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밀의 로맨스 장편 소설 『금기(Taboo)』 열아홉 소년 현준수, 객식구로 들어온 동갑내기 소년 한서원을 만나다! 모든 것에 만능이자 인기절정.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철부지 도련님, 현준수.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신경 쓰이게 하는 녀석이 어느 샌가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는데. 남자 맞아? 근데 왜 자꾸 시선이 가지? 왜 계속 만지고 싶어지냔 말이야, 젠장! 남장여자 한서원과 방탕문란 싸가지 현준수의 두근두근 아슬아슬, 은밀한 첫사랑 이야기. **본 도서는 의 Original 학원물 버전입니다.*** 톡톡 튀는 매력이 가득한 로맨스 작가 리밀!! 그녀의 추천 로맨스 를 이제, 카카오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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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혹시,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함부로 좋아한 대가일까. 뒷담화의 현장을 들켜 버린 은형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그 남자, 민승재. 수시로 날아드는 생뚱맞은 질문과 괜한 시비. 팀장님,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어디 또 까불어 봐요.” “저 안 까불….” 입술이 닿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무르던 그가 이내 아주 천천히 멀어졌다. 반할 만큼 매혹적인 승재를 올려다보며 은형은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버텨 내고 있었다. 여전히 닿아 있는 것처럼 지독하게 부드럽던 입술의 감촉. 목에 팔이라도 두르고 매달려 안기고 싶은 걸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승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또.” “…….” “왜 조용해? 까불어 보라니까.” “…잘게요.” “멋대로 불 질러 놓고 어딜 갑니까?” 비켜 가려는 순간 커다란 몸이 앞을 막아섰다. 반대로 피하려는 것까지 차단한 그가 허리 뒤로 크게 손을 둘러 확 끌어당겼다. 오롯이 맞닿아 오는 느낌에 놀란 은형이 눈을 크게 떴다. “확인해 볼래요?” “뭘….”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네…?” “확인해 보자고, 같이. 궁금할 것 같은데.” 서늘하게 식은 눈매로 승재가 은형을 내려다봤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이 갈수록 위험하게 끈적거리며 짙어졌다.
사소한 마주침. 별것 아닌 시선과 별 뜻 없을 말들. 서로가 서로에게 단지 그뿐이던 처음. 확연히 달라진 이후. “가만있죠. 들키면 성가셔져.” 설마 했었다. 단지 또 한 번의 우연이 더해졌을 따름이라. 현서가 간과한 건, 겸이 의외로 곤란한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혹시 시간 있어요?” “……네?”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랑 놀아 줄 시간.” 수시로 떠올랐다. 정체불명의 기이한 열감이 자꾸만 온몸을 들뜨게 했다. 위험한 신호인 줄 알면서도 끌려갔다. 이제 감당하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어떡하죠. 또 울릴 거 같은데.” 나지막이 읊조리는 겸의 표정이 실로 야했다. 현서는 제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어쩌면 벌써 터져 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고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떨리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할딱이는 윗입술에 이어 내뱉는 숨결마저 모조리 집어삼켜진다고 느꼈을 때,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가 그녀의 안으로 가득 들어찼다.
본 작품은 19세 관람가 작품을 15세 이용등급에 맞게 개정한 작품입니다. 지겹고 고단한 일상, 나아질 게 없는 하루하루의 반복. 벼랑 끝에 서 있는 혜윤의 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한 남자. “키스했어? 닿았냐고, 입술. 아까 그 새끼하고.” “……아뇨.” “더듬거나 어디 만진 데는.” “……없어요.” “됐어, 그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심상치 않았던, 우월한 외모와 그보다 더 대단한 배경을 가진 그가 위태로운 혜윤의 심장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겁이 날 정도로. “아니죠.” “뭐가.” “설마 날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좋아만 하겠어?” 만약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없었던 일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감히 바라게 되었다.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모두 다 진심이기를. 부디. 작가 리밀 의 장편 로맨스 소설 『할로우 틱 (Hollowtic)』. 그녀의 지고지순한 최강 집착 로맨스 『할로우 틱 (Hollowtic)』을 이제, 카카오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않은 접촉 사고. 꼼짝없이 물어 주게 생긴 거액의 수리비. 벼락처럼 찾아든 절망이 하윤은 오히려 우스웠다. 어차피 바닥이니까. 안 그래도 최악인 상황에 이깟 불행쯤 얹어진다고 대수겠는가 싶어서. 한데. “다 울었어?”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몰래 우는 모습을 들켰던 바로 그 순간. “죽은 듯이 우네. 재주도 좋다.” 나직한 말투가 빈정거림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차라리 소리 내어 울라고, 그래도 된다는 말로 들렸을 때. 하윤은 직감했다. 뭔가 굉장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온통 까맣게 깊은, 왠지 야릇한 것도 같은 남자의 저 집요한 눈빛이, 단 한 순간조차 벗어날 수 없도록 그녀를 철저하게 옭아매리라는 것도.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더 눈 돌기 전에.” 유은은 이를 악물었다. 내벽 깊은 곳을 살살 긁어대는 손가락 때문에 눈앞이 다 아찔했다. 찌꺽,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만 빼달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기준의 손가락은 더욱 현란하게 내벽을 쑤셔댔다. “하자는 거지? 하자고 지금 이렇게 움찔움찔 물어대는, 응?” “그, 읏, 그게…….” “그래, 실은 나도 못 그만둬. 아래가 터질 지경이거든.” ----------------------------------------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엮이면 안 될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손을 뻗었다.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으니까. “싫으면 울면서 밀어냈겠지. 안 그래?” 집어삼킬 듯 위험하게 번뜩이는 새까만 눈동자. 축축이 젖은 혀와 함께 귓불을 간지럽히는 나른한 음성. 난폭하게 파고드는 남자의 손길은 차마 믿기지 않게 다정했다. “그때 그냥 나가지 그랬어. 갔어야지, 기회줄 때. 왜 안 가고 나랑 엮여.” 유은은 알 수 없었다. 후회해야 하는지. 그럴 틈조차 남자는 결코 주지 않았다.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떨리다 못해 숨이 막혔다. 갇힌 품 안이 너무도 뜨거워서.
“읏……!” 화들짝 놀란 그녀가 어깨를 움츠렸다. 동시에 젖혀진 고개가 자연스럽게 천장을 보게 했다. 뭐가,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일이, 이게, 대체? 불이 꺼진 샹들리에. 보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것들을 눈에 담는 순간 또 아래가 빨렸다. 방금 전보다 훨씬 진하고 강하게, 아예 입술로 틀어막고서 쭉쭉 빨아대는 그였다. “흣, 뭐 하는, 하읏……!” 몸을 뒤로 빼려 했다. 분명 그래야지, 마음먹었음에도 당황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래로 들어오는 혀의 감촉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 도로 눈을 뜨고야 말았다. 주름 사이를 헤집듯이 비벼 문지르던 혀가 조금씩 빠르게……. ---------------------------------------- 언제부턴가 이성적인 사고란 불가능했다. 낯선 곳,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창밖으로 몰아치는 눈보라 따윈 무섭지 않다. 뜨겁고도 강렬한 저 남자의 눈빛에 비하면. “벌려야죠. 다리.” 더없이 다정하던 목소리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심장이 녹아내린다. 은밀한 손길에, 그보다 더 야한 미소에. “벗을래요, 아님 내가 벗겨줄까요. 말만 해.” 분명 생각했다. 이건 덫이라고. 그러니 이 이상은 위험하다고. 알면서도 걸려들었다. 그의 숨결에 닿는 순간, 오래된 마법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의 일방적인 관심이 불편하기만 한 그녀, 서우희. 그런 그녀를 전혀 다른 의미로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 현서혁. 자꾸만 거슬린다. 못마땅한 듯 죽어라 노려보는 그의 까만 눈동자가. 생각하니 열받는다. 뭐 저리 까칠할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대체 왜 나한테만? “본부장님.” “말해요.” “죄송한데 저 회사 못 그만둡니다.” 치밀어 오르는 많은 말들을 대신해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내뱉으며 재킷을 벗었다. 그러고는 도로 가져가라는 듯 그에게 내밀었다. 한쪽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만두라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다행이면 어서 입어요.” “괜찮습니다.” “고집부릴 겁니까? 그러다 진짜 앓아누우면 어쩌려고.” 무슨 상관이냐고 되받아치려는데 그가 재킷을 확 낚아챘다. 아까보다 더 신속한 동작으로 거침없이 둘러 입혀 주는 그를 그녀는 차마 막지 못했다. 그가 자그맣게 툴툴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서 대리한테 그만두라는 말 한 적 없습니다.” “본부장님.” “만약 옮기겠다고 해도 말려야죠, 서 대리가 맡은 주요 프로젝트만 해도 몇 갠데. 게다가 일 잘하는 직원을 단순히 노파심에 함부로 자를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럼 저한테 뭐 바라는 거 있으세요?” 뿌리치지 못하게 앞깃을 꼭꼭 여며 주기까지 하는 그가 의아해 그녀는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만두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있느냐고, 그래서 이렇게 괜한 시비를 걸고 툭툭거리는 거냐고. 그녀는 제 말투가 꽤나 삐딱해졌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상황에 맞진 않지만 까만 눈동자가 소리 없이 일렁이는 모습이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그녀는 잠깐 했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가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샌가 약해진 빗줄기 덕분인지 차분한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 정도로 확고한 말투였다. 꼭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것처럼.
빌어먹을. 원우준이 연애를 한단다. 아니, 누구 맘대로? “우리 달희, 어디야?” “서운해라. 오빠한테 비밀이야?” “설마 남자는 아니지?” 그러면서 왜 제 연애에는 사사건건 간섭인지. 달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 안 되는 건 지난밤 꿈이다. 말도 못 하게 야하던. ‘오빠랑 키스할까.’ ‘여기다 해도 되지?’ ‘오빠가 좀 급해. 그러니까 달희 네가 이해해.’ 전부 원우준 때문이다. 놀림당한 게 억울해 달희는 비뚤어지기로 했다. 물론 그러도록 순순히 놔둘 우준이 아니었다. 그걸 달희는 미처 몰랐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키스면 돼? 오빠가 해 줄게.” “말 잘해. 오빠 지금 섰어.” 자고 나면 질리지 않을까. 할 만큼 해 보면, 그래, 그러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달희를 바라보는 우준의 눈빛이 묘하게 일렁였다.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가 한입에 달희를 집어삼켰다.
빌어먹을. 원우준이 연애를 한단다. 아니, 누구 맘대로? “우리 달희, 어디야?” “서운해라. 오빠한테 비밀이야?” “설마 남자는 아니지?” 그러면서 왜 제 연애에는 사사건건 간섭인지. 달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 안 되는 건 지난밤 꿈이다. 말도 못 하게 부끄럽던. 전부 원우준 때문이다. 놀림당한 게 억울해 달희는 비뚤어지기로 했다. 물론 그러도록 순순히 놔둘 우준이 아니었다. 그걸 달희는 미처 몰랐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키스면 돼? 오빠가 해 줄게.” 자고 나면 질리지 않을까. 할 만큼 해 보면, 그래, 그러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달희를 바라보는 우준의 눈빛이 묘하게 일렁였다.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가 한입에 달희를 집어삼켰다.
다원은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순미를 기다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에게 버려져, 할머니 복례 대신 가계를 꾸려나가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외로움의 파도를 견디며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밤에도 그랬다. “축하해.” “……네?”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피에 젖은 남자가 건네는 축하 인사는 기묘함을 불러일으켰다. 대뜸 처음 보는 다원에게 말을 건 것도, 손에 든 졸업장을 보고 인사를 건네는 것도, 다원을 따라 복례의 민박에 묵게 된 것도, 아득한 겨울날 저편에서 피어오르는 신기루처럼 다원에겐 낯설게 다가왔다. “아저씨한테 관심 갖지 마, 다원아.” “……별로, 그런 거 아닌데요.” 그저 제 인생에 나타난 낯선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저 위험해 보이는 남자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된 건진……. 침투는 빨랐고, 다원은 점점 그에게 잠식되었다. “후, 대답해야지. 다원아?” 그와의 밤이 여물어갔다. * * * “정말 없어, 남자친구?” 운헌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돌렸다. 이젠 아예 대놓고 젖꼭지만 건드리는 행태를 다원은 알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바들바들 떠는 다원을 눈에 담고서 운헌이 중얼거렸다. “왜지. 남자 새끼들이 가만둘 리 없는데.” “읏…….” “그렇잖아, 이렇게 예쁜데. 의외로 젖도 크고, 음?” “아, 잠깐…….” 왼쪽 가슴이 불시에 뜨거워졌다. 다원은 그게 덥석 움켜쥔 운헌의 손 때문이란 걸 알았지만, 막는 건 역시 불가능했다. “흐응…….” 허물어지듯 운헌의 품에 기대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쩌지 못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다원을 끌어안은 운헌이 그녀의 가슴을 손안 가득 쥐고서 음란하게 주물렀다. 《여문 밤》
“아메리카노 드릴까요?” “너무 써.” “카페 라테는 어떠세요?” “우유 싫어해.” 카페 알바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여, 소은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기가 막히게 잘생긴 만큼 기가 막히게 무서운 이 진상 때문에! 그런데 이 진상이 뜬금없이 대형 폭탄을 던진다. “밥 먹자.” 먹어? 뭘? 밥을? 왜? “저기요. 대체 왜 이러시는데요? 혹시 저 좋아하세요?” “……좋아한다면. 그럼 밥 먹을 거야?” 혼을 쏙 빼 놓는 은근한 목소리에 설레었……던 건 아니고, 굳이 밥을 먹으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궁금했을 뿐인데, “신붓감을 데려가야 해. 나와 잠깐 결혼해 줘.” 저기, 저 언제 봤다고 결혼이세요? 게다가 잠깐이라니?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세상 위험한 남자, 도무혁. 그런 그가 희한하게 자꾸 신경 쓰이는 여자, 현소은. 무혁이 덤덤하게 놓은 지뢰를 소은은 과연 피할 수 있을까?
남자들의 일방적인 관심이 불편하기만 한 그녀, 서우희. 그런 그녀를 전혀 다른 의미로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 현서혁. 자꾸만 거슬린다. 못마땅한 듯 죽어라 노려보는 그의 까만 눈동자가. 생각하니 열받는다. 뭐 저리 까칠할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대체 왜 나한테만? “본부장님.” “말해요.” “죄송한데 저 회사 못 그만둡니다.” 치밀어 오르는 많은 말들을 대신해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내뱉으며 재킷을 벗었다. 그러고는 도로 가져가라는 듯 그에게 내밀었다. 한쪽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만두라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다행이면 어서 입어요.” “괜찮습니다.” “고집부릴 겁니까? 그러다 진짜 앓아누우면 어쩌려고.” 무슨 상관이냐고 되받아치려는데 그가 재킷을 확 낚아챘다. 아까보다 더 신속한 동작으로 거침없이 둘러 입혀 주는 그를 그녀는 차마 막지 못했다. 그가 자그맣게 툴툴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서 대리한테 그만두라는 말 한 적 없습니다.” “본부장님.” “만약 옮기겠다고 해도 말려야죠, 서 대리가 맡은 주요 프로젝트만 해도 몇 갠데. 게다가 일 잘하는 직원을 단순히 노파심에 함부로 자를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럼 저한테 뭐 바라는 거 있으세요?” 뿌리치지 못하게 앞깃을 꼭꼭 여며 주기까지 하는 그가 의아해 그녀는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만두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있느냐고, 그래서 이렇게 괜한 시비를 걸고 툭툭거리는 거냐고. 그녀는 제 말투가 꽤나 삐딱해졌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상황에 맞진 않지만 까만 눈동자가 소리 없이 일렁이는 모습이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그녀는 잠깐 했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가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샌가 약해진 빗줄기 덕분인지 차분한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 정도로 확고한 말투였다. 꼭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것처럼.
*본 작품은 그을음의 연작 소설로, 도구플 및 자살 트리거 요소 등 호불호 강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봄은 늘 외로웠다. 온기가 필요했고, 기댈 곳이 절실했다. 불행에 삼켜지는 것도 개의치 않을 만큼. 하나, 정작 그녀를 삼킨 건 불행이 아니었다. “안 본 사이에 멍청해졌네. 별 같잖은 질문을 다 하고.” “……어딨어요?” “애새끼 말하는 거라면 신경 꺼, 잘 있으니.” 숱한 밤을 그리워했던 남자의 눈빛은 차게 식어 있었다. 도망친 대가라고 봄은 생각했다. 전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뭐 이리 질질 끌어. 아이 안 봐도 돼?” 약점을 쥐고 흔드는 남자의 만행이 오히려 달가웠다. 제 안을 헤집는 뜨거운 열기에 우습게도 마음이 놓였다. 정말이지 눈앞의 남자 말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서태경이라는 남자는 처음부터 그랬다. 심장이 데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왜…….” “뭐가 왜야. 네가 원한 거 아니었어?” 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열기로 바스러진 심장을 추스를 길이 요원했다. “보내 줄 때, 가. 마음 바뀌기 전에.” “…….” “아쉬운가 본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박아 줄까?” 그러지 뭐, 덧붙인 태경이 봄의 골반을 잡아챘다. 짓쳐 드는 그에게 자비란 없었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눈빛, 목소리, 체취, 분위기. 그가 지닌 모든 것들이 거슬렸다. 엮여서 좋을 게 없을 사람. 은수가 정의하는 서강열이란 존재는 그러했다. “저기.” “왜.” “자꾸, 닿아.” “섰으니까.” * * * 예기치 못한 재회. 기묘한 밤. 음란한 신호.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을까. “정말 나 먹고 버리려고 했어?” 폭풍 같은 밤을 지나 마주한 남자의 얼굴은 그녀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 도망은 안 된다고 말하는 갈색 눈동자에 자비란 없었다. 은수는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약속된 기한만 채우자고. * * * “보내 준다고 했잖아.” “그걸 믿었어?” 순진하긴. 싱긋 웃는 서강열의 미소는 늘 그랬듯 근사하기 짝이 없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뜨겁고 격한 혼란 속에서 은수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전략기획팀 서도건은 이른바 완벽함의 대명사였다.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 깔끔하고 담백한 성격, 출중한 업무 능력까지. 두루 갖춘 그에게 사내 여직원들은 열광했지만, 하솔에겐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거슬렸다. 그녀를 포함해 주변인들 모두를 깔보는 듯한 특유의 오만함이. 본인만 잘날 것이지, 남에게까지 사사건건 완벽을 강요하는 그 작태가 싫었다. 해서. “즐거운가 봐요.” “……네?” “의외네요. 날 씹는 게 그렇게 즐거울 일인가.” 뒷담화하다 걸렸을 때도 하솔은 당당했다. 재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민망하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서도건이 뭔가 좀, 이상하다. “화해할래요?” 뜬금없이 먼저 화해를 청하지를 않나.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몇 번씩 수정 못 해요.” 입에 침도 안 발랐으면서 칭찬을 늘어놓질 않나. “회사 계속 다닐 거죠?” 없으면 서운하다는 식의 표정으로 사람 혼을 쏙 빼놓기까지. 그러더니. “여 대리님.” “네, 서 대리님.” “오늘 나랑 잘래요?” 기어이 미친 소리를 한다. 물론 용서받을 절호의 기회이긴 했다. 사고를 친 것도, 뭐든 하겠다는 말도 하솔이 먼저 했으니까. 그렇지만. “대답해야죠.” “…….” “잘래요, 말래요?” “…몰라요.” “어쩌나. 몰라요는 보기에 없는데.” 들린다, 들려. 회사 생활 망하는 소리가. 하솔은 직감했다.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순응하고 말았다. 술과, 밤과, 느른한 눈빛의 서도건에게.
사장인 민건을 좋아하는 착실한 아르바이트생 열희. 고백할 생각도, 사귈 마음도 없던 단기 짝사랑을 들켜버렸다. 근데 왜 하필이면 저 남자일까. 민망한 상황들을 왜 번번이 들키고 마는 걸까. 대체. “뭐 하시는….” 고개를 얼른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마자 어김없이 입술에 닿아오는 손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온기에 놀랄 만큼. 열희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려 피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태열의 손아귀 안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가 조심스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쓱쓱 비벼 문질렀다. “하지 마세요.” “싫어.” “왜 이러시는데요.” “만지고 싶으니까.” “글쎄, 대체 왜….” “그러게. 왜일까.”
언젠가 한번은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그래, 어쩌면. 하지만 이런 식은 결코 아니었다. “의외네. 빨아 달란다고 빨아 주는 부류인 줄은 몰랐는데. 빨기만 했겠어? 잘하면 아예 드러누워 박히기도 했을 거야, 그렇지?” 비딱하게 구는 그라도 상관없었다. 도움이 필요했고, 결국은 얽히게 된 사이. 시작과 동시에 확연하게 나뉘고 만 갑과 을. 혼란스럽다. 의준이 제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뭘까. 단순한 호의일까. 혹은 지나간 일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기의준.” “말해.” “너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하자면 할 거야?” 심장이 내려앉는다. 집요하게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에, 잔뜩 잠긴 느른한 목소리에.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멋대로 생겨나려는 이 위험한 감정들을, 늦기 전에 부디. 미리보기 “고개 좀 들지.” 주택가의 좁은 골목 안쪽 끝. 차의 시동이 꺼진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은하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도 섣불리 옆자리를 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의준이 작게 투덜거렸다. “뭐 하냐.” “뭐가.” “나 안 보고 어디 보냐고.” “듣고 있어, 말해.” “공은하.” “왜.” “걱정 마, 이자는 돈으로 안 받아.” 아무리 생각해도 10프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좀 깎아 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라도 꺼내 보려던 은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의준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돈으로 안 받으면?” “돈 말고 다른 걸로 받겠다는 거지.” “다른 거라면, 어떤…….” 은하가 입을 다물었다. 순간 떠오른 낮의 불쾌한 기억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죽어라 노려보는 은하의 경멸 섞인 눈빛에 곧 상황을 파악한 의준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무슨 생각 하는데.” “못 해.” “뭘.” “그런 거, 절대로 그거 나는 할 생각이…….” “누가 원한대?” 냉기가 가득 실린 차가운 목소리에 은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의준이 조소를 날렸다. “착각하지 마. 나 그때의 기의준 아니야.” “…….” “너한테 고백하던 기의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알아들어?” “……그럼 이자로 뭘 원하는데.”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돈 말고 뭐가 좋을지.” 생략된 의준의 뒷말이 멋대로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돈 말고 어떤 걸 받아야 분이 풀릴까. 부디 심사숙고해 보겠다는 의준의 입가에 명백한 승자의 미소가 걸렸다. 불량하게 뒤틀린 입술보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가 왠지 더 거슬려 은하는 못내 시선을 거뒀다.
다원은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순미를 기다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에게 버려져, 할머니 복례 대신 가계를 꾸려나가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외로움의 파도를 견디며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밤에도 그랬다. “축하해.” “……네?”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피에 젖은 남자가 건네는 축하 인사는 기묘함을 불러일으켰다. 대뜸 처음 보는 다원에게 말을 건 것도, 손에 든 졸업장을 보고 인사를 건네는 것도, 다원을 따라 복례의 민박에 묵게 된 것도, 아득한 겨울날 저편에서 피어오르는 신기루처럼 다원에겐 낯설게 다가왔다. “아저씨한테 관심 갖지 마, 다원아.” “……별로, 그런 거 아닌데요.” 그저 제 인생에 나타난 낯선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저 위험해 보이는 남자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된 건진……. 침투는 빨랐고, 다원은 점점 그에게 잠식되었다. “후, 대답해야지. 다원아?” 그와의 밤이 여물어갔다. 《여문 밤》
사장인 민건을 좋아하는 착실한 아르바이트생 열희. 고백할 생각도, 사귈 마음도 없던 단기 짝사랑을 들켜버렸다. 근데 왜 하필이면 저 남자일까. 민망한 상황들을 왜 번번이 들키고 마는 걸까. 대체. “뭐 하시는….” 고개를 얼른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마자 어김없이 입술에 닿아오는 손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온기에 놀랄 만큼. 열희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려 피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태열의 손아귀 안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가 조심스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쓱쓱 비벼 문질렀다. “하지 마세요.” “싫어.” “왜 이러시는데요.” “만지고 싶으니까.” “글쎄, 대체 왜….” “그러게. 왜일까.” 만지는 손길이 차츰 더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그보다 더 위험한 건 태열의 눈빛이었다. “네가 그 자식 얘기하는 게 왜 거슬릴까.” “…네?” “왜 자꾸 화가 날까. 나는.” 온통 옭아매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연신 내려앉았다. 지독하게 잘생긴 그의 위험성을 새삼 깨달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하기가 무던히도 곤란했다. 실은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 아까부터 차곡차곡 쌓여 버린 태열의 말과 행동들에 열희는 흔들리는 맘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으나 한껏 착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설마하니 좋아하는 건가. 이 남자가, 나를?
“한준우 씨. 나, 좋아합니까?” 짧은 머리. 하얀 피부. 헐렁한 니트와 바지 차림.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미소년 같은 중성적인 외모의 은율. “그쪽만 보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참 죽겠습니다. 안 된다고 되뇌어도. 그래서.” 시작부터가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던 남자. 배려가 일상인, 그래서 왠지 더 멀어 보이는 진지한 그, 한준우와 연애라는 걸 시작했다. 생애 첫 진지한 연애를 만난 두 사람. 하지만 예고 없이 시작된 감정이 버겁기만 하다. “똑바로 말해. 마음이 변한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네 마음이란 게, 이 정도밖에…… 안 됐던 거야?”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잘라 내도 잘라지지 않는 꼬리처럼 아슬아슬 위태로운 둘의 연애. 그 끝은?
이것은 어쩌면, 하룻밤의 꿈. 혹은 금방 사그라질 불장난. 개인적인 이유로 은호에게 손을 뻗은 다인. 일회성 관계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 그녀에게 그러나 은호는 더없이 저돌적으로 다가서는데…. “장난 아닌데요.” “어?” “지금 표정, 되게 야해요. 한 번 더 하고 싶을 만큼.” “…뭐야.” “말해 봐요. 나 이번에도 별로였어요?” 그새 말끔해진 음부를 톡톡 두들겨 마무리한 그가 속옷과 바지를 끌어 올려 주며 물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도록 옷까지 입혀 주는 그가 왠지 어색하고 낯설어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돌아서려는 그녀를 그가 붙잡았다. 닫힌 문에 기댄 그녀의 앞으로 그가 성큼 다가서 그녀의 얼굴을 두 팔 안에 가뒀다. 지그시 마주한 눈빛이 그윽하다 못해 숨 막히도록 달았다. “대답 안 하면.” “안 하면?” “또 할 거예요. 아까보다 더 세게, 더 오래. 미친놈처럼.” 누가 오든 말든, 소리를 지르든 말든 봐주지 않고 해 댈 거라는 말을 하며 그는 웃었다. 그답지 않게 장난기 어린 미소가 무척이나 보기 좋아서, 여전히 식지 않은 야릇한 욕망이 그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비치는 것 같아 잠시 말을 아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흐트러진 그의 옷매무새를 어루만져 주다 살짝 더 올라가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간지럽다고 툴툴대면서도 그는 그녀의 손길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를 덮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격렬히 파고든 그의 혀가 촉촉한 그녀의 입 안을 과감하게 돌아다녔다. 차마 뿌리칠 수 없어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 작품은 ‘멜로우 틱’/‘포르말린 핑크’와 연작입니다.> 연애고 여자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남자, 현서준. 그런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여자사람, 오아름. “사장님.” “응?” “이건 좀 다른 질문인데요.” “그래, 뭔데.” “갑자기 궁금해서요. 저 왜 도와주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대수롭지 않게 허락한 호의(好意).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버린 감정. 사장님, 하는 목소리가 사르르 귓가에 감겨들고, 동그랗게 뜬 귀여운 두 눈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친구의 여자를 탐하는 것 같은 이 빌어먹을 죄책감은 대체……? “웬만해선……, 안 물러날 거 같아서요…….” “뭐……?” “아까……, 사장님이 좀……, 곤란해 하시길래…….” “너…….”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도와주는 남자 서준과 도움 받는 여자 아름.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던진 그들만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이야기.
어차피 바닥이나 마찬가지인 삶이었다. 보잘 것 없는, 지긋지긋하고 하찮은. 그냥 그런. “언제부터 이 호텔이 이렇게 싸구려가 됐을까. 급 안 맞게 아무나 들락날락.” 잔뜩 날이 선 매서운 눈빛에 오기가 생겼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말투에 바짝 약이 오르고 만다. “눈에 띄지 마. 내가 돌아오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라고. 알아들었어?” 답지 않게 참으로 우스운 생각 하나. 흔들고 싶다. 저 까칠하고 오만한 남자를. 나한테 미치게 만들고 싶어.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도은우.” “왜.” “나랑 작업 하나 하자.”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당신과 나는. 묻고 싶었다. 앞으로 어쩌려는 거냐고, 나한테. 아프다. 아픈데도 감히 빼낼 수조차 없다.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버려서. 지태헌 씨, 그거 알아?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늘 당신이 아팠어.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그놈을 찾았다. 날 납치하고 감금해준 천하의 고마운 놈을. 하도 피해 다니길래 오기로 잡아 가두었다. 근데…이제 뭐 하지? “입술이 말라서.” “뭐…?” “좀 축이려던 것뿐인데. 놀랐어?” 단하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인기인 태강우가 겉만 멀쩡한 또라이일 줄. 그런 그에게 사방팔방 휘둘리게 될 줄은, 정말. “배고픈데. 먹을 거 없어?” 이게 아닌데. “침대 어딨어? 나 맨바닥에서 못 자는데.”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고! “남의 가슴을 막 만지고. 변태야, 뭐야.” 졸지에 변태로까지 몰린 단하는 억울했다. 자백이고 뭐고 됐으니 그만 나가줬으면 싶었으나. “무책임하네. 감금할 땐 언제고 왜 갑자기 나가래?” 돌아버릴 지경이다. 안 나가고 버티는 태강우 때문에. 분명 고마운 놈이 맞긴 한데, 왜 저렇게 얄밉지? 구원은 개뿔, 잘못 건드려도 아주 한참 잘못 건드렸다. 단하는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부터 잘못 짜인 판이었음을. 태강우,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보는 순간 눈을 멀게 만든 한 여자가 있었다. 눈이 멀고 마음이 멀어,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해버린 유일한 그녀. 안고 싶어서 안았고, 그게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지독한 욕망에 그는 고스란히 사로잡혀 허우적댔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놓아버리고, 손을 뻗어 만지고, 끌어안고, 탐하고, 끓어오르는 갈증을 잠재우려 다시 찾고, 부르고, ……너를. 오직 너만을. 끔찍하게도. 그런 그녀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몸과 마음을 온통 미쳐버리게 만들고 사라진 한 여자. 찾아야겠다. 찾아서 곁에 둬야겠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내 곁에만. Sling Me. 자신을 버리라는 여자, 유혜원. Don't. Sling Me. 자신을 밀어내지 말라는 남자, 지은후. 집착과 소유욕이 빚어낸 달콤하고 위험한 사랑이야기. 스물일곱 유혜원과 서른 넷 지은후의, 끈적하고 다소 야릇한, '인연'이 '연인'이 되는 그런 이야기. *본문 발췌글 “말해. 나랑 왜 잤어.”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하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보다도, 그의 지시를 받아 접근한 혜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보다도 더 거슬리는 게 있었다. 알아야겠다. 진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를. 그게 아니라면 진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은후는 생각했다. 쉬이 나와 주지 않는 질문을 어렵사리 거듭 목으로부터 끌어내었다. “이깟 몸뚱이 굴리는 것쯤 아무 것도 아닌가? 너 그렇게 헤퍼?” “…….” “유혜원이라는 여자는 원래 그래?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하고나 자기도 하나? 스스럼없이?” “……미안.” “누가 사과하랬어? 묻잖아. 왜 날 거부하지 않았지? 일주일 내내 나한테 안겨서, 좋아죽겠는 얼굴로, 왜 그랬는데? 어? 왜!” “흑……,” “……씨발.” 혜원의 두 눈 가득 물기가 차올랐다. 뭐라 답할지 몰라 망설이는 혜원이 못마땅해 은후는 쓴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혜원의 옷을 벗겨버렸다. 벗어. 너 벗는 거 잘하잖아. 아무 것도 아니라며. 그러니까 다 벗어, 씨발. 어깨까지 흘러내렸던 카디건과 니트가 사라지자 순백색의 살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스로 된 아이보리색 브래지어는 차마 건드리지 못한 은후가 혜원을 주시했다. 고운 목덜미와 가녀린 쇄골과, 파르르 떨리는 자그마한 하얀 어깨를 보는 은후의 눈동자가 점차 탁해졌다. 손을 뻗었다. 반항 않는 혜원의 치마마저 벗겨내었다. 확 끌어내린 그가 혜원의 다리를 벌리게 하고는 몸을 일으켜 무릎을 세웠다. 속옷차림의 혜원을 더는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끓어오르는 욕정이 대단했다. 은후가 급히 셔츠를 벗어젖혔다. 탄탄한 가슴팍이 낮은 조명 아래 눈부시게 빛났다. 고르게 잘 잡힌 팔의 근육들이, 유려한 턱선과 매끈한 쇄골과, 다부진 식스팩이 차례로 혜원의 시야에 담겼다. 튼실한 다리와 잔뜩 성이 난 은후의 하체까지도. 모두. 이윽고 빠르게 알몸이 된 은후를 혜원은 눈물 맺힌 눈으로 바라보았다. 목이 메었다. 안아줘. 안아줘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이렇게나 미안한 마음 조금이라도, 속죄할 수 있도록. 제발. 제……발……, “나한테 미안한가?” 은후가 몸을 낮췄다. 닿을 듯 말듯 거리를 유지한 채 넌지시 물었다. 뜨겁고 감미로운 숨결이 볼에 닿자 그 이상으로 맘이 아렸다. 혜원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씹듯이 읊조린 은후가 혜원의 브래지어를 위로 확 끌어올렸다. 풍만한 가슴이 짓눌려 한층 더 봉곳하게 피어올랐다. 말랑말랑 탐스러운 그것을 은후는 한손에 덥석 가두었다. 흡……, 혜원이 입술을 떨었다. “다시 묻지. 내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 “네……,” “그럼 울지 마. 울어서 나 짜증나게 하지 마. 그딴 표정 짓지 마라,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흡……,” “다물어. 그쳐.” 혜원이 떨리는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조곤조곤 내뱉는 말투에 실린 증오가 따가웠다. 타오를 듯 뜨거운 은후의 손이 혜원의 가슴을 더욱 세게 주물렀다.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혜원은 이를 악물었다.
#현대물 #재회물 #첫사랑 #몸정맘정 #소유욕/독점욕/질투 #직진남 #계략남 #유혹남 #짝사랑남 #순정남 #동정남 #존댓말남 #연하남 #평범녀 #철벽녀 #동정녀 #순진녀 #무심녀 #달달물 #고수위 희연은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 마음밖에 없었다. 근데 그걸 자꾸 무너뜨린다. 서태인, 저 위험천만한 남자가. “돕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그게 뭐든.” 아뇨, 됐어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원하시는 건 뭐든 다 해 드릴 테니.” 글쎄, 괜찮다니까? 근데 저기, 왜 내 꿈에 나오세요? “정말 갚고 싶으십니까? 그럼 돈 말고 다른 걸로 받겠습니다.” “……어떤?” “키스. 가능하십니까?” 큰일이다. 마가 껴도 단단히 끼고 말았다. 죽어도 호의를 베풀겠다는 저 망할 놈의 후배님 때문에.
은우는 고개를 젖혔다. 어느덧 목 안이 뜨겁게 조여들었다. 눈가마저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뭘까. 이런 기분.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딱 울고 싶었다. “하아……! 흐응……!” 새된 신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지르려고 지르는 게 아니었다. 절로 그리되었을 뿐. 은우는 제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고서 입을 벌렸다. 차츰 더 높아지는 신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촉촉한 혀의 감촉에 눈앞은 자꾸만 아찔해졌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뒤틀었다. ---------------------------------------- 어차피 바닥이나 마찬가지인 삶이었다. 보잘 것 없는, 지긋지긋하고 하찮은. 그냥 그런. “언제부터 이 호텔이 이렇게 싸구려가 됐을까. 급 안 맞게 아무나 들락날락.” 잔뜩 날이 선 매서운 눈빛에 오기가 생겼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말투에 바짝 약이 오르고 만다. “눈에 띄지 마. 내가 돌아오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라고. 알아들었어?” 답지 않게 참으로 우스운 생각 하나. 흔들고 싶다. 저 까칠하고 오만한 남자를. 나한테 미치게 만들고 싶어.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도은우.” “왜.” “나랑 작업 하나 하자.”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당신과 나는. 묻고 싶었다. 앞으로 어쩌려는 거냐고, 나한테. 아프다. 아픈데도 감히 빼낼 수조차 없다.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버려서. 지태헌 씨, 그거 알아?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늘 당신이 아팠어.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취하겠다.” “벌써 알딸딸해요.” “그만 마셔.” “싫은데요.” “연효은.” “네, 피디님.” “그만두고 싶어?” 협박조가 아니었다. 막연하지만 그렇게 느낀 효은이 시선을 올리다 멈칫했다. 어두운 조명 탓인지 지석의 눈빛이 무척이나 그윽했다. 왠지 어색해진 탓에 결국 묻고 말았다. “그만뒀으면 싶으세요?” “아니.” “…그럼요?” “그 반대라고. 그러니까 적당히 해.” 뭐를… 요? 아니, 대체 뭘 적당히 하라는 거죠, 피디님…?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탈탈 털어 낸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켠 지석이 재킷을 챙겨 들었다. 반도 더 남은 음식들을 망연히 내려다보던 효은도 늦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한순간 눈앞이 핑 도는 착각에 급한 대로 옆쪽 벽을 부여잡던 찰나였다. 효은은 이내 알아차렸다. 그게 벽이 아닌 지석의 팔이었음을. 잔뜩 구겨진 지석의 미간을 보며 된통 깨지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효은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시야가 까맣게 아득해졌다.
아버지의 빈소로 찾아온 남자, 명운건설 도희건 전무. 그는 평범한 은조가 쉬이 만나볼 수 없을 부류의 사람이었다. 눈빛부터 위압적인 그와 엮이는 것조차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다. 그가 제안한 사망 보상금을 거절한 것은. 번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진창인 제 삶을 깨달은 순간. “진짜 결혼 아니고.” 그에게서 돌연 1년간의 계약 결혼을 제안받았다. “그런 척만 하자고. 가짜로.” 그것도 거액의 웃돈까지 얹어 주면서. 이유가 뭐냐고 묻자 도희건 전무는 심상히 답했다. “모르죠. 첫눈에 반했을지도.” 빈말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들썩거렸다. 거절해야 하는데 궁지에 몰려 그럴 수도 없었다. 잡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내민 손 따위. 불순한 그의 저의를 진작 알아차렸더라면, 그랬다면. “저 할게요. 그쪽이 말한 그거, 계약 결혼이요. 그거 제가 할 테니까….” 따분해라. 예상대로 답하는 은조를 보며 희건은 조용히 입매를 뒤틀었다. 비로소 시작이었다. 절대 사랑할 일 없을 여자와의 시한부 계약 결혼이. 일러스트: VAZI
〈강추!〉흠뻑 적셔버리는 노련함이 있었다. 능숙한 강약조절에 가슴이 뛰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릿속까지 새하얗게 비워지게 만드는 아찔한 키스였다. 그저 끌려가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진은 약한 신음을 내지르며…. ---------------------------------------- “약속해요…….” “뭘……?” “나랑은 이것만……, 하기로…….” 끝나버린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 서 진. “그럼 너도 약속해.” “뭘요……?” “이건 절대 나랑만 하기로. 딴 놈들 말고.” 나른한 목소리로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 현우민. 그녀는 위로가 필요했고, 그는 오직 그녀가 필요했다. 인연인 듯 우연처럼 묘하게 만난 두 사람. 감정이 자라면 끝나게 될 관계가 시작되었다. 부서질 듯 위태로운 여자와 그녀를 감싸 안아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 부드럽고 달콤한, 때로는 그 이상으로 뜨겁고 자극적인, 그들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 리밀의 로맨스 중편 소설 『멜로우틱 (Mellowtic)』.
[이 도서는 의 15금 개정본입니다] "한이원. 평범한 그녀의 삶에 어느 날 요상한 형제가 끼어들었다. 꿈에 볼까 무서운 위험천만한 형 민철, 그리고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대세 톱스타 동생 서주혁. “누나.” “응?” “나 몰라요?” 우연처럼 맞닥뜨린 이원 인생의 초콜릿 상자!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달콤한 기적, 그 결말은 과연?!"
“대리 기사 부를까.” 그의 말에 이설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고즈넉한 차 안에서 윤우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직 안 불렀어?” “응.” “왜?” “혹시나 해서.” “무슨 혹시나.” “집에 가기 싫다고 할까 봐.” 대답과 함께 윤우가 이설의 볼을 엄지로 살살 쓸어 만졌다. 조심스러운 접촉에도 심장은 여지없이 벌렁거렸다. “싫다면.” “같이 있을까 하고.” “…나랑?” 되묻자 윤우가 그럼 누구겠어, 하며 픽 웃는다. 난감해진 이설이 서둘러 말을 뱉었다. “저기, 미안한데 난 아직….” “연애하자는 거 아니고.” 그새 엄지가 입술까지 내려왔다. 한층 더 조심스럽게 여린 살갗 위를 매만지며 윤우가 이설에게 말했다. “복잡한 머리 식히라고.” “…….” “하루쯤, 생각 없이. 내가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떠올랐다. 3년 전 그날, 왜 태윤우를 순순히 받아들였는지. 그가 어떤 틈을 파고든 건지.
[강추!]**본 도서는 '멜로우 틱'과 '포르말린 핑크'의 연작입니다.*** 름이 서준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누운 자세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 하아……, 흡…….” ---------------------------------------- 연애고 여자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남자, 현서준. 그런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여자사람, 오아름. “사장님.” “응?” “이건 좀 다른 질문인데요.” “그래, 뭔데.” “갑자기 궁금해서요. 저 왜 도와주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대수롭지 않게 허락한 호의(好意).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버린 감정. 사장님, 하는 목소리가 사르르 귓가에 감겨들고, 동그랗게 뜬 귀여운 두 눈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친구의 여자를 탐하는 것 같은 이 빌어먹을 죄책감은 대체……? “웬만해선……, 안 물러날 거 같아서요…….” “뭐……?” “아까……, 사장님이 좀……, 곤란해 하시길래…….” “너…….”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도와주는 남자 서준과 도움받는 여자 아름.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던진 그들만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 리밀의 로맨스 중편 소설 『블러핑 (Bluffing)』.
“아직 그대로입니까.” “뭐가요?” “누굴 만날 여유 없다는 거, 여전해요?” 희수는 대꾸를 삼갔다. 어떠한 심적 변화를 기대하기에 사흘은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현욱도 그걸 몰라서 물은 건 아닐 터였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이어 말했다. “여기서 매달리면 부담스럽기만 할 테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듣자는 거 아닙니다. 다만 내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제안… 이라뇨?” “은희수 씨.” 나직이 불린 이름에 희수는 숨을 죽였다. 현욱의 새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형형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날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네…?” “기꺼이 이용당해 줄게요. 은희수 씨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진지한 말투, 침착한 표정. 그러면서도 그 너머로 고스란히 엿보이는 일말의 간절함까지. 현욱의 모든 것에 압도된 희수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이것은 혹시,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함부로 좋아한 대가일까. 뒷담화의 현장을 들켜버린 은형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그 남자, 민승재. 수시로 날아드는 생뚱맞은 질문과 괜한 시비. 팀장님,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어디 또 까불어 봐요.” “저 안 까불….” 입술이 닿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무르던 그가 이내 아주 천천히 멀어졌다. 반할 만큼 매혹적인 승재를 올려다보며 은형은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버텨 내고 있었다. 여전히 닿아 있는 것처럼 지독하게 부드럽던 입술의 감촉. 목에 팔이라도 두르고 매달려 안기고 싶은 걸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승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또.” “…….” “왜 조용해? 까불어 보라니까.” “…잘게요.” “멋대로 불 질러 놓고 어딜 갑니까?” 비켜 가려는 순간 커다란 몸이 앞을 막아섰다. 반대로 피하려는 것까지 차단한 그가 허리 뒤로 크게 손을 둘러 확 끌어당겼다. 오롯이 맞닿아 오는 느낌에 놀란 은형이 눈을 크게 떴다. “확인해 볼래요?” “뭘….”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네…?” “확인해 보자고, 같이. 궁금할 것 같은데.” 서늘하게 식은 눈매로 승재가 은형을 내려다봤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이 갈수록 위험하게 끈적거리며 짙어졌다.
보는 순간 눈을 멀게 만든 한 여자가 있었다. 눈이 멀고 마음이 멀어,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해버린 유일한 그녀. 안고 싶어서 안았고, 그게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지독한 욕망에 그는 고스란히 사로잡혀 허우적댔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놓아버리고, 손을 뻗어 만지고, 끌어안고, 탐하고, 끓어오르는 갈증을 잠재우려 다시 찾고, 부르고, ……너를. 오직 너만을. 끔찍하게도. 그런 그녀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몸과 마음을 온통 미쳐버리게 만들고 사라진 한 여자. 찾아야겠다. 찾아서 곁에 둬야겠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내 곁에만. Sling Me. 자신을 버리라는 여자, 유혜원. Don't. Sling Me. 자신을 밀어내지 말라는 남자, 지은후. 집착과 소유욕이 빚어낸 달콤하고 위험한 사랑이야기. 스물일곱 유혜원과 서른 넷 지은후의, 끈적하고 다소 야릇한, '인연'이 '연인'이 되는 그런 이야기. 리밀의 로맨스 장편 소설 『슬링 미 (Sling Me)』.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여자, 설희주.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홀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의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특별한 의뢰를 받고 기어코 그녀를 찾아낸 남자, 기주헌.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은 그를 보며 희주는 알 수 없는 불안에 떤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이런 걸 좀 잘해요. 실은 다른 것도 잘하고.” 농담인 듯 웃는 남자의 눈빛은 먹잇감을 보듯 싸늘히 식어 있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해주며 희주의 주위를 맴도는 주헌.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볼일이 끝나고도 떠나지 않는 그가 슬슬 불편해지던 찰나. “설희주 씨.” 희주는 몰랐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그를 끝내 마음에마저 들이게 될 줄은. 아무리 밀어내도 소용없던 남자가 의뭉스럽게 웃으며 희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새 판을 짤 겁니다. 협조할 용의, 있어요?” 일러스트: 박캐롤
죽음을 꿈꾸는 여자, 이현. 상처뿐인 그녀의 앞에 나타난 감정에 인색한 남자, 무진. “유석주 대표님 비서, 연무진입니다.” “어디까지 가능해요? 잠도 같이 자 주나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발톱을 세운다. 멋대로 할퀴면 된다. 어차피 버려질 테니. 세상마저도 날 포기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재미없고 무뚝뚝한 남자가 좋아지다니, 말도 안 돼. “장난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장난 아닌데.” “자꾸 이러시면 제가 폭주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알아서 조심해 주세요.” “해봐요, 어디. 난 상관없으니까.” 난생 처음 맞닥뜨린 묘한 감정. 서툰 나머지 어긋나는 둘의 관계. 맹렬한 끌림과 탐닉,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듯 조금씩, 아주 서서히 물들어간다. 엷게. [본 도서는 15세이용가에 맞게 수정&재편집된 도서입니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눈빛, 목소리, 체취, 분위기. 그가 지닌 모든 것들이 거슬렸다. 엮여서 좋을 게 없을 사람. 은수가 정의하는 서강열이란 존재는 그러했다. * * * 예기치 못한 재회. 기묘한 밤. 아찔한 신호.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을까. “정말 나 버리려고 했어?” 폭풍 같은 밤을 지나 마주한 남자의 얼굴은 그녀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 도망은 안 된다고 말하는 갈색 눈동자에 자비란 없었다. 은수는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약속된 기한만 채우자고. * * * “보내 준다고 했잖아.” “그걸 믿었어?” 순진하긴. 싱긋 웃는 서강열의 미소는 늘 그랬듯 근사하기 짝이 없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혼란 속에서 은수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사소한 마주침. 별것 아닌 시선과 별 뜻 없을 말들. 서로가 서로에게 단지 그뿐이던 처음. 확연히 달라진 이후. “가만있죠. 들키면 성가셔져.” 설마 했었다. 단지 또 한 번의 우연이 더해졌을 따름이라. 현서가 간과한 건, 겸이 의외로 곤란한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혹시 시간 있어요?” “……네?”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랑 놀아 줄 시간.” 수시로 떠올랐다. 정체불명의 기이한 열감이 자꾸만 온몸을 들뜨게 했다. 위험한 신호인 줄 알면서도 끌려갔다. 이제 감당하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어떡하죠. 또 울릴 거 같은데.” 나지막이 읊조리는 겸의 표정이 실로 야했다. 현서는 제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어쩌면 벌써 터져 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고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떨리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할딱이는 윗입술에 이어 내뱉는 숨결마저 모조리 집어삼켜진다고 느꼈을 때,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가 그녀의 안으로 가득 들어찼다.
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 소설! 이 작품은 종이책 출간본의 전자책버전입니다. Taboo[금기] - 성인물과는 인물, 설정만 같은 전혀 다른 내용임을 말씀드립니다. Original, 학원물 버전입니다. 열아홉 소년 현준수, 객식구로 들어온 동갑내기 소년 한서원을 만나다! 모든 것에 만능이자 인기절정.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철부지 도련님, 현준수.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신경 쓰이게 하는 녀석이 어느 샌가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는데. 남자 맞아? 근데 왜 자꾸 시선이 가지? 왜 계속 만지고 싶어지냔 말이야, 젠장! 남장여자 한서원과 방탕문란 싸가지 현준수의 두근두근 아슬아슬, 은밀한 첫사랑 이야기. “웃기는 거 아는데, 사내자식한테 이런다는 거 진짜 쪽팔린데, 이제 더는 안 되겠어. 너만 보면 완전 돌아버리겠다고!” - 까칠, 도도, 건방. 사랑을 믿지 않는, 그러나 알고 보면 한없이 외로운 그, 현준수 “확인한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렇잖아. 내가 계집애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서. 너, 설마 나한테 관심 있냐?” - 얌전, 온순, 조용. 겉보기엔 완벽한 꽃 사내인, 그래도 속은 천상 여자인 그녀, 한서원. “바보같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어, 나는. 서원이 네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이야.” - 다정, 배려, 자상. 서원의 하나뿐인 키다리아저씨, 혼자서만 몰래 기다리는 그, 주민혁.
하루하루 버티듯 사는 게 힘겨운 여자, 민하진. 생각 없이 사는 게 익숙한 남자, 한태서를 만나다. “민 대리, 혹시 나한테 관심 있습니까?” “……뭐라고요?” “스토커예요? 자꾸 나만 쫓아다니고.” 화낼 일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가, 늘 실실 웃으며 농담만 해 대는 그가, 무시하려 해도 끈질기게 들러붙는 그가, ……어느 틈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게. “잘해 주지 마세요.” “더 잘해 줄 겁니다. 앞으로도 쭉. 내가 민 대리를 얼마나 예뻐해 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하나를 바라면 열을 보여 주는 사람. 그 열이 모두 다 진심뿐인 사람. 굴레에 갇혀 죽은 듯 살아오던 남자가 감옥 같은 삶을 견디던 여자에게 끈질기게 건네는 프러포즈. 뉘앙스. [개정판]
“취하겠다.” “벌써 알딸딸해요.” “그만 마셔.” “싫은데요.” “연효은.” “네, 피디님.” “그만두고 싶어?” 협박조가 아니었다. 막연하지만 그렇게 느낀 효은이 시선을 올리다 멈칫했다. 어두운 조명 탓인지 지석의 눈빛이 무척이나 그윽했다. 왠지 어색해진 탓에 결국 묻고 말았다. “그만뒀으면 싶으세요?” “아니.” “…그럼요?” “그 반대라고. 그러니까 적당히 해.” 뭐를… 요? 아니, 대체 뭘 적당히 하라는 거죠, 피디님…?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탈탈 털어 낸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켠 지석이 재킷을 챙겨 들었다. 반도 더 남은 음식들을 망연히 내려다보던 효은도 늦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한순간 눈앞이 핑 도는 착각에 급한 대로 옆쪽 벽을 부여잡던 찰나였다. 효은은 이내 알아차렸다. 그게 벽이 아닌 지석의 팔이었음을. 잔뜩 구겨진 지석의 미간을 보며 된통 깨지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효은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시야가 까맣게 아득해졌다.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무뚝뚝하고 시크한, 버럭쟁이 까칠남, 서지후. 의예과 시절부터 아무도 모르게 숨겨 온 그의 가슴앓이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건 바로, “나 있잖아.” “말해.” “좋아하는 것 같아. 승하 선배.” 어리바리 단짝, 문유원이 털어놓은 뜬금없는 사랑 고백. 게다가 상대는 여자관계 난잡하기로 소문난 레지던트 2년 차 선배, 류승하! 눈앞이 캄캄해지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 하루만 류승하 해 줄게.” “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키스든 뭐든 도와준다고, 내가.” 술김을 핑계로 던진 과감한 제안. 도발 혹은 객기로 벗어던진 친구의 탈. 풋풋하고 쌉싸름한, 조금은 달콤 야릇한 그들의 이야기.
“아직 그대로입니까.” “뭐가요?” “누굴 만날 여유 없다는 거, 여전해요?” 희수는 대꾸를 삼갔다. 어떠한 심적 변화를 기대하기에 사흘은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현욱도 그걸 몰라서 물은 건 아닐 터였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이어 말했다. “여기서 매달리면 부담스럽기만 할 테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듣자는 거 아닙니다. 다만 내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제안… 이라뇨?” “은희수 씨.” 나직이 불린 이름에 희수는 숨을 죽였다. 현욱의 새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형형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날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네…?” “기꺼이 이용당해 줄게요. 은희수 씨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진지한 말투, 침착한 표정. 그러면서도 그 너머로 고스란히 엿보이는 일말의 간절함까지. 현욱의 모든 것에 압도된 희수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약속해요…….” “뭘……?” “나랑은 이것만……, 하기로…….” 끝나버린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 서 진. “그럼 너도 약속해.” “뭘요……?” “이건 절대 나랑만 하기로. 딴 놈들 말고.” 나른한 목소리로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 현우민. 그녀는 위로가 필요했고, 그는 오직 그녀가 필요했다. 인연인 듯 우연처럼 묘하게 만난 두 사람. 감정이 자라면 끝나게 될 관계가 시작되었다. 부서질 듯 위태로운 여자와 그녀를 감싸 안아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 부드럽고 달콤한, 때로는 그 이상으로 뜨겁고 자극적인, 그들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까맣고 반짝이고, 너르고 느슨하고 감미롭고. 매끈한 눈매. 강렬한 눈동자. 야릇한 표정. 나른한 중저음에 귓가가 온통 먹먹해졌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반해 버렸다. “키스한다. 피하지 마요. 안 된다고 하지도 마. 할 거니까.” “왜……?” “하고 싶으니까. 이유가 더 필요해?”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마성의 연하남, 유신우. 예쁜 외모에 냉소적인 성격. 실은 누구보다도 여린, 차은서. 속을 알 수 없는 위험한 남자가 차갑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만났다. 죽을 만큼 탐나는, 가져도 가져도 부족한, 끝없이 욕심나는 그녀를 향해 폭주를 시작한다. 달콤하고도 끈적끈적한 그와 그녀의 이야기.
강추! “좋아한다며. 아주 많이 좋아한다면서.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데. 이제 내가 싫어? 싫은 거야, 내가? 그래?” 좋아하고 싶지만, 절대 그러면 안 될 거라고 믿는, 서하은이 어렵기만 한 그, 민우현. “싫어?” 얼굴을 가까이 하자 하은이 한사코 고개를 피한다. “싫으면 안 해. 싫어? 하지 말까? 하지 마?” “……어.” “뭐?” “안 했으면 좋겠어. 미안.” 믿기지 않아 얼마간 더 머뭇거리던 우현이 하은의 얼굴을 놓아준다. “알았어. 이제 안 해. 안 할게.” 우현의 싸늘하면서도 딱딱한 말투가 평소와 같으면서도 어딘가 많이 다르다. “근데 서하은. 너. 싫다는 말 처음 한 거 알아?” 그 말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바닥만 보고 있는 하은이 거슬린다. 당장 달려가 하은과 눈 맞추고 싶은 걸 꾹 참고 우현이 말을 이었다. “혹시 아니지? 여태 계속 싫었는데 참아 왔던 건.” “…….” “만약 싫다고 했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너 불러 대는 거.” 솔직해질 수 없는 우현이 하은의 맹목적인 사랑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밀의 로맨스 장편 소설 『센티멘털리즘』 제 1권.
“그냥 안가면. 뭐, 하자고? 여기서 너랑? 넌 재미로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한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알아? 괜히 툭툭 건드리지 말란 소리야. 나야말로 싫어. 짜증나니까.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면 시비 좀 걸지 마라. 부탁이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고. 본의 아니게 남자직원만 쓰는 클럽에서 일하게 된 남장여자 한서원! “왜 사귀자고 했을 거 같냐. 여자도 아닌 남자새끼한테. 입 맞추고 싶으면 맞출 거야. 만지고 싶으면 만질 거고, 안고 싶으면 안을 거야. 싫다고 하기 없어. 몰라. 다 내 맘대로 할 거야.” 여자 알기를 개코로 아는 까칠 도도 시건방 싸가지 바람둥이 현준수! 사내치고 곱상하니 예쁜 녀석에게 제대로 꽂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너 진짜 남자 맞아? 근데 왜 자꾸 너한테 손이 가지? 하, 돌아버리겠네. 두근두근, 아슬아슬! 남장여자 한서원의 방탕문란 현준수 갱생 프로젝트! **본 도서는 종이책출간본의 개정판입니다.***
일상의 고요함은 참으로 갑작스럽게 깨져 버렸다. 몰랐다. 뉴스에서나 봐 왔던 일들이 설마 제게도 일어날 줄은. 커다란 키, 건장한 체격, 서늘한 눈빛. 마주한 남자는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었다. 집요한 그 까만 눈동자에 혜인은 숨을 죽였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 봐. 지금쯤 어디로 갔을 거 같은지.” 사내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두침침한 공간 안에 피어오르는 희뿌연 담배 연기를 혜인은 멀거니 바라보았다. 허공에 대고 아무렇게나 담뱃재를 털어 낸 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친했든 안 친했든, 한집에서 지내는 동안 서로 한마디도 안 하진 않았겠지.” “…….” “뭐라도 생각해 내는 게 좋을 거야. 친구, 지인, 만나던 남자 놈들, 힌트 될 만한 건 다 떠올려. 되도록 빠른 시간 내로, 최선을 다해서.” “…….” “질문 있어?” 이윽고 바닥으로 던진 담배를 지그시 눌러 밟아 끈 사내가 슈트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 넣었다. 동시에 오만하게 젖혀진 고개 너머 예리한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좋아한다며. 아주 많이 좋아한다면서.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데. 이제 내가 싫어? 싫은 거야, 내가? 그래?” 좋아하고 싶지만, 절대 그러면 안 될 거라고 믿는, 서하은이 어렵기만 한 그, 민우현. “싫어?” 얼굴을 가까이 하자 하은이 한사코 고개를 피한다. “싫으면 안 해. 싫어? 하지 말까? 하지 마?” “……어.” “뭐?” “안 했으면 좋겠어. 미안.” 믿기지 않아 얼마간 더 머뭇거리던 우현이 하은의 얼굴을 놓아준다. “알았어. 이제 안 해. 안 할게.” 우현의 싸늘하면서도 딱딱한 말투가 평소와 같으면서도 어딘가 많이 다르다. “근데 서하은. 너. 싫다는 말 처음 한 거 알아?” 그 말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바닥만 보고 있는 하은이 거슬린다. 당장 달려가 하은과 눈 맞추고 싶은 걸 꾹 참고 우현이 말을 이었다. “혹시 아니지? 여태 계속 싫었는데 참아 왔던 건.” “…….” “만약 싫다고 했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너 불러 대는 거.” 솔직해질 수 없는 우현이 하은의 맹목적인 사랑에 무너지기 시작했다.