽으로 옮겼다. 욕조를 가득 채운 따뜻한 물이 그녀를 유혹하듯 손짓했다. 그녀가 천천히 욕조 안으로 들어서자, 찰랑거리던 물결이 파도를 일으키며 욕실 바닥으로 쏟아졌다. 언제부터 떨고 있었을까.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온몸을 잠식했던 한기가 조금은 걷혀 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굳이 그녀의 죄를 꼽으라면, 꿈을 꿔 버린 것? 그 꿈을 실현하려고 애쓴 것? 화사한 색의 립스틱을 발랐는데도 서하의 얼굴엔 전혀 생기가 돌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 끝에서 슬픈 조소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런 생각 따위가 무슨 상관일까. 결심한 듯, 질끈 눈을 감은 서하가 꽉 쥔 무언가를 다른 쪽 손목에 서서히 가져다 대었다. 욕실 온도와 상관없이 예리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손목을 가로로 가르며 지나간다. 어느새 점점 핏빛으로 진해져 가는 욕조 안으로 그녀의 손이 한 떨기 꽃처럼 힘없이 떨궈졌다. 눈을 감은 서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호텔 방 안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심애(深愛),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